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 Aug 28. 2020

결핍의 교실

부족한 자들의 수업


교실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교사와 학생, 서있는 자와 앉아있는 자,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이끄는 자와 따라가는 자. 어떻게 해서든 교실 안은 흑백 논리로 가득히 구분할 수 있다. 교실 밖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얽혀있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말할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혀 저마다의 결핍을 갖고 살고 있다. 하나의 교실을 가득 메운 이들의 공통점은 오로지 딱 하나 '결핍'이었다. 






교직 생활을 시작하고서 의무적으로 많은 학생들과 상담을 했다. 꼭 해야 할 학기 초 업무 중에 하나이기도 했지만, 교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저마다 교무실에 한 번씩 앉아보게 되는데, 나는 학생들과 오롯이 마주하는 상담시간이 좋았다.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사실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기가 힘들다. 최대한 모든 학생과 눈을 맞추려고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의 탓이다. 나에게는 '진도'라는 추격자가있다. 사실 수업 시간은 상당히 통제된 시간이다. 그렇기에 학생들도 저마다의 본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고, 교사도 이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자주 교실 밖에서 학생들을 만나려고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의 의외의 모습을 알게 되어 좋았다. 교실에서 볼 땐 몰랐는데 코가 정말 예쁘다거나, 목소리가 듣기에 좋다거나, 보기보다 쾌활하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취미를 갖고 있다거나, 동아리에서 단장을 맡고 있다거나 등등. 교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들로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그야말로 수다 꽃이 핀다. 







만개한 수다 꽃이 단 번에 시들어버리게 하는 질문이 있다. 공교롭게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에 대해서 신나게 재잘재잘 대던 참새 같은 학생들도 가족에 대해 물어보니 그저 입을 닫아버린다. 교묘하게 흔들리는 눈빛에서 불안함이 느껴진다. 다른 이야기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학생도 있었다. 묻자마자 눈물부터 나오는 학생도 있었다. 어째서 이들에게 가족이 이리도 비통한 단어가 되었는가.


너무나 개인적인 통계이긴 하지만, 대체로 학교에서 완벽한 학교 생활을 하는, 그러니까 학교 생활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쾌활한 학생들일수록 가족에 대한 민감도가 심했다. 겉보기엔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 학교 생활도 잘하는구나 했던 학생들이 사실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학생들의 가정적 결핍은 모두 학교 생활로 채워지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같은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 자주 떠올랐다. 불행한 가정을 마주칠 때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자주 망설였다. 교실을 드나드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내 눈에는 결핍의 가정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교사로서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 그들에게 사랑을 주어도, 하굣길에 그것은 모두 소멸되었고, 가정에서는 저마다의 이유로 결핍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다. 



부족한 자와 모자란 자. 결여된 자와 궁핍한 자. 결핍된 자와 더 결핍된 자들이 교실에 모여있다.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 사랑이라는 질량이 보존된다면, 우리가 서로 나눠가지면 안 될까.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수업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이 됐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