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19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오랜만에 만난 이가 묻는다.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별볼일 없네 하는 표정이 읽힌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냐며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고위직만 상대하겠다는 태세도 싫거니와 내가 고위직만 추구하는 권력지향적인 사람처럼 비춰진건지,
순간 씁쓸해진다.
산을 오르다 보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에 절망하다가도, 곧 정상이 보일거라는 희망을 품곤한다.
울퉁불퉁한 바위길을 지나다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나무 사이사이에서 풍겨나오는 내음은 또 얼마나 청량한가.
새소리까지 듣게 된다면 금상첨화다.
가파른 길만 있다면 오를 맛이 나지 않겠지만 때로는 쉬어갈 평탄한 곳이 분명 산턱 어딘가에는 있다.
빠르게 오르려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쉬어갈 수 있는 길은 산속 어딘가에나 있다.
한때 등산모임을 통해 홀로 하는 등산보다 함께 하는 등산의 즐거움을 만끽한 적이 있다.
베테랑 등산인이었던 한 선배가 이런 저런 요령을 설명해줬고 신기하게도 그리 오르니 제법 숨가뿜도 덜 한 듯 했다. 선배의 지휘에 따라 일렬로 나란히 서서 산을 오르면서 물 한모금도 나눠마시던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맨 뒤에 섰던 또다른 베테랑 산악인 동료는 꼼꼼함으로 이탈자가 생기지 않도록 적절히 다독였었다.
그 동료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산을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게 더 중요하다며 지그재그 기법을 선배는 알려줬다. 그냥 일직선으로 내려오면 빠를 것 같지만 힘들기만 할뿐 빠르지는 않고 사고위험도 높다고 했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리듬을 타듯 하산을 하면서 우리는 모두 말없이 걷기만 했지만, 벌써 산아래 막걸리집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파전냄새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인생도 그렇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 내려가 만끽할 즐거움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내 걷는 게 인생이다.
정상을 목표하더라도 컨디션과 상태에 따라 중턱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
등산을 한답시고 주목적이 두부김치와 막걸리 마시는데에 있어 산 중턱조차 오르지 않고 언저리 등산을 하는 사람도 많다지만, 그 역시 어떠하랴.
안전 하산을 위한 지그재그 기법이 있다면 안전한 인생을 위한 인생 하산 방법이 있을 터다.
대리였다가 과장, 부장 승진하고 임원에서 사장까지 된 입지전적인 인물도 결국 영원히 사장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물려줘야 한다. 그 물려줌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말년을 망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며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을 하산 길로 선택할 수도 있고
지하철이 가까운 곳, 두부김치가 맛있는 집, 경치가 아름다운 곳 다양한 하산 길을 택하기도 한다.
또 산을 오르면서 보지 못한 이런저런 소소한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하산 방법은 어떠한가.
계곡에 발도 담궈보고, 잠시 옆길로도 세워보고 말이다.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주 작은 일도 감사하게 일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인생 하산길을 개척중이다. 서서히 내려가며 더 경치 좋은 길을 찾아 떠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