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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08. 2023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사 2급 시작

내 꿈을 찾아서 :  과연 내가 노인복지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멀쩡하게 일반인으로 살던 아빠가 일순간에 장애인이 되셨다. 

심장 수술을 했고, 다리를 절게 되었고 일을 비롯한 아빠의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


아빠는 사양산업 중 하나인 신발 공장을 운영하시던 영세 소상공인이셨다.

코로나로 힘든 고비를 보내고 이제 기지개나 펼까 하던 차에 일이 터졌다.

빚을 내서라도 쓰고 싶은 데 돈 쓰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아빠는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그러나 수술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호자가 된 아들의 뜻에 따라 이미 이루어졌다.

아무리 산정특례를 받아도 아빠의 수술비와 입원비는 몇 백만원이 나왔다.

거기다 말초신경이 손상된 다리로 인해 재활을 하느라 비싼 재활병원에 재활기구와 재활용품을 사야했다.

욕창이 좀처럼 낫지 않아 수술 후 회복기에 몸에 좋다는 약과 영양제도 때려붓다시피 했다.

순식간에 여러모로 돈이 참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한창 아이들을 키우며 제 삶을 사느라 바쁜 아들 딸에게 신세를 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빠는 공장을 정리하고 차도 팔았으며, 사업자 대출은 만기 연장을 신청했다.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서 국가의 도움으로 받을 수 있는 수술비 대출이나 의료급여 지원 등이 있다는데 아빠도 나도 전혀 몰랐다. 수술 수 3개월 혹은 6개월 이내에 신청을 해야한다는데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이미 그 기간이 경과한 후였다.

몰라서 받지 못한 국가의 혜택을 놓친 것을 뒤늦게 알게되자 참으로 아까웠다.

(아빠의 심장 수술은 보험에서 진단금도 나오지 않았다. 실비로 수술비만 겨우 받아서 여유가 없었다.

거기다 생업을 놓게 되니 이제는 벌지 못하는 돈, 생활비는 막막한 현실이었다.)


아빠가 수술과 입원과 퇴원을 할 그 당시 그 누구도 이런 지원정책에 대한 안내를 해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억울해 죽겠는 이 상황에 원망을 할 대상도 없으니 치민 부화를 풀데가 없다.

무지는 나의 탓이고, 아빠의 탓인걸 알지만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그래서 화가 났고 이제부터라도 정책이든 지원이든 혜택이든 알고 찾아먹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또, 비단 이 문제가 아빠에 국한 된 것만은 아니다 싶었다.

우리 아빠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원에서부터 누군가가 도와주고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원코디네이터라는 민간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의료수가나 정부 정책이나 지원과는 상관없는 직무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스스로 던진 질문데 몰라서 답을 할 수가 없다. 답답하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지나가던 찰라 누가 그랬다. 

요즘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자식을 대신해 진료를 함께 보는 코디네이터도 떠오르는 직업이라고.

그런데 그 직업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했다.


나는 엄마 아빠를 병원에 한 번 모시고 가기 힘들 정도로 멀리 산다.

그렇다고 가까이 사는 남동생에게 매 번 두 분을 의탁하기엔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그럴 때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내 부모를 보살펴 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누가 생각했는지 몰라도 참 잘 한 생각이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이다!





사실 우리 엄마 아빠는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았어도 벌어놓은 돈이 없다.

가진 재산이라곤 내가 사는 이 집 한 채가 전부 인데 그 마저도 빚이 대부분이다. 

팔아서 은행 빚을 갚고나면 쓸 돈도 얼마 없으니 노후가 퍽 불안정하다.

거기에 더해 아빠는 없던 장애까지 생겼다. 


이렇게 내 부모가 위기에 몰리자 내 시야가 조금 달라졌다.

그동안은 그저 나만 걱정 끼치지 않고 잘 살면 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엄마 아빠는 나이가 든 노인이 되었다. 

엄마 아빠를 위해 맏딸인 내가 이제는 무언가를 해야할 때란 자각이 들었다.


빠르든 늦든 언젠가 내가 내 부모의 노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할 때가 온다면, 

돈으로 쳐바르기 보다는 부모님을 내 곁에 두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

엄마 아빠를 가까이에 두고 내 아이들까지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게 되었다.


시간을 두고 이리 저리 생각을 하고 이것 저것 눈 여겨보다 보니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계속해서 걸렸다.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 사회에서 각기 다른 상황 하에 놓여 니즈가 다른 노인의 몸과 마음을 케어하는 사회복지사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직업처럼 보였다.




나는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삼남매를 키우려면 돈이 되야 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도는 곳에 가야 한다.

봉사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나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본다.


자, 그렇다면 요양 보호가 목적이 아닌 여가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기관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노인 유치원처럼 돈을 내고 노인이 다닐 수 있는 기관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은퇴를 하고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삶이 무료하신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잘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대로 되기만 한다면 그 곳에 내 부모님도 함께 계실 수 있다.


