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을 떠난 자의 질문
저도 선생님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부터, 직장을 다니고 있는 대학원생과 취업 준비생까지. 그들의 눈에 20대 젊은 여교사는, 선망의 대상이자 꿈의 실체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아지랑이 같은 나에게 그들은 끊임없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교사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당신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질문자는 달랐지만, 질문은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차분히 물었다. '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어떤 직업이나 그렇듯이 직업마다 가지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이라는 3글자로 생각보다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사회가 만들어낸 교사의 이미지는 바르고, 정직하며, 성실하고 무엇보다 지적인 면에 있어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학교 안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났어도 여전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신뢰는 묵직하게 남아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왜 선생님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결의 대답이 들린다. 가르치는 일이 재밌다, 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학생들이랑 소통하는 것이 잘 맞는다 같은 나름 교사라는 직업에 고민을 좀 해본 답변을 듣는다. 그 외에 안정적인 공무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직업의 매력도 분명 있다. 하지만 교직에서 겪어본 짧은 경험에 빗대어 한번 더 묻자면,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와 '왜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가 정말 중요하다. 두 개의 화두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두자면 '왜'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하고 싶은 1을 위해 하기 싫은 9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가?
어떤 직장이든 10년 이상 다닌 선배의 모습을 보면 나의 미래를 알 수 있다. 내가 학교에서 만나 본 교사의 부류는 크게 두 부류였다. 시스템 안의 교사와 시스템 위의 교사. 다른 표현으로는 안주하는 교사, 성장하는 교사. 학교라는 구조, 시스템 자체가 굉장히 세밀한 계획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스템에 익숙해진다면, 누구나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지점이 온다. 나는 그 지점이 '매너리즘'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 안에서 자신을 녹여내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교사가 있는 반면, 시스템을 발판 삼아 더 도약하는 교사가 있다. 잔잔한 물결이 되는 교사가 있는 반면, 파도가 되는 교사가 있다. 어느 쪽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정체성 확립의 문제다. 단순히 수업을 잘하는, 학생들과 소통을 잘하는 교사로 정의한다면, 교직생활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교사는 (아주)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왜 선생님이 되고 싶은가?
이른 퇴근,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안정된 급여, 퇴직 후의 연금. 많은 사람들이 앞서 언급한 것들이 교사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일은 극소수일 뿐이며, 학교도 직장이며 사회이다. 그 어느 조직보다 경직되어 있으며, 수직적이고 경계가 분명하다. 구성원의 특징도 있겠지만, 개인의 영향은 크지 않다. 학교라는 특수한 조직의 기질이 그러하다.
교사는 담임의 여부에 따라서 업무의 경중이 크게 차이가 난다. 담임을 맡아야 진정 교사가 되는 것이기도 한다지만, 담임을 맡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행복보다 더하다. 학생들의 기본적인 정보 파악부터 학급 분위기 조성, 개별 상담 및 학부모 상담, 진로에 대한 상담과 그 이외에 다양한 업무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학생들의 성별과 나이에 따라서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상당 부분 달라진다.
수업도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맡고 싶은 과목을 한다면 좋겠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담임의 여부와 교직 연차, 수업 경험에 따라서 경우의 수는 갈래에 갈래를 뻗어나간다. 맡게 된 과목에서도 수업 시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수행평가를 비롯한 정기고사에 대한 논의가 끊이질 않는다. 내가 계속해왔던 수업을 다시 맡게 된다면 개학 전까지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수업을 다시 디벨롭하면 되지만, 새로 맡게 된다면 시간은 빠듯해진다.
이제 행정업무다. 교사는 각 부서에 속해있다. 대부분의 학교 안 조직도는 비슷하지만 학교의 특성에 따라 같은 부서라도 하는 일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행정업무가 앞서 언급한 담임과 수업 업무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다. 차마 이곳에서 다 정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밖에도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과의 관계와 학부모와의 관계, 교사로서의 정체성 및 수업에 대한 고민 등등 정신적, 육체적으로 급속도로 피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말한 9에 대한 이야기다.
하기 싫은 공부를 앞두고 학생이 할 수 있는 질문은 뭐가 있을까?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지?' 아닐까? 교사도 마찬가지다. 이 하기 싫은 업무들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질문은 '내가 왜 선생님이 되었지?'일 것이다. 뭐든지 본질에 가까우려면 WHY가 중요하다. HOW에만 집착하면, 언젠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은 WHY에 있다. 나는 왜 교사가 되려고 하는가, 나는 왜 교육을 하는가, 나는 왜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나는 왜 학생들 앞에 서 있는가.
교직 5년 차, 나의 교육관을 무너뜨린 일이 있었다. 교직의 시작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물었던 여러 질문들이 되려 나에게 화살이 되어 꽂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멋진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내 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학교와 학생, 교사는 변했다. 아니, 변해야만 했다. 학사의 운영과 수업의 방식, 학생들과의 소통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비록 나는 교직을 떠나 있지만, 나는 안다. 교사에게는 마스크로도 가려질 수 없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 줌 화면에 비친 학생들에게도 느낄 만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어떤 것들에 반하는 큰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교사의 자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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