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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E-train

교육 열차(E-train) 타고 떠난 익산&전주 여행

by 유야



5월은 여행 가기 좋은 달이다.

가족들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에, 교육열차(E-train) 여행 상품 광고를 보게 되었다. 익산&전주, 곡성&남원, 순천 세 가지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곡성과 순천은 최근에 다녀왔기에 익산&전주 코스를 고르고, 가족 단체톡방에 함께 갈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선약이 있었고, 아빠는 시간이 된다고 하셨다. 남편은 아직 어린 둘째를 돌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와 아들, 나의 아빠 - 3대가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E-train은 서울역에서 출발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중간역에서도 승차할 수 있다. 하지만 열차를 온전히 즐기고 싶어 전 날 미리 서울 부모님 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침 일찍 아빠, 아들과 서울역에 도착했다. 관광열차들은 도색이 화려하기 때문에 존재감이 강렬하다. 플랫폼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탈 열차가 눈에 보였다. 열차 안은 외관만큼이나 화려하고 독특했다. 시트지의 디자인이나, 쓰여 있는 문구나 폰트 등은 오래된 것 같아 보였지만, 복고가 유행인 요즘에 썩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E-train은 기관차를 빼고 9량으로 운영된다. 5호차는 가판대와 식사 공간, 노래방 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는 다목적룸, 6호차는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이벤트룸이다. 1호차와 9호차 끝부분에는 전망실이 있다. 에듀룸으로 불리는 나머지 객실은 일반 무궁화호 열차보다 좌석 간격이 넓었고, 좌석마다 구비되어 있는 콘센트가 눈에 띄었다. 객차 가운데에 작은 무대가 있어 열차 내 프로그램에 활용되었다.

열차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단체 여행객이었다. 회사에서 온 사람들, 학교에서 주최한 프로그램으로 모인 가족들, 동창모임으로 온 사람들. 오며 가며 들은 짧은 대화로도 그들의 관계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열차에서는 항상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모두가 이 열차 안에서 신나게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리 내어 웃는 것이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열차 내 프로그램으로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시작되었다. 풍선 날리기와 터뜨리기를 하면서 한 객차 안의 사람들이 한 팀으로 연결되었다.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열차도 좋지만, 신나는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열차는 더 좋았다.


10:13 익산역에 하차했다. 열차는 나머지 승객들을 태우고 순천까지 갔다가 돌아올 것이다. 연계 버스를 타고 익산 교도소세트장에 갔다. 교도소 세트장의 일부분은 옛 초등학교의 모습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익산시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의 폐교 부지에 만든 것이었다. 몇 칸의 교실을 실제 학교로 쓰이던 때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사용 중이었던 것이다. 학교공간혁신 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사업의 당위성 중 하나가 '학교 공간과 교도소 공간의 유사성'이었다. 파놉티콘 개념의 확장판 같은 두 공간은 놀랍도록 공통점이 많다. 폐쇄적인 구조에 반복적이며 획일적인 배치를 하고 많은 인원을 수용한다. 그 공간 안에는 정해진 시간표가 있고,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 학교였던 공간에 교도소 세트장을 짓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관람을 마치고 근처 쌈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홀수인 팀이 우리밖에 없어서 혼자 오신 남성분과 한 테이블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분은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신다며 여기저기 다녔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다. 테이블이 꽤 넓은 편이고 내부는 소란스러워 맞은편 대각선에 앉은 분의 여행담이 촘촘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눈치로 맞장구를 쳐드리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벽 한쪽을 벽지처럼 장식한 쌈채소 리스트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가짓수를 자랑했다. 아들은 손에 든 채소의 이름을 벽에서 찾으며 평소엔 잘 먹지 않던 채소를 하나씩 맛보았다.

1시 조금 넘어서 국립익산박물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미륵사지 석탑 등 주요 유물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내려서 훨씬 좋았다. 박물관 내부 진입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로였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서서히 올라가 도착하는 자연물의 일부 같은 공간이라면, 국립익산박물관은 서서히 내려가면 나타나는 다른 차원의 공간 같았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한 걸음씩 높이 걸을 때마다 과거에서 현재로 천천히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익산보석박물관도 들렀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이었는데, 역시 보석은 보석이었다. 눈이 즐거우니 마음도 절로 들떴다. 반짝반짝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꾸미는 것과는 영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투박한 바위 속에 숨은 영롱한 광물의 빛은 없던 소유욕마저 불러일으켰다. 귀금속판매센터에서 함께 오지 못한 엄마의 선물도 저렴하게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전주한옥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빠는 스무 살 청년의 눈을 하고 있었다. 대학 생활을 이 근처에서 한 아빠는 자신의 청춘의 흔적을 한옥마을 곳곳에서 찾으며 한껏 부풀어 올랐다.

"아빠, 그러지 말고 대학교 가 보자!

한옥마을에 여러 번 와봤기 때문에 아빠와 대학교 캠퍼스에 가는 게 훨씬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진심으로 제안했다. 몇 번을 고사하던 아빠의 얼굴은 이미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주교대까지 가는 길을 그리 멀지 않았는데, 가는 길 내내 아빠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들어서 너무 짧게 느껴졌다. 학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숙집도 찾아가 봤다. 놀랍게도 건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집합 장소로 돌아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서글프면서 뿌듯하고, 아쉬우면서 행복했다. 나는 이제 손자의 손을 잡은 할아버지 안에 살아 있는 청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첫 번째로 버스에 올라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함께 점심식사를 한 남성분께서 우리에게 십원빵을 주셨다. 관광지가 아닌 곳으로 돌아오다 보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그분 덕분에 관광음식 퍼즐 조각도 채웠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석식으로 도시락이 제공되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열차는 만경강 철교를 지났다. 이 동네는 구 만경강 철교에 있는 '비비정예술열차' 때문에 몇 번 방문했던 곳이다. 구 만경강 철교는 일제강점기에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남긴 밥을 쳐다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승객들의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무렵, 보이는 라디오가 시작되었다. 사연과 음악을 보내달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고, 나는 사연 없이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보냈다. 그런데 곧 또다시 부끄러워졌다.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사연들은 음악이 재생될 틈도 주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함께 여행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은 어떤 어머니의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있어도 항상 마음으로 함께 있는 것이 가족이었다.


7시 50분. 나와 아들은 서대전역에서 내렸다. 아빠와 작별인사를 하며, 이번 여행이 왜 유독 좋았을까 생각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은 수도 없이 했는데, 엄마 없이 아빠와만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다. 엄마 옆에 있는 아빠는, 엄마가 옆에 있는 아빠와 달랐다. 조금 더 적극적이었고, 솔직함보다는 배려를 택했고, 1+1이 아닌 온전한 한 사람이었다. 이번 기차 여행을 통해 지금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이 책갈피처럼 꽂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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