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배신

essay20

by 유연

이따금 겪으면서도 여전히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자신의 능력 이상 포장된 경우도, 핏대를 세우고 흥분만일삼는 경우도 모두 그런가보다 하고 웃어넘기는 게 가능한데,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굴지만, 속은 여러가지 생각으로 복잡하다. 아직도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괴롭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예전에 일하던 직장 사람들을 만났다. 업무라는 게 사람이 바뀐다고 모두 종결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연속성 상에 놓여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사뭇 이전에 진행되던 일의 진행상황이 궁금했고,

또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달아나 못내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편으로 일은 진행이 되었고, 한편으로 일의 진행에 크고작은 난관들의 원인은 나라는 사람이 저지른 잘못된 판단의 결과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 5년 간을 함께 해온 후배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안그래도 제가 그때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분명 말씀드렸었는데요. 뭐때문인지 확답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부치더라고요. 암튼 그때 좀 저는 예상했고 뭐 윗사람에게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데, 저도 답답했습니다."


안봐도 뻔한 후배의 워딩이 바로 옆에서 말하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몇번의 경험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질문을 하면 영락없이 과거 일하던 다른 사람의 탓을 하거나 현재 일하는 사람이 그 일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으니 저는 잘 모른다는 식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몹시 당황스럽고 괴로운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그 친구가 나한테까지 그렇게 굴지 않을거라고 낙관했다는 점이다. 완벽히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나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건 고육지책이야. 이게 해법은 될 수 없어. 분명 상대는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성의를 보여도 다른 것들을 협상의 테이블에 올려놓을테고, 2023년이면 그게 가시화될지도 몰라. 협상의 주도권을 놓치 않도록 방법을 고민 해주었으면 해. 이렇게 떠나면서 무거운 짐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의 이런 말은 공중으로 다 부서져, 그 친구는 나를 무리한, 아무 실익도 없는 일을 추진했던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그 후배와의 지난 5년간 도대체 무엇을 했던 걸까.

자료를 찾고, 그것을 잘 정리하고, 문제해결 실마리를 찾아 해결을 하도록 독려하면서

나는 그 후배의 성장을 간절히 바래왔지만

그 역시도 쓸데없는 오지랖과 잔소리로 여겨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애정을 갖고 가르치려고 했던 건데, 후배는 괴롭힘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렇게 안해도 그냥저냥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별 지장없는데 굳이 뭔가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좀 오버지 않냐며.



생각해보니 한번도 그 친구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해 부족한 부분을 먼저 채울 줄도 몰랐지만

내가 가진 능력이나 고민 따위에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듯 하다.

믿었던 후배의 배신은 어쩌면 '그런 사람을 믿었던'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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