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18
자존심이 상하고 불안초조한 상황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이또한 지나가리라를 외치며 견뎌냈다.
진하게 술 한잔 먹고 나면 금새 잊었고, 애시당초 하루아침에 성과창출은 무리였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정말 일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고집스러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지만 결국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 채,
힘의 논리에 따라, 이상한 결말로 치달아 뭔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가 그랬다.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꺽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런 문법을 쉽사리 수용하지 않았다. 상처도 있었지만 쟁취한 것도 있었다.
누군가는 카리스마 있어 속시원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한 성깔 한다고 했다.
카리스마 있어 속시원하다는 응원군 덕인지 나는 할말은 하는 사람, 틀린 말은 안하는 사람,
성취해내는 추진력있는 사람이 되었다 (또다른 편에는 성질 더러운, 무서운, 차가운 이런 평가가 따라왔다).
요즘 내가 만나는 젊은 후배들은 싫은 건지 좋은 건지 가급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피했다.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겠다며 최대한 보수적으로 움직였다.
그에 대해 내가 뭔 얘기를 하면 표정으로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 표정 또한 아주 섬세하게 살피거나 직감적으로 읽는 능력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해석이 어려웠다.
꼭 어떻게 생각하냐고 구체적으로 물어야 그제서야 자기 생각을 말하지만
그또한 이래도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들렸다.
비판이나 대안보다는 형평과 선례 같은 걸 중요시했다.
내가 원한 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좀더 엣지있고 신랄한 비판과 대안인데,
아... 너무 심심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도 그들은 나의 마음을 읽었다.
행동이 그랬다. 편하게 말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찌 해야 하나. 다 나와 같을 수는 없어도 좀더 살아있는, 모순을 찾으려고 하고 바꾸려고 하는
그런 후배이길 바랬다.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한 내 자신이 무능해보였다.
한계를 느낀다고 털어놓자, 한 친구가 우리 때는 누군가를 바꾸는 게 유효한 방식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점을 알고 나 스스로도 후배들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나만의 고정관념, 젊음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이 밑바탕에 깔려있을지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문제인식은 있어야 하지만, 불필요한 문제인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도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잔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고 또다른 꼰대일 수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최근, 대선배와 함께 프로젝트성 일을 시작하면서 나의 저항정신이 툭 터져나왔다.
일에 대한 얘기가 아닌 이미 다 끝난 일을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고집스럽게 자기 주장을 하는 선배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다 지난 일에 대해 왜 그랬냐는 비판이 아니라
눈앞의 숙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대안이라며 나의 반박은 거침없었다.
요목조목 지나온 과정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지만 선배는 수용하지 않았다.
다음날, 진이 빠져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전화를 받자 마자 내가 너랑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회의에 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어제의 상황에 대해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듯 첫마디를 열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로잡지 않으면 이 일은 더 이상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황당했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다 선배님 의중을 알죠.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그런 건 상대가 뜨끔 하라고 일부러 그런거에요. 그러니 선배님 어제 제가 드린 말씀은 그렇게 담아두지 마시고...."
선배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완벽히 수용하지는 않은 듯 했다.
이만하면 수용하는 법인데, 정말 더이상은 하기 힘들다고 느꼈다. 전화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오래 전 일하기 싫은 딱 그 순간, 그 느낌이 찾아왔다.
모든걸 덮고 며칠 째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마음 속에서는 지금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왜 도망가려고 하는가,
지금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진행시켜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끊임없이 질문이 터져나왔다.
누구에게나 정말 일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각종 오해로 비난 받을 때 , 적은 월급때문에, 승진이 안되서, 일이 힘들어서, 괴팍한 상사때문에,
나의 역량에는 못미치는 일을 할때, 거꾸로 나의 역량에 비해 과도한 성과를 요구할때,
그리고 각종 민원에 시달리면서 감정적으로 지칠 때...
무수히 많은 일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일하기 싫어지는 순간도 이유는 있었다.
고집스러운 억지주장이 원인이었겠지만 결국 그걸 꺽지 못한 내 능력의 한계를 접하는게
정말 싫었던 것 같다.
더이상 설득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결국 일하기 싫다로 이어졌다.
강한 방식으로 뭔가를 얻어내거나 설득하는 순간, '역시, 너 말이 먹히는 구나. ' '너만이 그 일을 하지 누가 할 수 있겠어.' 라는 말을 주변이 말에 우쭐해졌고, 그게 내가 일하는 동력이 된 거였다.
문제인식이 있어야 진짜 일하는 것이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정말 살아있는 직장인이라는 강박 역시도
그렇게 자라난 건지도 모른다.
일하기 싫어지는 순간, 왜 나는 일하기 싫어졌을까를 제대로 반문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 고집불통의 선배는 오십이 넘은 내게 너는 왜 꼭 이겨야만 하는지를 묻는다.
내 방향이 옳으니 내 방향대로 따라 오시라고 기싸움을 벌였던 건 아닌지.
상대가 내말을 수용할거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더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오늘 다시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주장을 귀기울여 찬찬히 들어볼 참이다.
그 어떤 토도 달지 않고. 어떤 선입견도 없이. 내 마음속 그 어떤 생각도 몽땅 비운채.
어쩌면 나는 진짜 고수도 아니면서,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지극히 일부의 말에 도취되어 온
가짜 고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