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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16. 2023

집안일시키는 나쁜 엄마

낳은 김에 키웁니다 23

다이어터이자 유지어터인 나는 점심을 먹지 않는다.

대신 아침 식사는 꼭 챙겨 먹고 든든하게 먹는다. (든든하다이지 과하게는 아니다. )


긴 시간 공복 후 아침 식사로 급하게 혈당을 상승시키는 것이  몸에는 좋지 않다지만, 나는 삼시세끼 중 아침을 먹는 것이 가장 즐겁다.     

과자나 아이스크림 초콜릿 라면 등, 맛도 좋고 칼로리도 높은 먹고 싶던 음식을 아침에 다 먹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어진 오전 일과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칼로리 폭탄이 투하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다.

그만큼 많이 많이 많이 집안일은 하며 움직인다.


그러나 근래 나의 아침식사가 점점 간소화되고 있다.

요즘 같이 아이들이 방학일 때엔 혼자일 때만큼 움직일 수가 없다.

수시로 아이들이 나를 부르기 때문에 아이들 옆에 주저앉거나 아이들과 뒹굴어야 한다.

그래서 집안일은 최소화되었다.





우리 집에는 아침식사를 무조건 같이 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남편이 새벽까지 술을 먹고 들어와 술이 덜 깨 일어나기 힘든 날에도,

딸들이 늦잠으로 학교에 지각할 위기에 있더라도.

반드시 가족들과 함께 아침식사가 차려진 식탁에 한 번은 앉아야만 한다.

물 한잔을 마시더라도 말이다.


서로 바쁜 일상에서 유일하게 아침 식사만 같이 할 수 있으니,

무조건 아침식사만큼은 온 식구가 다 같이 둘러앉아 먹어야 한다는 나의 고집이 만든 규칙이다.

단, 남편이 일 때문에 이른 새벽 출근을 할 경우엔 예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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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을 한 이후 딸들의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밤에 피는 꽃처럼 자라고 하면 꼭 밤늦게까지 무언갈 하는 덕이다.

못마땅하지만 방학이니 늦잠이라도 자지 싶어 인내심을 끌어모아 몇 번 봐주었더니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딸들이 아침 식사에 빠지는 건 그냥 두기로 했다.


방학을 한 이후 유일하게 하나 다니던 체육관도 끊었더니 딸들의 저녁시간이 여유롭다.

그래서 나나 남편이 퇴근을 하고 난 저녁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

혹시나 식사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같이 밥을 먹지 않더라도 저녁 시간 동안 가족끼리 부대낄 수 있다.

함께 보드게임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각자 다른 일을 해도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다 같이 있을 수 있다.

식구들이 한 곳에서 가지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아침 한 끼 정도는 서로 스트레스 없게 지나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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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기상과는 별개로 나와 남편 그리고 어린이집을 가는 막내의 아침 식사는 정시에 이루어진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했던 친정엄마 덕에 나의 배꼽 알람은 매우 정확하다.

눈을 뜨면 화장실을 가고 반드시 아침을 먹어야 한다.

딸들의 식사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무조건 아침 식사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침 식사준비를 두 번하지 않다.

세 식구의 식사가 끝나면 식탁을 싹 치운다.     


느지막이 일어난 딸들은 잠을 깨느라 시간을 또 하릴없이 보낸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내가 준비해 둔 반찬과 국에 밥을 떠먹거나, 입맛이 없으면 시리얼이나 라면을 먹는다.

설거지까지는 하라고 하지 않으나 개수대에 식기를 가져다 두고 식탁 정리까지 마치지 않으면 바로 내 잔소리가 터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물티슈로 엉성하게나마 식탁을 닦아놓아야 한다.     






나는 자라는 동안 간단한 책상정리 외엔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5남매 중 가운데 낀 고명딸로 자란 엄마는 정말 어릴 때부터 온갖 집안일을 다하며 자랐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자신이 더 움직이고 당신이 더 바지런을 떨며 딸인 내게는 일절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일복 많은 자신의 팔자를 절대 닮지 말라고.


일복 많은 엄마 덕에 편하게 큰 나는 딸들 덕도 본다.

집안일을 시킬 수 있는 딸이 둘인 나는 신발정리, 수건 개기, 분리수거, 식사 준비와 식탁 정리까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집안일은 이것저것 다 시킨다.


내가 집안일을 안 해버릇하고 컸더니 그게 얼마나 고생스러운 건지 전혀 몰랐었다.

그러다 뒤늦게 나보다 더 할 줄 모르는 남편을 만나 제대로 된 고생길에 들어섰다.

문제는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용을 쓰며 사멸서도 그게 고생인 줄 몰랐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어진 고생을 수용하며 살다 보니 나와 달리 사는 옆엣 사람 앞엣 사람이 보였다.

나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그들은 집안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간제로 맡기거나, 로봇청소기나 식기세척기 건조기 등의 아이템을 사용함으로써 집안일을 덜어내었다.

그때의 나는 돈이 없어서 사람을 쓸 수 없었고, 네 식구가 사는 집이 11평으로 작아서 살림을 도와주는 기계를 들일 공간도 없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 딸들은 무지해서 용감했던 나와는 다르게 키워야겠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어린 딸들에게 신발정리부터 시작해 조금씩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자취를 하더라도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청소와 쓰레기 버리기를 전담시켰다.