나도 엄마 아빠 가까이에서 보호자로서 보살펴드릴 수도 있지만, 

연세가 든 엄마 아빠도 충분히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기도 잘 만지고 솜씨 좋은 아빠에게 잔손을 부탁하기도 하고,

음식도 잘 하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엄마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늘 더 못줘서 안달인 엄마 아빠는 내게 기대는 걸 죄스럽게 생각하실터이니, 

두 분도 나의 일을 돕는다는 핑계로 쓸모와 가치 있는 일을 하신다면 더 행복하실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내 마음이 급해졌다.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올케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단다.

그러면서  지금의 원장 경력으로 노인 기관의 원장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자, 그렇다면 나보다 더 실무를 잘 할 이가 있으니, 나는 건물주이자 이사장이 되면 되겠다!


"돈도 시간도 다 있는데 할 거 없는 신체 건강한 어르신들이 다녀가실 수 있는 노인유치원을 차려야겠다! 

올케가 실무를 맡아라, 나는 그러면 건물 사고 리모델링 하고 집기 넣고 사람 쓰는 이사장이 될게!"


호기롭게 선언한 나는 10년 뒤, 15년뒤. 어쩌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한 한 발을 내딛으며,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사 2급을 시작했다.


3학기에 있는 실습을 어찌 할지는 당장 눈 앞엣 일이 아니니 중요치 않았다.

편하게 할 거라고 지역아동센터에 많이들 간다던데 

나는 오전만 시간이 되니 그 때 실습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실습하는 동안에 남들보다 조금 몸이 더힘들면 어때, 어차피 140시간만 힘들면 되는데!

끝이 나는 고생은 겁을 먹을 필요도 피할 이유도 돌아갈 명분도 없다.

나는 닥치면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초긍정의 원더우먼이자 수퍼우먼이다.

학점 은행제를 잘 완료하고 나면 자격증 2급 외에도 학사 학위도 하나가 더 생긴다하니 절로 신바람이 났다.



공부를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사 2급 과정을 하고 있고, 하려한다는 걸 알았다.

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로 활동하는 내 친구 역시도 할까 말까 고민만 하고 있다했다.

그러면서 이미 시작한 내게 "역시 난년은 틀리다"고 칭찬해주었다.

남들은 생각만 할 때 나는 실행을 한다나 어쨌다나.


"쳐먹어보고 똥이면 뱉고 된장이면 삼키는 거지. 고민은 무슨. 그냥 해라. 시간 아깝다."

하고 응수를 하자 수화기 너머 내 친구는 맞는 말이다고 하면서도 배가 땡길 정도로 웃어댔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주 7일을 매일 세 시간씩 앉아 7과목의 강의를 듣고 요약을 하며 힘들게 공부를 하다보니, 

10년 뒤 15년 뒤 이사장님이고 뭣이고 도저히 힘들어서 못해 먹을 지경이 되었다.


어깨에는 곰 두 마리가 나란히 타 널뛰기를 뛰는 듯 하고, 입 안엔 피곤으로 수포가 올라왔다.

수면부족으로 퍼석해진 피부와 팬더가 친구하자고 할 다크서클은 덤처럼 주어졌다.


"선생님........ 이거 꼭 이렇게 해야되나요?"


낙오하기는 싫어서 고민 끝에 상담 선생님께 하소연을 했더니 마법이 일어났다.


"그렇게 하시면 힘들어서 못하십니다. 

강의 요약은 안하고 그냥 넘기셔도 되는 페이지 입니다. 어차피 시험도 다 오픈북인데요.

설마 교안 다 프린트까지 하신 건 아니시죠."


"프린트까지는 안했어요. 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네, 그건 잘 하셨어요."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강의에 클릭만 해두고 제 볼일 다 본단다.

그렇게 해도 시간에 맞춰 수강 잘 하고(출석), 과제 잘 내고, 시험만 잘 보면(기기 두 대로 하는 오픈북) 거뜬히 자격증을 딸 수 있다했다.


무엇을 위하여 종을... 아니... 나는 이 고생을 해왔는가.


"학습 시작하기 전에 제가 미리 다 말씀 드렸는데, 자료 안보셨나봐요."


과거의 나는 무슨 깡으로 선생님이 주신 안내문을 다 읽지도 않았을까?

그래놓고  무슨 정신으로 한 달을 넘게 그리 힘들게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늙고 피곤한 몸과 머리로 강의 요약을 해봤자 어차피 돌아서면 잊어 버릴 걸.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도 요령껏 해볼게요."


그렇게 나는 요령껏 7주간의 학습을 마치고 8주차에 중간고사를 쳤다.

정말 캠퍼스 생활 시절로 돌아간 듯 기분이 묘했다.

나이 마흔이 넘고 치는 시험도 여전히 떨리고 가슴이 두근두근 쿵덕쿵덕 했다. 


중간고사 점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오픈북도 검색해서 찾느라 눈알이 빠질 뻔 한 걸 보니 나의 총기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대학교 시절 과 수석을 할 때처럼 똘똘한 맛이 이젠 없다.

하지만 중간고사라는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성취감이 퐁퐁 샘솟는다.

될지 안될지 모를 목표에 한 발 만큼은 가까워진 듯 하다.


자격증 취득을 하게 될 2024년 9월까지 지치지 말고 지금 이 마음 그대로 달려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사장님이 되든 말든, 일단은 준비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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