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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09. 2023

자매의 난에는 자매의 날

낳은 김에 키웁니다 21

큰딸과 작은 딸은 나이로는 두 살 차이이고,  학년으로는 한 학년이 차이가 난다.

둘째 예삐가 한 해 조기 입학을 한 탓이다.


첫째는 만 두 돌에 엄마 아빠를 둘째에게 뺏겼다.

첫째는 예삐가 태어나자마자 나의 젖을 같이 빨았고, 한동안은 예삐와 내 젖을 나눠먹었다.

동생과 똑같다며 기저귀를 찼고(두 돌에 9킬로로 워낙 말라서 가능했다),  

그동안 보인 적 없던 패악을 부리고 질투도 심하게 해 누워만 있는 예삐를 자꾸 아프게 했다.

결국 나와 함께 놀이치료 심리 상담치료까지 받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예삐는 아주 고집쟁이에 악바리가 되었다.

언니는 경쟁자이고 무조건 이겨야하는 대상이지만 본질적으로 넘을 수 없는 나이의 벽에 매번 부딪힌다.

예삐는 언니 친구는 내 친구라는 것을 비롯해 언니가 하는 것은 뭐든지 따라 했고, 언니가 가는 곳은 끝까지 따라붙었다. 날 닮아 포기가 빠른 첫째도 못해내는 걸 둘째 예삐는 끝끝내 해내고야 마는 집념의 아이이다.


가뜩이나 엄마아빠를 뺏어가 미워죽겠는데 하는 짓까지 저를 능가하려니 첫째의 성격에 도저히 예삐를 예쁘게 봐줄 수 없다.

예삐는 예삐대로 언니와 잘 지내고 싶은데, 매번 구박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니 덩달아 더 못되게 다.


하루에도 정말 수십 번도 더 자매의 난이 일어나는데

가뜩이나 방학으로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두 자매의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막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난 아침 한동안은 둘이서 잘 논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다. 가끔은 신체적 폭력도 서로에게 행사를 한다.


"야!"

"언니한테 누가 야래! 엄마 예삐가 나더러 야 래!"


"언니가!!!"

"내가 뭐! 네가 먼저 그랬잖아!"


"아 왜 때려! 사과해!!!"

"쏘리"

"제대로 사과해!"

"했잖아!"


별 것 아닌 일들로 서로에게 잔뜩 날을 세우는 전쟁이 반복된다.

지나고 나면 왜 그랬는지 기억도 못하는 자매의 난이 계속된다.

역시  딸들과 24시간을 붙어있으니 두 딸들이 내는 작은 고함만으로도 화가 나고 날카로워진다.


화난 내가 둘을 벌을 세우거나 혼을 내고 나면 나는 둘에게 잠시 공공의 적이 되고 둘은 같은 처지가 된다. 

그러나 엄마란 공공의 적은 자매 둘의 유대관계를 끈끈이 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존재다.

오월동주처럼 잠시 생사를 같이 할 뿐, 처음의 적은 끝까지 적일 수 밖에 없다. 

엄마는 혼날 때를 제외하고는 늘 독점하고 싶은 존재이니까.



이렇게  세우기가 끝나면 좀 잠잠해져야는데 

잠시 후 다시 2차전 3차전 4차전이 시작된다.

우리집 자매들은 전쟁을 하는 것에는 정말 지치도 않는 것 같다




여자형제가 없는 나는 정말 이해 못 할 행동들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면서 유독 예삐에게만 깐깐한 첫째나.

언니 대접은 개뿔도 안 해주면서 동생 대접은 바라는 욕심쟁이 둘째나.

내 기준에서는 개찐도찐 똑같은 철부지들이다.


나중에 다 자라면 서로가 자매라서 얼마나 좋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자매의 난이 계속되자 나는 방법을 바꾸어보기로 했다.


자매의 날



아이들에게 일정 금액이 들어있는 직불카드를 주며,

동네에 있는 상가 밀집 지역에 가서 둘이 데이트를 하라 시켰다.

단, 먹는 것도 쓰는 것도 모두 둘이 같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여서.