다행히 남편은 솔선수범까지는 못해도 시키는 것은 군말 없이 잘해준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 집안일을 하니 아이들도 처음에는 집안일을 돕는 것을 뿌듯해하고 칭찬받길 즐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제 일이 되고 당연한 일이 되다 보니 예전만큼 반기지 않았다.



내가 큰딸이나 작은 딸에게 무언가를 시키면 "왜 나만 시켜!" 하는 소리가 반드시 나온다.

그러면 나는 옳다구나며 다른 딸에게 다른 일을 또 시킨다.


이제 딸들은 생각보다 많은 집안일이 가족구성원으로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의 부름에 투덜거리면서도 잘 달려온다.


엄마 딸일 땐 엄마 덕에 편했는데, 엄마가 되어선 딸들 덕에 집안일 중 한 짐 덜고 가는 게 있어서 좋다.

또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넓은 집에 살아서 식기 세척기와 건조기가 생겨서 내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빨래 건조대를 다섯 개나 두고 쓸 정도로 일이 많았는데, 건조기가 정말 내겐 큰 몫을 해주고 있다.

세상이 좋아진 것인지, 나의 살림 환경이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많이 수월해졌다!

딸인 나는 일 복이 좀 없었으면 했던 우리 엄마의 바람이 이만하면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다.


(사실 처음 딸들에게 집안일을 시켰을 적엔 어설프게 개어진 빨래도 다시 내가 개어야 했고, 깨진 그릇도 여러 번 치우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많이 내려놓은 덕에 지금의 나는 아이들이 해주는 서투른 집안일에도 관대하고 여유로울 수 있다.)






날 더러 아동노동력이나 착취하는 악덕엄마라고 해도 상관없다.

딸들이 자라는 동안 집안일을 해 보고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집안일이 어떤 의미인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자신을 대신해 누군가가 해주고 있는 일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일이 집안일처럼 그렇지 않은가.

내가 안 한다고 해서 남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도로를 위해 새벽까지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 계시니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학교에서도 청소를 해주시고 식사 준비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집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신경을 쓰는 엄마와 아빠의 노고를 알아주고 존중해 주면 좋겠다.


아이들보다 훨씬 더 머리 굵은 내 남편조차도 말로만 했더니 도무지 알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남편이고 딸들이고 다 시키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몸소 경험하고 익히고 배워서 느껴보라고.


내 딸들은 세상을 볼 때 단편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딸들은 나보다 지혜롭고 현명해서 조금 덜 고생스러운 쪽으로 결정하면 좋겠다.


집안일을 시키는 나쁜 엄마의 속마음은 그렇다.


내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커갈수록 아이들은 집안일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할 줄 알게 된 것이 많아진 것은 남에게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자랑할 때나 좋지, 직접 집안일하는 건 별로라 한다.

하지만 내가 시키는 집안일은 후환이 무섭고 두려워서라도 아직은 잘 따라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덕에 이젠 제 나이치 고는 제법 손끝이 야무지다 싶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아주 조금 들지만 그보다 더 많이 기특하고 고맙다.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그저 미안하고 짠했다는데, 나는 내 딸들을 보면 든든하다.

이 녀석들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무엇이든 제게 주어진 일은 책임감 있게 거뜬히 잘해나갈 것 같고, 손해 볼 짓은 안 할 것 같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라도 밥 굶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내 마음속에서 우리 딸들은 사막에 가서도 전기장판을 팔 수 있을 정도의 넉살과 생활력을 이미 갖춘 사람들이다.


그래서 감히 고슴도치 엄마로서 내가 평가를 해보자면. 

힘든 나란 사람을 엄마로 둔 덕에 내 딸들은 누구보다 든든하고 믿음직하게 자라고 있는 중다.





"바리스타님! 모닝커피 없어요? 밀크식당 아줌마, 식후 커피도 안 줘요?"


모처럼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커피를 부탁하는 내 말에 서로서로 잔을 들고 뛰어간다.

남편의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이고 나의 커피는 정수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미지근한 커피이다.

우리 부부 각자의 취향에 맞게 딸들이 커피를 내려준다.




그렇게 싫어하는 집안일이지만 이렇게 가끔은 엄마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다.

엄마가 집안일을 하느라 힘든 것도 알겠다 하고 엄마 일을 도와 기쁘다고도 한다.

물론 대개의 경우 내가 집안일을 시키는 것을 귀찮아하고 거추장스러워하고 짜증스러워 하지만 열에 한두 번쯤은 기특한 소리를 한다.


딸들이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빙긋이 웃었다.


"고마워! 딸들이 타준 커피라 그런지 더 향기롭고 맛있다!"


남편도 덩달아 기꺼이 커피를 내어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잘 먹겠다는 말을 한다.

지금 이 순간 기분이 나쁜 건 커피를 만들지 못한 여섯 살 막내뿐이다.


"막내는 좀 더 커! 그때 신나게 시켜줄게!

너는 이제 누나들이 라면도 끓여 오라할 거고, 심부름도 엄청 시킬 거니까 벌써 서운해하지 마."


내 말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내는 누나들을 향해 뛰어갔다.




육아에 정답은 없고, 가정마다 부모의 육아 방식마다 다르겠지만.

내 딸들이 하필이면 지랄 맞은 나를 엄마로 만나 안 해도 될 고생하는 건 맞다.


알고 있다, 내가 나쁜 엄마라는 걸.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는 내 마음만은 다른 부모와 다를 바 없음을.

언젠가는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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