회사가 말하는 '솔직함'의 진짜 의미에 대하여
※ 본 연재에서 등장하는 인물, 단체 등 모두 특정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고 신원 보호를 위해 주요 내용을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일부 내용은 허구이며, 실존 인물 및 단체와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올해가 변화의 원년입니다. 과거의 수직적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식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도록 다들 변화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솔직한 의견을 저에게 직접 편하게 얘기해 주세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월급쟁이 동료이니까요."
몇 년 전 신임 최고 관리자의 취임 메시지 내용이었다. 더 이상 사규에도 없는 호칭은 생략하고 특히 회사 내에서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를 상대로 갑질하는 모습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말은 좋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어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전 직원이 소통하는 게시판과 메신저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말단 사원이 최고 관리자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행동의 결과가 어떨지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최고 관리자가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저는 지금 출근 준비하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출근 준비 잘하고 있나요?" 이 글에 직원들은 너도나도 경쟁하듯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가 "댓글 보느라 출근 준비시간이 XX 늦었네요. (웃음) 이렇게 된 김에 댓글 이벤트 해 볼까요? 우리 편하게 얘기해요~"라고 분위기를 띄우자, 다들 뭐에 홀린 듯 대화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내가 보기에도 아슬아슬했고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결국 A팀장이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평가제도의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누구는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 아닌데, 실적이 안 나오는 부서는 백날 일 해봐야 안 되는 거잖아요."
그의 글에 싸늘한 답글이 곧바로 달렸다.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지는 말자고요. 제가 너무 편하게 생각했는지 말이 필터링 없이 나오는군요. 저부터 반성하겠습니다."
그 후로 A팀장은 다른 보직으로 좌천되었고, 결국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길을 택했다. 그날 이후 게시판에서는 그 누구도 가볍게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의례적인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라는 댓글만 달릴 뿐, 그날의 뜨거웠던 열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위 사례로 봤을 때 회사가 원하는 솔직함은 정해진 답안지였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을 얼마나 세련되고 열정적으로 말하는지를 보고 싶어 할 뿐이다.
"출근 잘하고 있나요?" 질문의 정답은 "네 관리자님 덕분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 이런 답변이지, "평가 제도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런 말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A팀장 입장에서는 평가 때문에 기죽어 있는 부하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했던 나름대로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결국 본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을 것이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얼마 남지 않은 회사 생활 동안, 하고 싶은 말 하며 살고 싶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속앓이를 얼마나 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결국 이 사건 이후로 익명을 보장한다는 설문에도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익명을 빙자한 답정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회사에서는 우리들의 진심이나 영혼은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기능을 원할 뿐이다.
회사가 "솔직하게 얘기해 봐."라고 손을 내미는 순간조차, 사실은 그 손을 어디까지 물지 테스트하며 직원들의 복종 수치를 측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외면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의 민낯이다.
직장에는 두 종류의 지옥이 있습니다. 하나는 당신을 믿지 못해 모든 것을 확인하고 통제하는 '마이크로매니징'의 지옥.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기억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의 지옥입니다. 이간질을 해도 당하는 사람 본인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악질적인 관리 방식.
다음 주, 당신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이 두 가지 '조종의 기술'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