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Aug 01. 2023

놀이터 보다 더 좋은 건 엄마아빠

낳은김에 키웁니다 19

목동 빌라에 살면서 경기도 동쪽 끝  미분양 아파트 잔여세대를 주워담을 때만해도 사실 그 집에 가서 살 생각은 없었다.


신혼부부에게 전세를 주려했기에 욕심을 버리고 26평형을 선택했다.

나는 비록 12평 다가구에서 시작을 했지만 우리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아이도 낳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잘 살았음 싶었다.


아파트에 살아본적 없던 내가 미분양 아파트를 줍줍하며 생각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지대가 높아  뷰는 어느 동이라도 좋을테지만 야경보다는 해가 뜨는 것이 바로 보이는 남동향이었으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우리 부부는 고층은 생각만으로도 무서우니 일단 무조건 저층이었으면.(당시만 해도 아파트의 층수에 따라 분양가가 다르다는 것도 몰랐었다.)
어린시절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에 귀가했던 기억을 로망 삼아 놀이터도 가까웠으면.


그렇게 나는 주방창에서 놀이터가 보이는 아파트 3층을 골 다.


절대 내가 입주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비웃듯 입주를  반년쯤 앞둔 시점에 의도치 않게 셋째가 생겨 우리는 그 집으로 입주를 했다.

아무리 목3동 빌라가 행복이 넘치는 집이라해도 도저히 11평 투룸 빌라에서 다섯식구가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부산광역시 출신의 내가 서울특별시민에서 경기도민이 된 것은 아쉬웠지만, 아파트는 내 아이 셋을 키우기엔 최고의 환경이었다.


특히 놀이터가 그러했다.

나의 로망처럼  놀이터 지박령이 되어 노는 딸들을 부엌창을 열어 불렀다. 혼자서 엘레베이터 타기가 무섭다던 딸들도 엘레베이터에 익숙해졌고, 놀다가 목이마르거나 쉬가 마려우면 집으로 쫓아들어왔다 다시 나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놀이터와 집이 가까워서 최고라며 엄지를 세워주었다.


집 바로 앞에 시에서 관리하는 물놀이터가 있었는데, 막내가 돌이 지나서부터는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우리가족의 여름 피서지는 그 물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끼리만도 잘 나가 놀았지만 주말에 가끔 남편은 에어컨 바람 밑에서 안 나갈거라고 버티는 나와 막내까지 끌고 나갔다. 돗자리를 펴고 간식을 쟁여놓고 그렇게 엄마 아빠가 함께 나와 노는 날이면, 우리 딸들은 마치 그 놀이터가 제 것인냥 위풍당당해졌다. 그때만큼은 세상에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웃음꽃이 온 얼굴에 폈다.




그렇아이들 키우기에 최고였던 그 집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했음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부부는 남편의 사업이 쫄딱 망하고 빨간 딱지가 붙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그 곳에서 견뎠다. 그리고 결국  이혼을 했고 그 집에서도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고, 이혼은 했지만 아이들을 핑계로 여전히 전남편도 함께 동거 중이다.


나 때문에 엄마가 이 집을 살 때, 실제 거주할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


김포공항과 가까운 경기도 일것
새로 지은 신규 아파트의  1층 일 것
놀이터도 가까울 것
최대한 조용하고 주차가 용이할 것


여름이면 물놀이터로 변신하는 놀이터가 사선으로 보이고

게이트에서 가까워 주차도 편하면서, 1층인 지금 집의 분양권을 매입하며 집주인인 엄마보다 사실 내가 훨씬 많이 좋아했다.




코로나가 지나고 되찾은 일상 중에는 가동을 멈추었던 물놀이터도 있다.


주중 내내 일을 하니 늘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뒷전이다.

이사 후 3년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온 적이 열손가락에 꼽힐정도다.

그동안은 초등고학년인 딸들이 나 대신 막내도 데려가서 놀아주었다.



얼마전, 뜨거운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터 한 켠에 파라솔도 펼치고 수박도 한 덩이 내어갔다.

동네에서 나름 체통을 지켜야하는 일을 하는 나 대신 머리털이 숭숭 빠진 늙은 아빠가 쫄딱 젖어가며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그리고 내가 내어간 수박을 썰자 딸들은 온 동네 아는 아이들을 다 불러다  수박을 먹였다.


수박을 주며 생색, 친구들이 씨 뱉는 걸로 잔소리를 하는 우리 딸의 입이 귀에 걸렸다. 뭘 믿고 저리 까부는 건지 싶은데 딸들의 말에서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나가는 아는 사람, 친구들마다 우리 엄마야 우리 아빠야 하고 소개를 가장한 자랑을 했다.

친구들 부모님 중에선 함께 나와 놀아주는 분이 없는데, 우리 엄마아빤 함께 나왔다며 우리 부부에게 고맙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엄마아빠랑 노는게 제일 재밌다며, 같이 놀아주는 우리 엄마아빠가 최고라고도 했다.


한껏 고조된 기분에 입에 발린 소리란 걸 알면서도 아이들의 칭찬은 엄마아빠의 기분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아이들이 건넨 몇 마디에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물벼락 몇 번 맞고 금세 지쳐 집에 가자는 신호의 눈빛을 보내던 아빠가 힘을 낸다.


"우오오오 다시 가자!!!! 아빠가 잡으러 갈게!"


아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들은 내가 덮어주었던 빅타올을 집어던지고 발 빠르게 뛰어간다. 저만치 멀어지는 아이셋의 뒤로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파라솔 밑에 앉아 널부러진 수건과 먹다만 수박과 음료를 정리하고 있는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비싼 워터파크 호캉스 못데려가서 미안하지만,

아파트에 딸린 물놀이터에서라도 이렇게 재밌게 놀아주니 그저 고맙다!

아직은 내 아이들에게 놀이터보다 더 좋은 엄마아빠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커가는 아이들이 아쉽다.


내 자식 셋과 이렇게 행복한 여름 방학이 조금 더 길었으면.



딱좋은나의 브런치북도 만나보세요



1. 용 쓰는 결혼 생활




2.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매거진의 이전글 감바스알아히요 ; 엄마 드세요는 대체 언제쯤 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