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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15. 2023

잔치국수 : 아롱다롱 서로 다른 고명

낳은 김에키웁니다 22

리집 사람들은 한 끼에 먹었던 반찬을 두 번은 안먹는다.

김치나 장아찌 같은 류도 반드시 매 번 덜어줘야하는 건 당연하고, 한 끼라도 걸러야 그나마 손을 댄다.

아니면 생으로 먹거나 구워 먹거나 볶아 먹던지, 조리법을 달리해야한다.

또 냉장고에 들어간 반찬은 거의 다시 먹지 않는다.


사회에 나온 이후 바깥음식을 내내 먹고 산 남편의 식성을 딸들이 그대로 닮았다.

맛이 있던 없던 같은 음식은 두번 입에 대지 않는다.


처음엔 종갓집 맏딸로 한 솥 가득, 한 대야 가득 이던 국과 나물 등을 보고 거기에 익숙하게 자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국 같은 걸 끓여도 두 끼는 같은 것을 안먹으니, 매 번 본의 아니게 내가 음식물 처리기가 되었다.

그 덕에 20킬로그램이 찐 것인데, 남편과 딸들은 먹고 싶은 메뉴를 매 끼 말하면서도 내가 살이 찐 것은 내가 많이 먹어서라 한다.


그래, 어차피 음쓰가 되나 똥이 되나 버리는 것 매한가지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나는 남은 음식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만일 내가 죽어 지옥에 가서 생전에 버린 걸 먹어야 된다면, 아주 골고루 육해공 음식을 다 먹지 싶다.





아롱이 다롱이 한 밭에 한 씨를 뿌린 것인데도 아이들 입맛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딸들이 어쩐 일로 저녁식사 메뉴를 통일해서 미리 요청했다.

메뉴가 통일되면 나는 정말 신바람이 날 만큼 즐겁다.

편식 심한 첫째와 반찬만 먹는 둘째 사이에서 고민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라면을 끓이더라도 제 각각 요청한다.

짜장라면, 비빔라면, 국물있는 라면, 매운 라면 안매운 라면.

그러니 오늘 같이 한 목소리를 내주는 날은 엄마인 내게는 로또 맞은 날이다.

적어도 메뉴 걱정은 덜었으니 말이다.





일을 마치고 어린이집에 막내를 데리고 와 급히 저녁 준비를 한다.

딸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요청한 오늘의 저녁 식사 메뉴는 잔치국수이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푸짐하게 먹는 밀가루 음식이기도 하니 준비하는 내 손이 더 빨라진다.

멸치는 기본이요 새우와 다시마 황태까지 넣어 육수를 내었다.

친정엄마는 압력솥에다 양파껍질이나 대파 뿌리까지 넣어서 하시지만 나는 약식이다.

멸치액젓과 참치액젓으로 간을 하기 때문에 멸치 새우 다시마 황태는 그냥 데코레이션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외할머니 육수만큼이나 내 육수도 좋아해준다.



야채 값이 워낙 올라 장을 보러 가지 않았더니 집에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초록색이 빠진 것이 아쉽지만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고명을 만들었다.

먼저 양파와 당근 부추 조금을 넣어 볶았다.

그리고 계단지단을 부치고 오뎅볶음을 했다.

김치와 단무지도 채썰어주었다.








너무 얇은 면은 싫다해서 중면을 삶아서 내어주었더니 냉면기 가득 한 그릇을 들고 앉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나란히 앉은 둘은 국수 양으로 경쟁이라도 붙듯 내가 더 많이 나도 많이를 외친다.


"다 먹을 때까지 식탁에서 못일어나!!!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덜어!!!"

하고 으름장을 놓아보지만 밀가루쟁이 딸들에게 이 정도는 가소롭다.


오늘도 아이들이 나만큼 먹게 된 걸 보며 새삼 많이 자랐음을 느낀다.



엄마만큼 먹으면 엄마처럼 골고루 잘 먹어줘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고명 얹을 걸 보며 아직 애는 애구나 싶다.

그저 입에 즐거운 음식들만 갖다 얹어놓았다.


우리집 아롱이 다롱이 딸들이 올린 고명만 봐도 누구의 그릇인지 바로 티가 난다.


큰 아이는 야채를 일절 먹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계란과 오뎅만 한가득 올렸다.


둘째 예삐는 야채만 좋아한다. 그것도 김치와 단무지 등 절인 음식을.

역시나 오늘도 김치와 단무지만 가득 올렸다.


그래도 자매랍시고 강원도식 양념 간장의 건더기 없이 간장만 뿌린 것만큼은 꼭 같다.


 

계란지단과 오뎅볶음만 넣어서 먹는 큰 딸, 김치와 단무지만 넣어서 먹는 둘째 예삐.





생긴 것부터 시작해서 식성도 취향도 모두 달라도 너무 다른 딸들.

내 그릇을 보여주며 잔치국수는 이렇게 먹는 거라고 하지만 끄떡도 없다.


"엄마 많이 드세요."


엄마 드세요를 이런식으로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단 말이다.

하지만 일단 저런 비꼼이라도 애들 입에서 나 챙기는 말이 나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소란스럽지만 맛있는 저녁식사이다.

내가 원한 비주얼은 이 상태다



"엄마 국수가 최고야!"


"부산 할머니 국수만큼 맛있어!"


딸들은 한 입을 채 다 먹기도 전에 찬사를 늘어놓는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고명만 얹었으니 당연한 게 아닌가?!


그래도 일 끝내고 급한 마음으로 후다닥 만들었던 수고만큼 칭찬이 기쁘다.


"맛있게 먹어."


덩달아 잘 먹고 있던 막내까지 합세해서 대답을 한다.


"엄마 고맙습니다!"


"엄마도 고마워. 메뉴 통일해줘서!"


메뉴 통일이란 말에 아이들이 서로를 보며 웃는다.


"엄마 우리 잘했지?!"


"어! 자주 자주 좀 통일해줘!"


"오케이!!!!!"


우렁찬 아이들의 대답은 비록 다음 날 아침도 채 지켜지지 못했다.

그러나 별게 행복인가?

아롱이 다롱이 모든 게 다 달라도 우리는 이렇게나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는 가족인데!


오늘도 삼남매 덕에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메뉴를 잘 골라 준 덕, 그리고 실수로 맛있게 된 잔치 국수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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