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을 때엔 바쁜 게 만사형통이라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게 생각이라는 것은 일보다도 우위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생각에서 시작, 혹은 생각의 다른 말이라 일이 많아 바쁘다는 것은 무언가 ‘일’이라고 부를만한 생각에 집중, 혹은 몰두하기에 다른 여력이 없다는 것-뿐이다. ‘일’이란 생각에 지배당해 여력이 없어서 다른 생각, 특히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이 끼어들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만사를 거리낌없이 밀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리 되어야 했다. 분명히 손과 머리의 일부는 한창 할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내 머리가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한쪽은 열심히 쓰고 있는 내용을 외우는데, 한쪽은 영양가 없는 생각을 시작했다. 피, 물, 술, 담배, 큰 소리, 화가 난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부터 시작해 기어코 집 앞 편의점이 몇 시까지 열던가, 하는 구체적 쓸모없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우뇌가 쓸데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두개골 안쪽이 근질근질해진 느낌이 들어 뇌를 파내고 두개골의 둥그런 내면을 손톱으로 벅벅 긁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회백질灰白質 덩어리와 핏줄 몇 가닥이 손톱에 파여 손톱 사이에 끼이고 손가락 사이로 엉켜 문드러지는 이미지가 흘러들었다. 이윽고 무언가의 ‘느낌’으로 형상화되어 인지되기 시작한 탓에 이 느낌을 더더욱 떨쳐낼 수 없게 되었다. 괜스레 좌뇌까지 간지러워진 기분이다.
스케쥴러에 그인 붉은 선, 손목에 그이는 붉은 선, 흘러넘치는 붉은 물, 흡입吸入 혹은 흡수吸收/吸水, 엎질러진 술, 피 비린내, 동그랗게 뜨인 탁한 눈과 손톱에 엉키는 회백질, 손에 붉게 든 멍,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하얗고 투명하게 느물거리는 무언가, 반짝반짝한 레이저를 닮은 빛, 머릿속에 엉켜 달라붙은 여자의 마른 목소리, 귀를 막고 있는 헤드폰에서 울려퍼지는 동그란 파동과 그의 시발점 그것은 껍질 속에 뒤엉켜있는 완두콩의 모양을 닮지 않았을까-----------
쓰레기 아닌 쓰레기봉투가, 그것도 분리수거라는 개념부터 엉켜있는 쓰레기봉투가 뇌의 뒷구석부터 차곡차곡 쌓여가고 속이 메슥거리고 눈이 뻑뻑하게 빛을 잃고 그런 눈이 나를 보고 있는 하루가 오늘도 끝이 나고, 그러나 오늘은 월요일임에 내일은 화요일이 올 테고-----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고 혹은 끊기고, 끊기는 척 이어지고, 끊어놓은 것을 다시 잇겠답시고 집어오고 말도 되지 못한 무언가들이 머릿속을 왕왕 헤집고 다니고 있다. 마구 벗어나는 상상과 마구 잡아가두는 상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 머릿속은, 그 머릿속을 다시 또 보고 있는 나는 마치 고양이가 갇혀있는 상자를 바깥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 그 느낌을 그대로 전사하고 있다.
나는 상자 속 고양이이자, 상자 밖의 실험자로서
다리에 오소소 일어나는 소름이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혹은 내가 느끼지 못한 무언가 때문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결국 오늘 밤도 나는 길을 잃었고 나갈 곳도 들어갈 곳도 없는, 그렇다고 그 자리에 서있을 수도 없는- 마치 공중에 매달린 새장의 가운데 둥둥 떠있는 모양새로 어중간하게 앉아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사자死者도 아닌 것이 어찌하여 손끝도 발끝도 뻣뻣해지는 느낌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손발이 차겠거니, 그렇게만 생각한다.
뭐든지 알 수 있고, 무엇도 알 수 없는 밤이 왔다. 눈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