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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13. 2023

건축도장기능사 도전기 1

별 걸 다 하는 중입니다.


삶이 무료하다면 건축도장기능사에 도전해 보세요.


이 말이 무슨 뜻이냐.


고기도 잡힐 것 같은데 안 잡히면 애가 더 탄다.


꼬시고 있는 상대가 넘어올 것 같으면서  넘어오면 약이 더 오른다.


내게 건축도장기능사가  그렇다.


이만하면 될 것 같은데 안된다. 그래서 미치겠다.


없던 오기가 발동한다.

몇 번을 응시하더라도 기필코 따고 말  거야!

그리고 나의 오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즉, 나는 아직도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다.)



2023년 1회 시험 미완으로 실격

; 도형에서 딱 한 줄만 그었음 되었는데 그걸 못했다!

6시간 동안 공 들이고 정성 들여 작업을 다 했는데, 완성을 못해서 실격했다.


"빨리 해서 낼 생각을 해야지, 정성을 들이고 앉아있어!"


내 작업물을 뺏어가던 흰머리독수리아저씨(감독관)가 그랬다.



60점만 되면 합격인데 나는 최선의 완벽을 추구했었다. 


그렇게 딱 한 줄 못 그린 억울함에 시험장을 나오면서 울었다.

나이 마흔 살이 넘어서 아이처럼 주차된 차까지 가는 내내 부들 부들 했고, 차에 타자마자 진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분하고 화가 났고 열이 받았다.

남 탓 할 거 없이 완벽히 내 잘못이라 더 약이 올랐다.

하필 같이 응시한 남편은 미대오빠답게 여유롭게 합격했다.

-나 때문에 딱 한 번 학원에서 연습을 했을 때에도 이 사람은 상위 5%라며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었다.


연습 이후부터 시험 전날까지 남편보다 몇 배로 연습을 더 했던 나는 똑 떨어졌다.

딱 한 줄을 못 그어서.


처음엔 낄낄거리고 비웃던 남편이 내가 울음을 그치지 못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평생 붙잡고 산 나도 겨우 붙었는데, 그만하면 너도 잘한 거야. 다음번엔 합격할 거야!"


위로를 한답시고 자신이 낮아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는 한참을 그걸 떨어지냐며 비웃고 난 후였다.

그의 위로 따위로 내 마음은 정말 1도 풀리지 않았다.


밥도 굶고 6시간을 집중해서 시험을 치고 진이 빠져온 터라 저녁식사를 하자마자 남편이 퍼졌다.

초 저녁부터 침대에 가 뻗어 자는 남편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정말 얄미운 그에게 복수를 한 건데 아직도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2023년 2회 시험 그러데이션 규격 미스로 실격

 ; 상상도 못 한 구간에서 떨어져서 어이가 없어 울음은커녕 웃음도 안 나왔다.


실격을 선언하고 "연습 더 하다 가실 거예요?"라고 묻는 감독관에게 그랬다.


"아니요! 안 합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했다.


종료 시간 한 시간을 남겨두고 실격당해서 응시장을 나왔다.

차에 오르자마자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오! 이번엔 빨리 했나 보네! 시간이 남았어?


이 원수 같은 인간은 당연히 내가 붙을 줄 알았는지, 여보세요도 안 하고 전화통에 대고 너스레를 떤다.


"떨어졌는데."


-에이...................


"........................."


-붙었는데 괜히 장난치는 거지? 붙었지? 떨어졌다는 장난치지 마~!


야이 인간아, 나도 장난이고 싶다. 정말.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에 걸렸다.


"진짜 떨어졌다고. 이번엔 그러데이션 규격미스. 5 mm 넘게 선긋기에서 오차 났어"


-진짜? 아니, 왜? 잘하던 걸 갑자기 왜?


"진짜라니까 내가 언제 이런 거로 거짓말 해?! 내가 실수했어."


-헐! 일단 집에 조심히 빨리 와.


집에 와서 샤워를 마친 나를 앉혀두고 남편은

"혹시 계산기 안 썼냐? 왜 안 썼냐?

아무리 네가 암산을 잘하고 수가 간단해도 계산기 썼어야지.

너 그거 안 써서 틀린 거다. 그리고 치수 다시 확인 안 했지? 확인도 했어야지!

근데 너 진짜 그때 뭐가 씌었나? 왜 멀쩡하게 잘하던 걸 틀렸지?"


하고 엄청나게 캐묻고 잔소리하면서도 나보다 더 어이없어했다.


"실수도 실력이지." 하는 나를 보며 그는 비웃었다.

"실수든 실력이든 어쨌든 또 떨어졌네, 이걸."


위로해 주고 제 일처럼 흥분해 줄 때부터 기미가 보이긴 했는데, 이 인간 참 얄밉다.

얄미운 그는 버젓이 건축도장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했다는 사실에 더 약이 오른다.



"야, 너 근데 연습한 거 보니 떨어질만하다. 여기도 틀렸네."

하고 내가 연습한 걸 가져와 틀린 부분을 짚어주었다.


그렇다. 내가 연습한 것에서부터 이미 규격이 틀려 있었다.

규격 미스로 떨어질만했다.


내 실력이 모자라 떨어진 게 맞았다.


"아이씨.................... 이제 그만 말해. 나 이제 연습이고 뭣이고 안 해."


"세 번에 안되면 네 번에 하고 네 번에 안되면 다섯 번에 하면 되지. 오늘은 그냥 푹 자. 어쨌든 수고했어."


"응시료도 아깝고! 자존심도 상하고! 으히힝"

결국 나는 또 울었다.

시험 전 3일 동안 뭐 한다고 물감이고 캔버스고 꺼내서 칠해댔으며, 큰 종이만 보이면 문자와 도형 도안 그리기 연습을 했었다.


연습부족으로 떨어진 거라면 이렇게까지 서럽지 않았을 테다.

그러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내 볼을 만지는 게 느껴진다.


"오빠 때문에 네가 안 해도 되는 고생하고. 미안하다."


잠이 들었다 생각한 건지 안 들었다 생각한 건지 이 사람은 내게 사과를 하고 있다.

평생 페인트 한 번 접해보지 않고 산 내가 하고 있는 도전을 기특해하면서도

자꾸만 떨어지니 대신해줄 수 없는 마음에 얼마나 답답할까.


남편의 고백을 들으며 비몽사몽 하는 중에 나는 다짐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쳐서 내 기필코 내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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