소비요정들에게 주어진 돈은 이만원.

신이 나서 우애 모드로 집 밖을 나간 아이들은 제일 먼저 마라탕집에 갔다. 담다보니 금액이 오버라며 돈을 좀 더 줘야겠단다.

그렇게 자매의 날 첫 번째 소비로 빙홍차 하나와 분모자를 잔뜩 넣은 마라탕을 시켜 먹었다.

내 체크카드를 가져갔다 보니 실시간으로 어디서 뭐하는지 알 수가 있어 좋았다.

그리고는 코인노래방에 가서 내 회원권에 충전되어 있는 금액 중 5000원만큼을 썼다.

마지막으로 내게서 더 받아낸 돈으로 둘이서 스티커사진까지 찍고 왔다.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면서,

살만 닿아도 불결해하던 언니가 제게 뽀뽀도 해주었다고 예삐가 자랑했다.


사진 찍을 때 포즈를 잘못해서 그런 거라며 쑥스러워한 첫째도 끝까지 부정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자매의 날이 좋았단다.


둘이서 메뉴를 고르고 같이 먹고, 돈을 쓰고 다니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게 너무 이뻐서, 아이들이 행복해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선물을 주듯 일주일 만에 두 번째 자매의 날을 가졌다.


이번에는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해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오라는 미션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두 번째 딸들의 데이트는 처음과 좀 많이 달랐다.

카페에서 음료를 한 잔씩 하며 휴대전화를 보았단다.

그러다가 카페에서 나와 문방구와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소액이 여러 번 결제되었다.

이번에는 내 카드가 아니라 아이들의 용돈 카드에 각각 1 원씩 충전을 해주었다.

역시 실시간으로 문자가 오니 아이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수있어 안심은 되지만 영 꺼림칙하다.


엄마의 촉이 또 발동했다.







"어디야? 뭐해? 오늘은 노래방 안 가? 스티커 사진 안 찍어?"


정말 너무 좋아서 자주 자매의 날을 갖고 싶다고 했던 천사 에 빙의된듯 우애 좋던 딸들은 어디 가고.

잔머리를 써서 내가 자매의 날에 사용하라고 준 돈을 마치 저들의 용돈인 양 빼돌리려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추억도 없이 우애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둘은  눈물이 쏙 빠지도록 내게 혼이 났다.


너희들에게 내가 용돈을  게 아니었다.

이건 자매의 날을 보내기 위한 경비였고 엄연히 엄마의 돈이다.

남긴다고 네 것이 되는 게 아니다.

너희들에게 앞으로 세 번 다시는 자매의 날은 없을 것이다.


예삐는 소리까지 지르며 이럴 줄 알았다면 언니와 돈을 다 썼을걸! 하고 분통 터져했다.

엄마를 속이고 사리사욕을 채우려고한 얄팍한 잔머리에 결국 그 좋아하던 엄카 찬스가 날아갔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냐는 말에 이러는 게 어딨냐며 나를 원망 어린 눈빛으로 쳐다본다.

딸들의 퍼핀 카드에 있는 돈을 모두 엄마인 내게 보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겨우 아껴서 들어온 돈이 없어지게 생겼으니 애들은 소리까지 지르며 운다.


그깟 눈빛 하나도 무섭지 않다, 누가 잘못했는데!

나는 이건 공금횡령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목적이 분명한 돈을 개인 용도로 쓰는 것은 중국에서는 사형감이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사례가 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아이들의 경각심을 좀 깨워야 할 것 같다. 내 돈이 귀한만큼 남의 돈도 귀하고 돈은 가치있게 써야한다는 걸.






물론 자매의 날을 여기에서 정말 끝을 낼 건 아니다.

인생은 삼 세 판이라고 애들의 방학이 끝나기 전에 세 번째 자매의 날을 기회로 줘보기는 할 것이다.

이번마저도 자매가 친하게 지내라고 주어진 시간과 돈과 배려라는 걸 몰라준다면 그땐 정말 네 번은 없을 예정이다.


공공의 적보다 훨씬 효과 좋았던 자매의 날.

과연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 될기획한 나도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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