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목록 복귀

- essay05

by 유연

상대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만 상대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반대로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대는 또렷이 나를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반갑게 아는 척하는 상대에게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찜찜했던 기억,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법과 제도 등 정책과 활동 속에 반영해야 했던 나는 종종 관계자는 물론이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조차 기억을 하지 못한 적이 많다. 너무 젊어지셔서 못 알아봤다는 식으로 애써 웃어넘기지만 상대가 느낀 서운함이 온몸으로 전해져 와 민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꼭 기억해야 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해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실수를 없애고자 기억력 감퇴가 시작된 40대 중반부터 명함이나 핸드폰 주소록에 메모를 했다. 누구와 언제 무엇 때문에 만났는지 정도는 기록해두려 한다.


본의 아니게 1년 정도 일을 쉰 적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핸드폰 주소록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알 수 없는 이름과 011,017,016등 오래전 연락처가 눈에 띄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과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남겨진 핸드폰 번호. 최근 1년간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 삭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삭제는 쉽지 않았다.

혹시 상대와 연락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상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누구시냐고 반문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몇 명을 지우다 포기했다.

대신 카카오 친구 숨김 처리라는 소극적 방식을 선택했다.

1년간 연락 하지 않은 사람을 숨김처리 해도 핸드폰 주소록에 있는 대부분을 해야 했기에 양이 상당했고 마무리 짓지 못해 지금까지 수년 째 내 핸드폰 주소록은 수천 명의 사람들로 방치되어 있다.

마치 버리지 못한 헌옷들처럼 말이다.


최근 우연히 신문 오피니언 란을 보며 헌옷 속에 숨겨진 텍도 안 뜯은 새 옷을 발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필즈상을 받은 허준 교수와 관련된 칼럼때문이었다. 수학에 재미를 붙인 아들이 보면 좋을 법하다는 생각에 신문을 읽기 좋게 펼쳤는데 칼럼을 쓴 이가 20년 전에 종종 차 한 잔 하며 대화를 나누었던 분이었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우며 나홀로 뻗치기를 했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망울은 초롱했고 말끝에는 애정이 묻어났다. 새로운 소식을 찾고야 말겠다는 기자로서의 사명감 말이다.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잘 지내시는지 안부도 묻고 칼럼도 잘 읽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전화번호 목록을 뒤지는데 전화번호가 있었다. 지금 한국에 없으니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어볼까 했다. 수년전 내가 숨김목록으로 처리를 해놨었나 보다. 어렵사리 숨김목록에서 친구목록으로 복귀를 한 후 1:1 채팅창을 열었지만, 막상 글은 쓸 수가 없았다.


그분이 쓴 칼럼을 보며 기분 좋은 추억에 잠기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이십년도 더 지나 연락을 해 당황스럽게 하기보다는 직접 만나게 되면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 것이 더 예의 있는 처사라고 여겼다.


나는 적어도 수년간 연락한번 없다가 내 필요에 의해 연락하는 철면피는 되지 말자는 다짐이 떠올랐다.

혹여 내가 그분께 연락하는 게 정말 단순 안부때문만인가,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순간이었다.

정말 안부때문일지라도 상대는 내가 몸담았던 곳을 떠올리면 배경과 이유를 생각하려 할 게 뻔했다.

직업인으로서 만난 것이지 친구로 만난 것은 아니었으니깐 말이다.

이제와 친구처럼 지내자는 건 좀 뜬금없잖은가.

그분에 대한 응원의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내 핸드폰 친구목록으로 복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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