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08
한때 나는 지독한 일중독자였다.
내가 스스로를 그리 칭한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쉼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처음에는 칭찬인줄 알았다. 어리석게도 일중독=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착각했다.
아니올시다라고 깨달은 것은 세월이 흐른 뒤 나의 지난 모습을 떠올리면서였다.
나이가 먹으니, 지나온 날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예전에 나는 이랬었지 하면서 후회 반, 깨달음 반 이렇게 과거를 반추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 속에서 조금 진일보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과정이 끼어들곤 한다.
일중독자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신만 일에 빠져 사는 게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그 속으로 끄집어넣으려 기를 쓴다는 점이다. 시도때도 없이 연락해 자료를 찾거나 무언가를 질문해서 평온을 깨는 것은 기본이고,
어서 빨리 와서 이 일좀 도우라는 식으로 주말 출근을 종용하는 무지막지한 행태를 일삼는다.
반성한다. 아니 후회한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부끄럽지만 내가 배운 방식대로 남에게도 똑같이 했던 것 같다.
최하 말단이었던 내게도 여름휴가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려고 버스를 예매하고 막 출발하려던 찰나, 상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급한 일이 터졌는데, 어디 멀리 안있으면 어서 나와야겠다."
당연히 저 지금 시골집인데요 라고 했어야했는데, 나는 네 빨리 갈께요 했다.
마치 나를 찾는 것이, 위급한 상황에서 해결사를 찾는 것인 마냥. 그렇게 감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굳이 휴가까지 낸 직원을 호출하는 것은 아마도 나의 태도를 시험해보거나, 하기 싫은 일이라 내게 떠맡기고 싶거나 둘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나라는 존재가 중요하다고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만 했으니.
그런 선택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나는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세상의 변화속에서도 여전히
그 결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성장을 했고 후배들은 나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마지못해 따르는 일이 반복되고, 불만이 누적되다가 급기야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명하지 못했던 나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생각에 호되게 질책했지
내 행동의 무자비함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어떤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쟁취의 방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 높게, 일의 효율을 높여 집중해 일할 때 일하고 놀때 화끈하게 놀고, 자신을 돌볼줄 알며 주변 사람들과도 소통하는 시간을 할애하는 여유가 더 멀리, 더 넓게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힘일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기 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나와 홀로 방황을 하던 시기, 손내밀 곳 한곳 없이,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사람 한명 없이 그렇게 외로운 시기를 보내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내 존재를 인정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일이 보이고 함께 가치를 공유하며
더 멀리 갈 수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최근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여전히 존재를 인정받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가끔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내게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나 한가로워 보이는 건 아직도 내가 뼛속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일테지만,
그래도 서서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도하는 걸 보면 서서히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중년의 나이에 이제라도 철이 드니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