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기차 여행 넷째 날
아버지는 교직에 몸담고 있는 내내 '열정 과다 교사'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아버지와 제자들의 정동진행 열차에 동승한 적이 있다. '현장체험학습 갔다가 사고가 나면 누구의 책임인가'를 논하며 서로 몸을 사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서울역엔 학생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모여 있었고, 곧 우리는 정동진으로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너무 오래되어 인상 깊었던 장면만 몇 가지 기억난다. 먼저, 역에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바다의 밤하늘. 수많은 별이 검은 도화지에 쏟아질 듯 수 놓여 있었고, 파도는 완벽한 배경 음악을 연주해 줬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날을 새우며 해 뜨는 것을 기다렸다. 중간에 숙소에 들어갔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그런 것들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심지어 그날 일출 보는 것에 성공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돌아오는 기차에서의 촉감이다. 바다에서 놀았는지 바지 아랫단과 양말, 신발이 젖어 있었고, 그 상태로 열차에 올랐다. 어찌할 수 없는 찝찝함을 견디며, 그 와중에 부족한 잠을 채우며 돌아왔다. 나와 정동진을 함께 갔던 아버지의 제자들은 나보다는 선명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살면서 한 번씩 떠올라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이기를.
강릉역에서 정동진역까지의 15분. 그 짧은 사이를 못 참고 또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지금 나와의 이 순간이, 언젠가 아들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을까 기대가 되어 웃음이 나왔다.
서울 가는 KTX를 8시 25분에 타야 하는데, 정동진 왕복 열차는 마치 일출 시각에 맞춰 짜여 있는 것처럼 완벽하다. 정동진역에 머무를 시간 48분. 역 스탬프를 찍고 나오는데, 저 멀리 새벽 하늘빛을 닮은 열차가 다가온다. '레일 크루즈 해랑', 해랑 열차다!
아들은 이 열차를 타려고 몇 년째 돈을 모으고 있다. 저금통의 이름도 '해랑 저금통'이다. 열차가 눈앞을 지나가는 동안, 객실 안 침대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들은 다시 한번 절약의 의지를 다졌다. 앗, 수금의 의지인가.
드디어 줄넘기를 했다. 아들은 방학 숙제를 해야 한다며 줄넘기 줄을 챙겨 왔다. 스스로 정하는 방학 숙제인 모양인데, 매일 줄넘기를 스무 개씩 하겠다고 적었나 보다. 3박 4일 여행에 굳이 그걸 들고 가야 하냐며 한심하게 쳐다보는 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가방에 쑤셔 넣어 왔다. 그동안은 마땅히 할 곳이 없어 가방 안에만 있던 줄넘기 줄은 해뜨기 전 동해 바다에 와서야 스무 번 돌려졌다.
해는 순식간에 떠올랐고, 구름이 많아 한참이나 올라온 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바다에 걸쳐 있는 장관은 보지 못했지만, 미뤄뒀던 방학 숙제도 했고, 해랑 열차도 보았고, 따끈한 어묵도 맛보았으니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강릉역에 보관해 둔 짐을 찾아 서울행 KTX-이음에 몸을 실었다. 눈 깜빡하니 청량리역이다. 청량리역에는 바로 어제(2025.1.11.) 재개통한 교외선 열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일출 대신 받은 선물일까.
서울역은 늘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누군가는 일 때문에, 누군가는 여행 때문에, 어떤 아이는 기차만 타는 걸로도 충분히 신나서. 서울역을 떠나기 전 잠시 앉아 머무른다. 짐도 추스르고, 마음도 가다듬기 위해. 수많은 열차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두근두근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이다음 열차는 서화성역에서 홍성역으로 가는 ITX-마음 1255이다. 서화성역까지 3시 55분까지 가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넉넉하게 남았다. 서울역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숙대입구역 근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들르고, 2주 전 파주 운정중앙역부터 서울역까지 개통했으니 기념으로 GTX-A를 타고 대곡역까지 가고, 아들의 이름을 한 역에 다녀오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나는 글자의 의미보다는 형태 그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내 이름에 한자 뜻이 없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때 자신의 한자 이름을 적어오고, 그 뜻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생전 처음 보는 어려운 한자를 적어왔고, 거창하면서도 숙명적인 뜻을 소개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전 한글이름이에요.'라고 말하며, 혼자 우쭐했다. 정해진 의미가 없었기에 삶에 대한 틀도, 제약도 없었다.
아이의 이름도 한자 없이 짓고 싶었다. 의미에 담을 사랑을, 구조에 쓰기로 했다. 한글로는 받침이 없고, 영어로는 알파벳으로 네 글자 이하. 이 정도면 부모가 되어 주는 첫 선물로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시장 조사를 너무 안 한 것이다. '시우'라는 이름은 2017년 남자아이 이름 4위를 할 만큼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놀이터에서 누군가 '시우야~'하고 부르면 우리만 뒤돌아보는 게 아니었다.
시우역에는 한자로 時雨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적절한 시기를 맞추어서 오는 비'라는 뜻이다. '적절한 시기'라... 어쩌면 이름도, 사람도, 어느 시기에 어디쯤에서 만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그 의미는 나중에야 비로소 스며들 것이다.
서해선은 2024년 11월 2일 개통했지만, 아직 원시부터 서화성 구간이 공사 중이라 초지역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서화성역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지 여쭤봤다.
"역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념 스탬프는 없어요.
'서화성역'이라고 쓰여 있는 글자 도장은 있는데, 이거라도 찍어드릴까요?"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그렇게 특별한 도장을 찍고 돌아서는데, 역무원님께서 창구 밖으로 뛰쳐나오셨다.
"잠시만요! 이것도 기념으로 가져가세요."
역무원님께서는 기계에서 뽑은 (아래 아들의 일기장에 붙어 있는) 서화성역 입장권을 건네주셨다.
"아......"
4일 동안 매표창구, 역무실 혹은 여행 안내소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친절하고 따뜻했다. 일본에 갈 때마다 역무원분들이 정말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한국보다 더 친절하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토종 한국인인 내가 우리나라 역무실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었으며, 창구에서 무언가를 여쭤볼 일도 없었다. 기차표는 온라인으로 예매하면 그만이었고, 웬만한 건 역에 있는 기계 장치로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마주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렇게 나의 오만과 편견을 반성했다.
홍성역으로 향하는 ITX-마음 1255 열차는 시끌벅적했다. 열차 등받이 틈새로 흘러 오는 소리만으로도, 할아버지와 손녀를 포함한 대가족이 그들의 좌석을 돌려 마주 앉았고, 오랜만의 여행에 들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약간은 소란스러웠지만, 그들의 설렘에 방해를 놓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홍성역 앞에서 일렬로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단번에 그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류의 오지랖이 취미인 나는 이번에도 참지 못했다. 그렇게 단 한 명도 빠지지 않은, 완벽한 가족사진이 완성됐다.
홍성역에는 식당이 없어 터미널까지 저녁을 먹으러 다녀왔다. 내리막길이 오르막길이 되자 주변이 캄캄해졌다.
서울역에서 조치원역으로 직통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굳이 서해선을 타겠다고 마음먹어 대곡역, 초지역, 서화성역, 홍성역, 천안역을 거쳐 조치원역으로 돌아 내려왔다. 느리게, 돌아 돌아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덕분에 친절한 역무원님도 만나고, 꽁꽁 얼어 아름다운 아산호를 보고, 다른 가족의 설렘을 엿듣고, 맛있는 치즈 라면과 김밥도 먹을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잘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