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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13. 2023

건축도장기능사 도전기 2

별 걸 다 하는 중입니다.


●2023년 8월 12일 3회 시험 응시 :  결과 아직 모름.


학원에서도 주말만 응시 가능한 내 사정을 고려해 힘들게 날짜를 맞춰주었는데,

세 번째가 되니 신규 응시자들에게 밀려 이젠 나를 멀리 보내버렸다.

아침 일찍부터 35킬로가 떨어진 시흥까지 가야 했다.

가겠으면 4회에 다시 응시하라는 실장님께, 경험 삼아 멀어도 가보겠다고 했다.


일 때문에 나를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지 못한 남편이 이른 아침밥을 함께 먹어주며 사과했다.


"하필 오늘 중요한 공정 첫날이라 오빠가 못 데려다줘서 미안해. 그래도 잘하고 와."


"잘은 모르겠고. 일단 실격 안 당하고 제출은 하고 올게. 그리고 어차피 인생 혼자여."


"하하하, 그래. 혼자서 씩씩하게 잘하고 와. 실격만 당하지 말고. 실력은 있으니까 실격만 안 당하면 돼."


실격당하지 않고 시간 안에 제출해서 감점만 당하기.


세 번째 시험을 보러 가는 나의 목표였다.

완벽이 아니라 60점만 넘기겠노라.

실격만 당하지 않고, 제출만 한다면 합격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남편의 응원을 등에 업고 나는 14년 된 익숙한 차로 토요일 아침의 한산한 도로를 달렸다.


"토비야. 안전하게 데려다줘. 우리 잘 갔다 오자!"


태풍 끝의 비가 채 가시지 않아 비가 오는 도로를 달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비 오는 날 나오긴 정말 오랜만이다.

거기다 대리운전이 필요한 때가 아니면 핸들을 주지 않는 남편 덕에 운전도 오랜만이고.


까마귀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괜찮아. 지난번 시험 땐 예삐가 컵도 깨고, 도로에선 빈 박스가 날아와서 엄청 놀랬잖아. 이 정도는 뭐......

괜스레 흉한 징조를 지난번 시험에다 빗대어 위로도 했다.


내게 주어진 힘든 역경과 고난 뒤에는 반드시 합격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겨우 도착한 시흥 시험장. 그런데 문이 안 열린다. 잠겨있다.

아침부터 정신 차리느라 마신 커피 때문인지 나는 화장실이 급해 다리가 배배 꼬이는데!


"저기여, 제가요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시험 본부로 가자 "급해요? 진짜 급하시면 저기 안쪽 화장실 가세요. 좀 있으면 시험이라 곧 문이 열릴 건데."

한심하게 나를 보며 대꾸해주는 어떤 분에게 비굴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는 후다닥 화장실로 갔다.


벌써 부천 시험장이 그립다......................





와.............!!!!!!


내가 갔던 부천의 학원이자 시험장이 정말 좋은 환경이었다.

시흥 시험장에 와보니 화장실이 시험장에 붙어있다는 것 외엔 더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

집진 시설이 되어있는 연마장이 별도로 있던 부천과는 달리 시흥은 야외로 나가 털어내야 했다.

비가 오니 불가능해서 안에다 김장매트 같은 걸 깔아주고 거기에 털으라 했다.


부천에서는 에어컨을 켜주어 페인트 냄새에 좀 덜 취할 수 있었는데.

시흥은 에어컨이 아예 없다. 대신 커다란 선풍기가 있었는데

그 마저도 연마 후 생긴 퍼티나 페인트 가루가 날린다는 이유로 틀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응시자들은 벽걸이 선풍기 몇 대에 의지하여 시험을 보아야 했다.

비가 오고 습하고 꿉꿉함까지 더해진 이 날씨에 말이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다.

그래도 명색이 국가시험인데 말이다.


어찌 저찌 시험이 시작되고 공정마다 시간 체크까지 해가며 열심히 했다.

퍼티면이 걱정스럽다.

비가 와서 잘 마르지 않을 것 같아 얇게했더니 너무 얇은 건 아닌가 싶어 두껍게 했다. 그랬더니 드라이기로 암만 말려도 잘 마르지 않는다.


결국 조색을 먼저 해두기로 했다.

페인트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 남의 걸 보니 내가 적당한 두께로 말끔히 잘 한 편이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최악은 아니란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겨우겨우 퍼티를 다 하고 연마를 했다.

