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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Nov 26. 2020

수능 시험장에서 만난 학생

무대가 아닌 교실에서


하루를 꼬박 채워 보내는 수능 당일. 수험장으로 지정된 학교, 그 일대를 관리하는 경찰, 수능 감독을 하는 교사, 수험생과 같은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을 학부모, 그리고 어쩌면 이 하루를 위해 수년을 보냈을 수험생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보내는 하루. 


수능 감독을 하면 집중할 것이 '많다'. 이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집중이라 함은 본래 하나의 표적이 짝을 이루어야 하니까. 단순히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를 아울러 봐야 한다. 볼 것이 많고, 판단해야 할 것이 많으며, 수험장을 나가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오죽하면 다음날 몸살이 날까. 


특히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학생 개개인이 수능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다. 개개인의 축적된 역량을 발휘하는 시간이지만, 다른 개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독립된 개인이 마땅히 존중받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 또한 수능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은 4교시다. 한국사, 사회, 과학, 직업탐구 영역을 30분 간격으로 모두 치러야 하는 시간이다. 가장 학생들이 실수를 많이 하는 시간이며, 원치 않는 부정행위 또한 많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이 시간은 수능 감독 교사 또한 3명이 입실하게 된다. 정면에서, 측면에서, 뒤에서 꼼꼼하게 체크하고, 확인한다. 학생들 또한 본인이 선택한 시험 과목을 순서대로 치러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흐려진 집중력 때문에 모든 시간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도 자잘한 것들을 세심하게 체크하며, 질문하며, 확인한다. 


내가 그 학생을 만난 시간 역시 4교시였다. 감독으로 들어간 교실은 예술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서 밝은 색으로 염색한 머리 스타일도 보였고, 다른 시험장에 비해서 다채로운 느낌이 들어 색다르다 생각했다. 나는 교실 앞쪽 문 앞에서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내 바로 앞에 앉아 시험을 보던 학생이 손을 들어 물어본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시험 순서대로 시험지를 정리하여 놓는 것을 물었다. 도움을 주고, 학생의 수험표를 확인했다. 이름이 보였다. 



김남주 




내가 아는 배우의 이름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뭐, 요즘 같은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학생의 얼굴을 봤다. 눈망울이 까맣고 큰 눈이었다. 코가 오뚝했고, 아주 말랐다고 생각했다. 수줍게 질문하던 학생의 모습에서 여느 또래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예쁜 학생이네. 연예인 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났다. 










하루 온종일 맘껏 긴장되었던 시간이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다. 온종일 볼 수도, 건드릴 수도 없었던 핸드폰을 켜서 이것저것 확인해본다. 혹여나 내가 감동을 담당했던 학교에서 사건 사고는 없었는지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까 보았던 이름을 또 마주했다. 



'에이핑크 김남주' 수능 보러 왔어요



나에게 수줍게 도움을 요청하던 그 학생은, 교실보다 무대가 익숙한 아이돌이자,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던 연예인이었다. 왜 나는 그토록 코 앞에 아이돌을 두고 몰랐을까? 알았어도 문제였을까? 어쩌면 몰랐던 것이 수능 감독으로서는 다행이었을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질 수 있는 이상한 하루. 그 이후로 TV에서 그분을 볼 때면, 나는 자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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