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도장기능사 도전의 이유 1
별 걸 다 하는 중입니다
사랑하는 전남편인지 미래의 남편인지 때문에 건축도장 기능사를 따기로 결정했다.
전공과도 무관한 그 일을 내가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써놓은지 한달도 훨씬 더 넘은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건축도장기능사" 자격증 보유자 이다!!
●내가 없던 시절 그의 과거●
남편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 영상미술 분야에 일해왔다.
알바로 시작한 영상 미술을 생업으로 하는 동안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주 종목은 영화였지만 드라마와 뮤직비디오,
CF 뿐만 아니라 전시회의 부스 팝업 부스 등의 작업에도 참여해왔다.
열정만 가득했지 한 달 버티기도 힘든 박봉을 받으면서도 그는 영상미술일이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표준근로계약이 없었던 그 당시 영상미술 일은
본인에게 재미만 좋았지 현실을 살기엔 그리 녹록치 않았다.
세트장 디자인과 제작에서부터 촬영 현장을 지키고 바라시까지 끝내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터다.
광고 촬영인지 뮤직비디오 촬영인지 하느라 삼일 밤낮을 잠 못자고 일을 했단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깜빡 졸았는지 차가 중앙차선을 넘는게 느껴져 갓길에 세웠다했다.
그리곤 마침 해외 여행을 갔다가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전여자친구에게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단다.
그는 그날 전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당했다.
짬이 안되는 시기엔 제 때 자거나 먹거나 통화조차 할 수 없이 일 하니,
보통의 이해심과 인내심이 없으면 내조를 하기 힘들 것 같은 직무이다.
또 근로계약서 따위는 허울뿐인지라 열심히 일만 해주고 돈을 떼 먹힌 경우도 수두룩 했다.
영상미술 일을 해온 10여년 중 따지고보면 6,7년 정도만 집중하여 영화 제작에 참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필모그래피는 네이버에서 찾아보면 영화만 아홉 편이다.
제작 전 과정, 촬영, 그리고 촬영 후 개봉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일 해왔는지 가늠이 된다.
(사실 결혼 이후 참여한 한국 영화와 한국 로케 일본 영화 각 한 편씩 두 편이 더 있지만,
미술감독까지 달았던 사람이 지원으로 나간 건 부끄럽다고 그는 크레딧에 올리는 것을 거절 했다.)
편 수를 거듭해가며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세트 지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미술팀, 아트디렉터, 미술감독까지 차례대로 직급을 올려 달았다.
일을 하며 팀으로도 움직여봤고, 회사 소속으로도 있어봤고, 계약직으로도 일해봤고, 프리랜서로도 일해봤다.
네이버 검색에서도 그의 이름 옆에는 영화스텝이 아닌 기술직종사자로 나온다.
남편은 정말 영화미술의 ㅇ도 모르고 시작해, 줄도 뒷배도 연도 없이 바닥에서부터 차근 차근 굴러가며 배우고 일해왔다.
그 덕에 그는 영상미술분야에서 만큼은 기술자가 되었다.
영화를 찍고 드라마를 찍느라 전국 팔도를 다 다녔고 외국에도 나다녔다.
장소를 가리지도 일을 가리지도 않고, 그는 제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해왔다.
그 덕에 이것 저것 다 배운 그는 이제 참 다양한 걸 할 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