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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ug 24. 2020

선생님이 됐어요.

25살,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버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항상 학생들에게만 자기소개를 시켰는데, 막상 제가 자기소개를 하려니까 부끄럽네요. 어디를 보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네요. 이런 긴장감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학기 ,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을걸 그랬어요. 그냥 당당하게 소개하라고 했는데, 그냥 당당하게가  안되네요.


대학교를 2월에 졸업함과 동시에 그해 3월에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어요. 대학생활 1 휴학 기간을 제외하고, 그러니까 저는 25살에 선생님이 되었어요.  밑으로는 동생들이   있어요. 5 차이가 나는 여동생과, 8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어요.  담임을 맡았던 1학년 학생들이 17살이었으니까 저랑 나이 차이가 고작 8 차이뿐이었죠. 동생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이었어요. 어쩌면 우리  학생들도 나를 '친구의  언니'정도로 생각했을까요?






누구나 '처음'을 잘 잊지 못하잖아요. 첫사랑 같은 것처럼요. 저도 첫 수업을 잊지 못해요. 제 인생에서 그런 공포감은 처음이었거든요. 눈알 두 개가 짝을 이루어 25쌍 정도가 되니 저를 보고 있는 시선은 사람의 눈이 아닌, 맹수에게서나 볼법한 매서운 눈빛이었어요.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눈빛이었죠.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왜 이렇게 적대적이었을까요? 젊은 여교사의 등장이 여고를 뒤집을만한 대단한 이벤트였을까요? 아니면 그들도 학기 초의 긴장감으로 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식은땀으로 정장을 적시고 나와 느꼈던 복도의 시원한 바람이 기억나요. 복도는 피난처였어요. 대피소이기도 했죠. 수업에 들어가기 전 잠시 목도할 수 있는 공간이자, 수업을 끝내고 나와 안도감의 한숨을 깊게 내뱉을 수 있는 공간. 교사이기 전에 한 사람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저는 수업 시간 중에 자주 복도를 봤나 봐요.






나를 꽤나 곤란하게 만들었던 수업시간은 시간이 지나 내가 가장 안식할  있는 시간이 되었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수업만 하고 싶은 날도 있었어요. 나의 피난처이자 대피소는 이제 복도가 아닌 교실이었죠. 학교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원 중의  명인 내가, 유일하게 나의 목소리를 크게   있는 시간은 수업시간이라는 것을  학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알아버렸어요.


생각해보면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교실에서였어요. 항상 긴장되어 있는 모습이거나 피곤한 모습이었어요. 활력이 넘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손에 꼽힐 정도였죠. 간혹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들은 무기력하거나 골똘히 무언가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교사가 되어 보니 알게 된 너무나 당연한 사실, 선생님도 인간이라는 사실이죠.







교사가 하는 일이 10이라고 가정했을 때, 수업을 하는 것은 1 정도의 비율을 차지해요. 1의 수업을 하기 위해 머리 아픈 9를 해야 해요. 과할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행정업무와 담임업무는 교사가 아닌 인간 본모습을 지치게 해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전쟁이죠. 상담을 하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야 하고, 학부모를 만나기 위해 방과 후 수업 이후에도 학교에 남아있어야 해요. 수업을 하러 올라가는 시간은 어느새 잠깐 쉬러 가는 시간이 되어버렸죠.


교사가 되는 방법을 배운 적은 있지만, 교사가 되고  후의 방법을 배운 적이 없어요. 그것도 가르쳐줬다면 나는 괜찮았을까요? 아니 나는 괜찮은 교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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