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14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국민이 절반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3월 23일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0%였다.
남자는 55.8%, 여자는 44.3%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특히 자녀가 필요한지 물음에는 10대는 41.1%가 20대는 44%만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내 주변에도 결혼 한 사람보다 안한 사람이 더 많다. 그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그저 각자의 사연과 이유로 어떻게 하다보니 결혼하지 않는 삶을 갈게 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연애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나타나질 않는다며 풀 죽어 있던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결혼 얘기가 나오자, 글쎄요 하는 표정이다.
이유인즉슨, 결혼한 삶이, 상대와 함께 만들어갈 일상이, 그닥 해피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처음에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만류했지만 나이 먹어 시집살이 하는것 마냥 마음졸이며 살 수는 없지 않냐며 마지막 쐬기를 받던 그 친구의 말에, 나는 옳소라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하니 연애를 했을테고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선택(비록 얼마 못가 환상이 깨진다고 해도)해도 잘 살까 말까 한데,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상황에서 밀어넣는 건 고역을 감내하라는 것일 뿐이다.
물론 불과 십수년 전에는, 그럼에도 불구 한번 살아보자는 마음이 유효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력이 있다면, 성격이 좋다면, 나를 사랑해준다면, 또 오랫동안 연애를 했으니 등등의 이유로
결혼식장까지 들어서는 게 자연스러웠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으로 여겨 선을 100번 이상 본 친구도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에게 결혼은 인생의 기본 옵션과 같은 거였고 결혼한 삶이 결혼하지 않은 삶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그 친구는 말한다. 결혼하지 않는 삶도 나쁘지는 않다고.
지금보다 더 평온해지고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없기에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시대다.
취미생활을 즐기고 명절에 해외여행도 가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삶.
그런 자유로운 일상은 결혼과 동시에 타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결혼을 꺼린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낳는 크고작은 갈등을 겪으면서까지 사람을 만날 이유는 없다며
불편해지면 연애는 바로 끝난다.
특히 결혼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은 희생과 헌신에 가깝다.
상견례 자리에서 예비 장인이 명절에 친정과 시댁을 돌아가면서 방문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차차 생각해보자는 말로 거절했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상대의 제안이 꽤 황당하게 여겨졌다는 뉘앙스였다.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했지만 그 자리에서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떤 이는 직장을 진득하니 다니지 못하는 아들을 나무라기 보다는 며느리가 너무 아들의 기를 죽이는 탓이라고 여겨 며느리 탓을 하는 사람도 봤다. 며느리가 짊어질 삶의 무게에는 무관심했고, 며느리가 승승장구해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거꾸로 정작 본인은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거부하면서 사사건건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아내도 있고,
딸집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사위를 감시하는 장모도 봤다.
뿌리깊게 자리박힌 불균형적인 사고방식은 빠르게 신간편하게 혼자사는게 좋다는 생각으로 번져갔다.
물론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고 교육수준 등이 올라갈 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은 선진국으로 가는 나라가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다. 그런데 특유의 불균형적이고 비합리적인 인식이 더해 결혼과 출산을 보류하거나 포기하게 만들고 있고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 걸까.
결혼을 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를 들여다 봐야 한다.
동거를 인정하고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도 똑같이 지원하는 프랑스나
아빠의 육아휴직이 의무화된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신진국은 제도도 제도지만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든 세탁기를 돌리거나 집안청소를 하고, 저녁준비를 하고
명절에 의무적으로 부모님을 찾아와야한다고 강요하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못볼 수도 있다는 점을
어른들 스스로가 인지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가, 온 사회가 함께 공동으로 양육을 하도록 시스템이 작동한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 양육과 일을 병행할 수 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나 다니는 학원으로 서열화되지 않고, 왕따나 학교 폭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밤늦은 시간 학원에서 귀가하더라도 치안이 잘 된다는 믿음이 있으며
한푼 두푼 모아 내집 장만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다.
10년뒤 20년뒤, 성장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노후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각자의 직업에 충실하면 미래가 나아질 거라는 비전이 있다.
그리고 말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이 희생이나 헌신만이 아닌,
지금보다는 행복하고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뿌리깊에 내려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 사는 삶이 더 낫다는 믿음은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마가렛 대처는 생각은 곧 말이 되고, 말은 곧 행동이 되고
행동은 곧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곧 인격이 되며
인격은 곧 운명이 된다고 했다.
서로 행복하자는 것이 가정이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으로 육아에 참여하며
사회 전반, 남녀노소 모두에게 고루 그러한 인식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곧 그 사회의 문화가 되면서 그 사회의 운명은 윤택한 미래로 나아간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불균형적인 생각'부터 고쳐가야 한다. 아주 철저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