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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Nov 17. 2020

수능이라는 지구적 이벤트

수능 감독을 하며 만난 떨림과 울림


그 날에 목도한 떨림은 내 안의 울림이 되었다





'수능 감독'이라는 경험은 진귀한 경험이긴 하나, 소중한 경험은 아니다. 수험생들이 느낄 부담감에 견줄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압박감이 하루 종일 짓누른다.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그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책임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능이라는 지구적 이벤트의 참여자로서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그 날 만큼은, 모두가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다.






수능 감독 교사를 포함해 수험생들과 모든 관계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1교시 국어 영역. 입실자 체크부터 시작해서 필기구를 나눠주고, 수험생들의 소지품을 모두 확인한다. 수험장을 정리하며 일체의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확인, 또 확인한다. 수험장 전체를 아우르는 압박감이 조금 덥게 느껴진다. 



그 날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한 학생의 떨림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학생들을 보는데 유독 한 학생의 떨림이 느껴진다. 아니 눈으로 보인다. 미세한 떨림이 아닌, 극도의 긴장상태였다. 수험생이 아닌 한 인간이 떨리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수능 감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격려해주고 싶다. 하지만 수험장 안에서는 걷는 것조차, 아니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시험 시작 전. 놓친 것이 없는지 확인하며 수험장을 둘러보던 중, 그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에 순간에 학생이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너무 떨러요. 저 좀 응원해주세요. 저 좀 격려해주세요.' 나는 그 눈빛을 읽고 말았다. 제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어도, 수능의 공기는 처음일 터. 수험생으로서의 시간이 오묘하게 스치는 1교시 시작 전. 나는 그 눈을 정확히 쳐다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이 곳에 있는 모두가 긴장하고 있다고. 너의 이름을 모르지만,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 응원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긴장감이 널 최고의 순간으로 이끌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진심을 전했다. 







열아홉 살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어느 정도면 적당할까? 혹시 우리가 그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정해 버린 건 아닐까? 그 날에 목도한 떨림은 내 안의 울림이 되었다. 그 울림이 다른 이에게 또 다른 떨림이 될 줄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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