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께 보내드리는 짧은 편지
반대로 말하면 '동기 복'은 없다. 비슷한 또래에서 나에게 생산적인 자극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로부터 의외로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렇다고 나보다 많은 나이가 절대적인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다. 아니, 그 모습마저도 나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으니 가르침이 될 수 있을까?
쨌든, 교직생활 7년 중에서 4년 동안 나를 이끌어 주신 분이 계신다. 나에게는 인생 선배이시자, 여러 모로 닮고 싶은 롤모델이셨고, 나의 부장님이셨다. 누군가에 대해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조심스럽다. 행여 그것이 긍정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대면하지 않은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님의 이야기를 나의 책 한편에 적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나의 존경심 때문이다.
부장님은 다재다능한 일꾼이시다. 일을 좋아하시고, 잘하신다. 다양한 부서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학교 전체의 시스템을 아울러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으셨다. 사실 이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 그저 이런저런 부서 경험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시각이 아니다. 그때그때마다 본인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기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안으로 무언가가 꽉 차있는 것이 느껴져 절대적인 신뢰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학교 입장에서도 부장님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을 터. 애사심과 애교심 사이의 학교를 향한 무한한 사랑이 무미건조한 사람들 사이에서 부장님을 더 돋보이게 하였다.
마냥 일에만 빠져계신 분은 아니셨다. 예체능에 두루 재능이 있으셔서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들에 빠짐없으셨다. 수업 준비도 열심이고, 학생들에게도 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셨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은 내가 처음 겪어보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조금 오버해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후배들이 보며, 어떻게 내뺄 수 있을까? 같이 하자고 말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장님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찾았던 '미래의 나' 일지도 모르겠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사람. 어떤 파도가 와도 흠씬 젖을 수 있는 사람. 학생과 교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나는 상사로 두는 큰 복이 있었다.
교직생활의 끝을 바라보고 있을 때, 부장님과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그 잠재력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든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받은 고마움을 되갚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말할 수 없는 부채감으로 학교를 떠났고 나름의 시간이 흘렀다.
삶에 '조건'을 걸면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부장님을 못 만났다면 나의 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 나와 부장님은 어떤 관계일까? 다양한 가정문과 의문문이 여기저기서 팡팡 터진다. 하나 분명한 것은, 부장님께서 나에게 주신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 나를 응원해주셨듯이, 이제는 내가 부장님께 더 큰 힘을 실어드리고 싶다는 것. 그리고 부장님이 너무 보고 싶다는 것. 오늘 이 글을 핑계 삼아 연락을 드려도 괜찮을까?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시는 부장님이 유독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