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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06. 2023

어떤 모습이어도 니가 좋아

낳은 김에 키웁니다 20

우리 아들 머리카락은 집에서 내가 잘라준다.


엄마가 미용실을 하셨던 탓인지 나 역시 살면서 미용실을 갈 일이 잘 없다. 파마나 염색은 원래 안 하고 새치 염색은 그냥 집에서 하고, 커트 정도만 1,2년에 한 번씩 한다. 그마저도 엄마께 맡기는 해엔 미용실을 2년씩 안 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미용실에 쓰는 돈이 참 아깝게 느껴져 자꾸만 아들을 상대로 없는 솜씨를 내게 된다.


미용사 자격증도 없고, 헤어컷 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다 꾸미기에 소질도 없는 똥손인 내가! 바리깡도 없이 미용가위 하나로 아들 머릿칼을 자르니 완벽할 리 없다.

삐뚤 빼뚤 잘라둔 머릿칼은 아직은 어린 나이로 겨우 커버를 하고 있다. 아들이 입학을 하면 그땐 미용실에 보낼 생각이다.


여섯 살 평생 빡빡 머리로 배냇머리를 밀었을 때 외엔 미용실에 간 적 없고, 엄마가 잘라주다보니 우리 아들에겐 엄마의 야매 미용실이 당연하다.


휴대전화만 틀어놓으면 움직이지도 않고 잘 기다려주는 착한아들 덕에 나는 꾸준히 아들의 전담 용사가 될 수 있다.


지난 에 헤어컷을 할 때  구렛나루를 없애고 옆머리를 일자로 잘라서 빙구미를 냈더니 남편이 너무 싫어했다.

다음부턴 미용실에 데려가서 자르란 소리에 이번엔 조금 멀쩡하게 잘라보려고 애를 써봤다.


하지만 일자로 잘라놨다 기른 머리카락이기에 아무리 스타일을 내려해도 한계가 있었다. 일단 옆머리와 앞머리가 구분이 되도록 앞머리 길이를 댕강 올렸다. 지금 나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귀여운 일자 앞머리를 또 했더니 딸들이 꺄르르 웃었다. 남편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지만 아들이 실망할까봐 어버버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 너무 귀여워!!!"


온 집안 여자들의 사랑과 애정 덕에 일자 앞머리의 아들에게 귀엽다는 찬사가 쏟아지자 아들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미용실 데려가라니까....."

하고 남편은 슬쩍 말했지만, 내 눈에는 귀엽기만 했다.

나만큼 우리 아들을 예뻐하는 딸들 눈에도 하트가 뿜어져 나왔다.


동생의 헤어컷이 맘에 들었는지 갑자기 딸들도 너도 나도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결국 이 날 나는 작은 딸과 큰 딸까지 아이 셋의 헤어컷을 다.






화장실 발받침대에 아이들을 앉히고 불편한 자세로 머리카락을 자르느라 용을 쓰고 나니 허리가 아팠다.

머리카락 범벅인 아이 셋을 씻기고 잘린 머리카락들이 잔뜩 낀 배수구부터 시작해 욕실 청소까지 끝낸 후 나도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모든 것을 끝내고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큰 숙제를 끝낸 듯 개운하고 후련하게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후아~! 나 오늘 못해도 삼만원은 벌었다!!!! "



 남편에게  미용실에 갔으면 썼을 돈을 벌었다 하니 남편은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그래 너는 혀나 차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다~!!!


간만에 아이 셋의 머리모양이 다 맘에 들게 잘라졌다.

소질이 없다고 했는데 자꾸하니 나도 몰래 실력이 조금은 늘었나보다며 만족했다.







그날 저녁, 작은 딸 예삐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양파와 김치 그리고 스팸 조금을 넣고 김치 볶음밥을 해주었다. 김치볶음밥을 할 때 밥보다 김치를 더 많이 넣고 떡볶이 소스를 넣어 간을 맞춰주면 우리 예삐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된다. 밥그릇에 소담히 담아주자 예삐의 눈이 반짝인다.


"엄마 잠깐만~!!!"


호다닥 주방으로 달려간 예삐가 김밥용 김 한장을 꺼내 가위질을 했다.

또 무얼하나 하고 지켜봤더니 막내라면서 밥에 김을 얹어 꾸몄다.


"엄마 이거 봐봐, 막내야! 어때? 똑같지?"


얼핏보니 막내처럼 일자로 반듯하게 잘린 머리가 똑 닮았다.


"진짜 닮았네!"


내가 동조해주니 예삐는 몸까지 배배 꼬아가며 좋아한다.


"아~ 귀여워서 이거 어째 먹지?"


"안먹으면 버리거나 썩거나인데. 그거보단 먹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겠지? 그럼 나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


막내머리를 최대한 피해서 한 수저 크게 떠서 오물오물 씹는 예삐가 기특하다.



동생의 못난이 머리도 예뻐해주는 누나


예삐는 막내가 좋단다. 정말 있는 그대로 너무 좋단다.

나도 내 동생이 그리 예뻤었다.

고작 두 살 차이나면서 내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내 동생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꼈다.

그래서 예삐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바라건데 지금 이 마음 변치 말고 자라주길!!!!

나중에 자신의 키보다 더 자라서 까불어 댈 막내가 미워보이고 싫어보일 때, 지금 이 기억들을 떠올리며 포용해주길 바라본다.


예삐가 막내에게 써준 쪽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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