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04
우연치 않게 후배가 나에 대해 뒷담화 하는 것을 직접 듣게 된다면?
당황스러움도 잠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어 화가 치밀어 오를지 모른다. 선배의 온당한 지적이나 업무지시도 일을 못하니 매사 불만으로 포장하는 것이라며 시시콜콜 지적을 하며 혼구녕을 내주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한꺼번에 동시다발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일의 우선순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명확하게 우선순위를 정했다고 생각했지만 후배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일에, 선배는 계속 결과물을 재촉하니 짜증이 난 후배는 메신저에 나를 원망하는 글을 올렸다.
‘정말 왜 저러는 거니. 미치겠다. 이거 하라고 했다가 저거 하라고 했다가 시킨 지 얼마 안 되서 다 됐냐고 하고. 000 돌은 거 아냐?’
이십년 정도 된 일이라 정확한 문장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런 내용의 글이었고, 내 이름 석 자가 정확히 박혀 있었기에 뒷담화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내가 메신저를 확인하자마자 저 끝에서 “어머나 어떡해! 어떡해!” 하며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고 “그게 아니고요...” 하면서 뭔가를 얘기하려 후배는 내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딱 걸렸다. 그치?” 시베리아보다 매서운 찬바람 부는 내 목소리에 후배는 순간 얼어붙어 버렸다.
그 이후에는 잘 기억나질 않지만 엄청나게 독설로 후배를 박살냈을 것이다. 아마도 ‘불만이 있으면 내게 직접 말해. 다른 사람한테 뒷담화하지 말고. 온갖 악의적인 소문을 만드는 00통신... 너도 그 일원이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부풀려지고 여기서 형성된다는데. 결국은 너도 그것 밖에 안 되는 아이였어?’ 하며 어쩌고저쩌고. 일장연설을 늘어놨을 거다.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날며칠을 눈치 보게 행동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세세한 정황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나는 후배에게 불만을 품게 만든 상사였고, 그리 현명하지 않게 처사했고, 그 이후로 꽤 상당기간을 내가 뭘 잘 못했는지를 모른 채 나는 정당했고 후배는 부당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우리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착하고 매사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친구였다. 꼼꼼함은 부족했어도 잘 하려고 애를 썼던 친구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사실이었고 성격이 좋아 많은 동료와 선배들로부터 예쁨을 받는 아이였다. 늘 웃는 얼굴이었고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따뜻한 친구였다. 힘들게 외부 출장을 다녀온 후배를 위해 시원한 음료수를 내밀며 기분좋은 웃음을 짓던 친구였다. 때론 내게 직접 만든 쿠키를 내밀며 ‘한번 드셔 보세요. 맛은 없지만. 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같은 쪽지를 남기는 마음이 예쁜,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저렇게 불만을 품었다면 내게 뭔가 큰 문제가 있었던 거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기를 바랐던 것은 아닌가?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일부러 부정확한 업무지시를 하고 모르면 물어봐주길 시험했던 것은 아닌가?
성격 좋은 건 아무 소용없다, 일이나 똑바로 해라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꽤 세월이 흘러서였다. 쉼 없이 달려온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1년간의 휴식기에 느닷없는 자기반성이었다고나 할까. 마치 내가 모든 일의 정답지인 것 마냥 대접받길 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낙 성격이 주도면밀한 편이라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고, 그 길로 가는 여정에 각자 준비할 소품은 무엇인지를 시시콜콜하게 주문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 모양의 배낭을 준비 했냐, 운동화 색은 왜 남색이 아니고 검정색이냐를 가지고 잔소리 하는 피곤한 상사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왜 후배들한테까지 강요하냐고 말이다. 나한테나 피곤하게 굴면 될 것을 말이다.
여행갈 채비를 하겠노라 결정하면 각자 어떤 모양의 배낭을 매든, 어떤 운동화를 신든 자율에 맡겨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것을 나와 상의해 결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배를 질책했다. 마치 배낭의 모양과 운동화의 색이 우리 여정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 인냥 깊은 착각을 했던 거다.
많은 준비물을 바로 완비하지 않으면, 무능력하다고 낙인을 찍어버렸던 것 같다.
일부러 시험에 들게도 했다.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를 보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업무를 지시했던 적도 있다.
모두 나를 대하면서 긴장했다. 나는 일사분란을 원했고 모두 내 지휘에 따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한답시고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주입하거나 강요했다.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얘기하는 후배에게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른 뒤 어떤 이가 나에 대해 조심스레 그곳에서의 나는 꽤 악명이 높았다고 했다. ‘성격이 좋다는 것= 무능력하다’는 평판이라는 점을 들며 반쯤은 칭찬이라고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나의 단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말이었다.
알고 보면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면 뭐 하나. 알기 전에 이미 지쳐버리고 마는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만으로는 이미 지난 세월 쌓여버린 내 평판은 요지부동인데 말이다.
후배가 메신저에 나에 대해 글을 남겼을 때, 나는 그 친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고 미안한 일이 있다면 사과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만 여겼다. 그 어리석음이 요지부동인 평판을 만들어냈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에 ‘성격이 더러운’이라는 악명은 그대로이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만큼은 적어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뒷담화가 시작된 순간, 그 순간이 상사로서 별 볼일 없다는 신호임을 잊지말자.
물론 그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일하기 싫어 남탓을 하거나, 별거 아닌 일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이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 편견은 일단 얘기부터 듣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
남말하기 좋아하는 나쁜 습관 탓으로 여기는 순간 나는 내 자신의 단점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도 사람과 하는 것이니. 그 타이밍에는 최대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나를 냉정하게 다스리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내 잘못이 있다면 깔끔하게 인정하자.
후배가 잘못한 거라면 그 잘못을 받아들이도록 설명하자.
그게 진정한 선배와 후배의 모습이며 또다른 후회를 만들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