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따라오게 하는 것

essay03

by 유연

최근 들어 부쩍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딴에는 성장을 기원하며 했던 일이 후배에게는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부쩍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하면 어차피 안 될 친구니 후배가 가진 능력이상의 어줍지 않은 충고나 조언은 하지 말라고 한다.


지인들의 말도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보다는 내 능력 부족 탓이 더 큰 게 아닌지 스스로 반문하게 됐다.


나의 문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했다. 전천후로 능력이 뛰어난 경우보다는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특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숫자에는 뛰어나지만 흐름을 파악하고 통찰해 방향을 모색하는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일은 버거워하는 이도 있다. 반면 숫자는 젬병이지만 아이디어가 샘솟고 사람과의 관계에 탁월한 이들도 있다.


그런데 능력 이외의 일을 후배들에게 하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있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은 직원들이 일당백을 해야 하는 곳이기에 업무영역이 확실히 분업화가 되어 있지 않다. 현장 일도 해야 하고, 보고서도 써야 하고, 보도 자료나 각종 홍보자료도 전천후로 만들어내야 한다. 연구나 조사, 분석 등의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때가 종종 있는데 나 혼자만으로는 버거웠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루틴이 많아 다들 허덕이는 것도 아니니 직원들에게 조금씩 그런 업무를 확장해나갔는데 생각보다 지지부진했다. 왜 일까 생각했다.



역량의 부족이었다. 몇 번 시도는 했지만 단편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 결과를 맺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 마음속에 후배들이 조금 더 종합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아쉬움이 자라났고 단순하고 몸으로 때우는 일만 하고 있는 후배들이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며 어떻게든 업무를 확장시키려 애썼다. 그러다보면 발전할거라 여겼다.


가장 먼저 이십대 후반의 막내에게 조사 분석 보고서, 제안서, 기획서, 보도자료, 평가서 등을 써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일들인데 그런 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후배를 불러 라인 바이 라인,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후배는 인터넷도 찾아보고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나는 완성된 보고서를 보면 뿌듯할 거라며 독려했다. 하지만 그는 곧 지치고 힘들어했다. 왜 그런 걸 해야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급기야 힘들다며 울었다. 뭔가 내가 크게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역량을 키우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싫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역량을 키우는 데에는 무관심하고 어떻게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이해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배들이 어떤 일을 하던 기본기가 충실한 친구로 평가받길 바라는 마음에 하나하나 가르쳤던 건데 안 해도 되는 일이면 하지 말자고 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도 지쳤다.


그러면서 차차 나는 그들이 가진 역량 이외의 일은 하라고 하지 않게 되었고, 가르치는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정해진 소수의 인원이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상호 경쟁보다는 보완을 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들이 못하는 일은 내가 매우고 또 내가 못하는 일은 그들이 매우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점점 내가 힘들어졌다. 나는 멋모르던 사회초년병 시절 선배가 빨간 펜을 들고 하나하나 가르쳐줬던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이를 악물고 노력했던 케이스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그 자리에만 있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의 일 욕심 때문에, 이런 일 저런 일 하고 싶은데 그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외로움도 심히 몰려왔다. 아, 나의 고민을 함께 나눌 든든한, 일 잘하는, 아하면 어하는 후배가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인터넷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내 외로움을 위로받을 요량이었다. 후배에게 목표 설정을 수준에 맞게 해주고 낮으면 설득해서 높여주고 차차 하라는 조언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단계별로 밟아가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선배의 말은 하늘같이 받아들였으니 후배도 그러했으면 하는 꼰대의식 같은 게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그래서 서운하고 섭섭하고 지쳤던 거라고 말이다.


그러다가 직장생활 어렵게 하는 상사 유형3과 같은 얘기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직장생활을 어렵게 하는 상사 유형 첫 번째는 말을 얄밉게 하는 사람이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비꼬고 지난 일도 잊지 않고 들먹이고 칭찬인척 기분 나쁘게 비꼬는 사람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작은 실수도 그냥 안 넘어 가는 유형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며 꼬투리를 잡고 두고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란다. 세 번째는 노예처럼 부려먹는 사람이었다.


퇴사 유발 상사 유형 1위는 팀원과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상사로 꼽혔다. 근소한 차이로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상사가 2위였고, 3위는 권위적인 상사라는 글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는 상사, 불가능한 시간에 업무를 요구하는 상사 등도 그 뒤를 이었다.


조금씩 내게도 해당사항이 있는 것 같았다. 후배의 성장을 바라며 했던 비판이 말이 얄밉게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사정없는 경우는 없다고 못 박으며 어떤 사정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 역시 정말 싫었을 거다. 능력이 부족해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높은 목표 수준을 정해놓고 마감시간까지 결과물을 내라고 채찍질 했던 건 아닌지 후회도 되었다. 그런 모습이 권위적이거나 존중하지 않는 상사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일이 정말 버거운 친구에게 사흘 뒤까지 칼럼을 한편 써서 내라고 하면 그 친구는 성실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글 쓰는 법에 관련해 조언을 듣고 사흘 뒤 멋진 칼럼 한편을 내게 디밀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업무에 대한 자세로만 모든 것을 극복할 수는 없는데 자세를 매우 중시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도 하게 되었다. 나도 뭐 그다지 자세가 훌륭하지는 않으면서 남에게는 훌륭한 자세를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다.


후배들에 맞춰 세심하게 선배로서 살펴 같은 마음과 비슷한 실력을 쌓도록 하는 게 선배의 역할인데 그 점에서는 나는 한없이 모자랐고, 그 점을 인정하기 싫어 스스로 힘들어졌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나는 선배의 빨간 펜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선배의 지적이나 가르침에 반항을 자주 했던 말 많은, 한마디로 피곤한 후배가 아니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논리적이지도 설득력도 없는 주장으로 얼마나 선배를 몰아쳤나 말이다. 가르치려하지 말고, 따르도록 하라고 선배에게 충고(?)하던 황당한 후배가 바로 나였다. 후배에 대한 세심한 이해 없이 무조건 가르치려고 했던 선배를 비난했던 내가 지금 그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후에 후배들과 차 한 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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