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혼자 먹게 해주세요"

essay17

by 유연

한때 내게도 퇴근 하지 않는 상사때문에 저녁 시간을 모조리 저당잡힌 시절이 있었다.

닫힌 문이 이제나 저제나 열릴까, 특별한 이유없이 뻗치고 있을 때는 정말 괴로웠다.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헸기에 심호흡을 하고 "이제 그만 들어가셔야죠" 라고 직접 화법을 날린 적도 좋종 있었다.

미운털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간만에 여자친구 만나기로 한 후배가, 간만에 부모님과 저녁식사 하기로 한 동료가 지금 계속 사무실 밖을 서성이며 상대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속삭이듯 말하고 있는 것을.




그로부터 얼마 후, 내가 좀 더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가차없이 후배나 동료들을 퇴근시켰다.

물론 윗사람은 아무도 없냐는 식으로 툴툴 거렸지만, "제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넉살을 떨었다.

웃으며 넘어간 적도 있지만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나는 말이야.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고 생각해. 지금 이렇게 시국이 시끄럽고. 오늘 또 뭐야 누가 지금..."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때면 반성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채 한동안 상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내게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의 의미가 나에 대한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리고 지풀에 지친 상사가 "그래. 니들도 고생이지."라고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조목조목 그렇게 했어야하는 그간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주 52시간은 커냥 토요일도 일하던 시절, 주60시간 기본에 일요일도 출근했고 일이 많으면 라꾸라꾸를 가져다 놓고 사무실에서 자던 시절이었다.


눈꼬리를 치켜뜨고 바라보던 상사도 내 얘기를 듣곤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앞으로는 퇴근시켜."라고 하면 꽤 큰 복지를 얻어낸 것 마냥 기뻤다.

내가 할 일은 동료나 후배들의 삶의 질을 올려주고 결국 일의 능률을 올리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 상사와 내가 겪는 고충들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하면서 쌓인 감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큰 기쁨이었다. 어려서 찢어지게 가난해 못먹었던 탓에 그 반찬만 나오면 너무 좋다는 상사의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때는 말이야'로 끊임없이 과거가 소환이 됐다. (지금 MBTI로 사람을 맞춰보는 것과 같이)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후배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인정받는 상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깐 하고 말이다. 착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지나친 착각.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없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후배들과 점심을 먹어왔다.

이전 직장에서도 그랬고 지금 새로운 직장에서도 그렇다.

메뉴를 강요하지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일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고 여겼기에 불편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뒤늦게 불편한 존재라고 깨달은 것은 누가 내게 말해서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뒷통수를 망치로 내려친 것 같은 깨달음이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식사 하러 가시죠.'라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아닌 자기들끼리 역할을 나눠서 내게 말하고 있었고, - 아마 그 얘기도 하면서 '아니 알아서 먼저 일어나면 안돼. 왜 꼭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해야 가?'라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 밥을 먹고 난후 '커피 한잔 하러 갈까.'라는 내 말에 좋아요라는 말 뒤펀에 '아니오. 점심시간 만큼은 우리끼리이고 싶어요.'라는 그들의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요새는 회식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으며 굳이 회식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인간적으로 가까워져야 일이 더 시너지있게 된다는 믿음 같은 것이 내겐 있고,

혼밥이어도 점심시간을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후배에게는 매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단체로 어쩌다 밥을 먹을 때 제일 막내가 가만히 앉아서 차려진 음식이나 먹고, 고기굽는 일은 상사가 하던 말던 신경도 안쓰는 경우에는 조금 마음이 불편해지고,

출장 다녀오는 동료나 후배에게 식사는 했는지, 관심조차 없는 이들을 보면 몰인정 하다는 생각마저 드니,

그들에게도 그런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을지 모른다.


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싶어졌다.

직원 삶의 질을 우선하니, 따뜻한 선배이자 상사로 존경받길 바라는 보상심리 같은게 있는,

꼰대 중에 상 꼰대가 아닌가.

막말을 하거나 강요하거나 화를 내거나 집요하지 않아도 사고 방식이 꼰대일 수밖에 없는.




참으로 어렵다.

존경받는 상사가 목표인 적은 한번도 없다.

성과를 내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상사의 역할이라 여겼다.

못하는 것은 못하는 이유를 함께 고민해주고,

잘하는 것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나의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후배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은 일을 잘하는 것은 자신이고 일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속에서 한없이 외로움을 느끼지만, 어디 나는 안그랬나 싶다.

나역시도, 상사는 죄다 싫은 구석이 있었고 그걸 지렛대 삼아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성장해오지 않았나 말이다. 상사가 당연히 우리를 위해 근무여건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내 마음처럼, 누구나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꼰대이냐 아니냐가 갈리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점심은 저 혼자 먹을래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후배와

또 섭섭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상사.

또 반대로 섭섭해하는 상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후배.

그 둘의 콜라보는 어렵지만, 또 헤쳐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전 07화MZ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