치수 그리기는 워낙에 잘하던 것이지만 자를 여러 개 대어 완벽히 하려 애썼다.

중도(바인더와 서페이서)까지 잘 먹였다.


사실 이번엔 연습을 하나도 안 했다.

이번에 떨어지면 그땐 학원에 한 번 더 가서 연습하고 내 문제점을 찾겠노라 했다.

이미 다 나와있는 공개 문제, 문자와 도형 도안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라 아무 걱정 없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문자 치수가 기억이 안 난다.


전체 규격 사이즈에 맞게 일단 했다.

계산기를 사용해서 치수를 나누고 그러데이션 선 긋고 자로 수직도 보고 수평도 보았다.


하아..........

쉽지 않다 정말.

남들은 쉽게 다 따는 것 같은데 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렵게 느껴진다.


제발, 제출만 하자.


역시 완벽은 없었다. 쉽게 가는 법이 없다.

제대로 문제가 터졌다!

1차 상도를 하는데 각재를 칠하는 유성 페인트가 종이컵에서 흘러 여기저기 떨어졌다.

특히 그러데이션 쪽으로 흥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떨어졌다.

보통 이 정도 사이즈로 흘리면 실격 인데! 싶어 바로 감독관을 불렀다.


"지금 1차 상도시죠? 그러데이션 도장을 아직 안 했으니, 이 부분은 연마를 하지 말고 최대한 가려보세요. 그라데이션 도장 후에 어떤지 보고 결정할게요."


일단 해보란다.

감독관이 허락해 준 이 기회가 나를 구명해 주는 동아줄 같았다.


"제발, 제발! 제출만! 오늘은 제시간에 제출만 하자."


시험 시간 내내 주위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가는 소리가 수시로 들렸다.

건축도장기능사 자격증 시험 치러 간 3번 내내 마지막까지 제출을 한 인원이 30~40%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중도에 실격을 당해서 그냥 가거나 그냥 연습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떠나갈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맥이 빨라진다.

짐 챙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남일 같지 않았다.

번번이 나는 내 정신줄을 붙잡고 되뇌었다.

제출만 하자. 제출만.



제출 생각에만 치우졌는지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벌써 세 번째 이 난리를 치고 있으면서도 멈칫하게 되는 나를 자조하게 된다.


'이 얼빠진 년.....'


시험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지, 삼수 째라는 부끄러움 탓인지.

작업을 하나 할 때마다 당황과 놀람, 자책으로 머릿속이 깜깜해지다가 하얗게 되길 반복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암전 된 듯하다. 잘못 잡고 칠한 붓질이 멈췄다.


그때 남편이 아침에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나도 시험칠 때 그랬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럴 땐 옆엣 사람 뭐 하나 휘 한번 둘러보고 시간도 체크해. 그러다 보면 또 정신 돌아와. 급할수록 여유 있게 해. 아무도 안 쫓아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했다, 평생을 붓 잡고 산 남편도 시험 때엔 그랬다 했다.

그렇다면 나 말고 여기 있는 다른 응시자들도 그럴 거다 싶어 고개를 들어 휘 한 번 둘러봤다.

너도 나도 자기 일로 바쁘지만 짐을 싸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멈칫 한 사람도 있다.

남편의 말도 같은 처지인 그들도 모두 위로가 된다.

잘못 잡은 붓을 다시 내려놓고 시계를 보고, 손도 한 번 씻고 왔다.


종료 시간 30분을 남겨두고 제출을 했다.

일단 내 염원대로 시간 안에 제출은 했다.

그리고 도형과 문자 도안 치수 체크도 끝내서, 제출을 하고도 규격 미스로 떨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합격 여부는 모른다.

붙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감독관으로부터 지적당한 매끄럽지 못한 붓칠 자국이나 잘못 잡았던 붓으로 인해 그러데이션 색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 등.

감점 요인이 여전하고, 선 긋기나 그러데이션 규격은 내 앞에서 확인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직 합격했다고 말을 못 하겠다.


60점만 넘으면 되는데 59점으로 탈락할 수도 있는 게 자격증 시험이지 않은가!

다시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도 어제 시험장에서처럼 가슴이 떨린다.


최선을 다했다.

최고라고는 못하겠지만.

일단 나는 세 번 째만에 제 시간 안에 제출을 했다.

네 번째 시험을 또다시 응시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합격하고 싶다.

기왕이면 이번에 붙는다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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