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10
"아무런 부족함이 없고 넉넉한 '충족'의 상태와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란 '결핍'의 상태.
어느 쪽이 더 유혹에 약하겠습니까?"
순간, 결핍이 더 유혹에 약하지 않을까 했지만 이내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이 이상한 짓들을 많이 하는 걸 보면 그들도 유혹에 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둘다 좀 약하지 않을까요." 라고 했고, 질문자는 순간 눈빛을 반짝이더니 내게 "왜?"라고 물었다.
딱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이자, 성격 급한 질문자는 종교인 답게 '충족'의 상태도 '결핍'의 상태도 아닌 상태가 가장 유혹에 강한 상태라는 설명을 이어갔다. 즉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 한다는 말씀, 자신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일에 있어서 충족의 상태는 무엇일까?
월 1,000만원 이상의 보수, 기사 딸린 차에 자기 방을 가진 기업의 임원일까.
각종 상은 다 휩쓸며 주어지는 내 이름 앞에 타이틀일까.
그렇게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이 조직에서 나란 사람의 존재를 인정받고 그에 따라 일 잘하고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인품도 훌륭한 관리자라는 평판일까.
한때 나는 나와 같은 주변의 비슷한 연배와 경력을 가진 이들이 어떤 자리, 어떤 위치에서 어떤 보수와 처우를 받고 살아가는지에 꽤 관심이 많았다. 더 나아가 그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기를 썼다. 그렇다고 치고나가지도 않았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러다가는 돌맞는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의외로 소심했다.
조금 일찍 승진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많은 말들에 시달리다 보니, 그후로 자연스럽게 잠재적 인식으로 자리하게 된 것 같다. 그냥 남들처럼만 살면 된다 주의였다.
그런데 그 남들처럼이 참 쉽지 않는 순간이 왔다. 일종의 터닝포인트일 수도 있고, 환경의 변화에 따른 선택일 수도 있고, 이제야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것일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지해야 하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라고 하는게 지금으로썬 맞을 것 같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오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됐다. 높은 산 중턱에 올라 계속 똑같은 풍경만을 바라보고 서 있는 느낌이랄까. 바로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 올라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싶어하는데 볼일 다본 나라는 인간이 양심도 없이 버티고 있는 느낌,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려갈 차비를 전혀 하지 못한 무방비 상태였지만 1년 간의 휴식과 공백 속에서 나는 과감히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가 오른 산이 아주 낮은 동네 야산일지도 모른다. 더 올라야 할 곳이 있는데 미처 내가 찾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100세 시대라는데 벌써 하강을 결정하면 다시는 치고 올라갈 기력이 안될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하나같이 '벌써 내려가다니, 더 올라가야지.'라고 유혹할 때 솔직히 흔들렸다.
기를 쓰고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결핍된 나를 채우려는 발버둥쳤는데, 앞으로 이십년정도는 (칠십까지 일한다고 가정할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좀 방치하며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 삶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 남 눈치보며 그렇게 스스로를 억압하며 살 수는 없지 않는 걸까 싶었다.
기를 쓰고 충족이 되어야 했으니, 보다 더 좋은 결과와 성과를 위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버리는 유혹에 너무 쉽게 빠졌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곧 내 급여와 조직 내 자리였으니 인정받기 위해 아닌 것도 수용하는 무비판의 유혹에 빠졌을지 모른다. 아니라고 하면, 나가라고 할테니, 그 순간만 잘 참고 일단 다른 방식으로 아니라고 한번 해보자. 그래서 종국에는 판단과 결정이 옳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적당히 말렸었다는 명분만 내게 있으면 나는 크게 흔들 수 없을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의 유혹에 빠졌었던 것 같다.
지금 얼만큼 산을 내려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정말 내려오고 있는건지, 아직도 산 정상에 자리만 비켜 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건 지금 나는 내려가겠노라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이고,
그 사실만으로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강경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