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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24. 2023

넷째를 낳아 주세요.

낳은 김에 키웁니다 24

"엄마 아기씨는 이제 다 썩었어?"



심각한 얼굴로 여섯 살 막내가 물었다.


"뭐라고?"


깜짝 놀란 내가 되물었다.


"엄마 아기씨는 이제 다 썩었냐고."


"아니. 엄마 아기씨 아직 안 썩고 잘 있는데, 갑자기 왜?"


나는 아직 완경(폐경)과는 거리 가 먼, 매달 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40대 초반이다.

그런 내게 아기씨가 다 썩었냐는 아들의 말은 좀 충격적이고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아아. 그럼 아빠 아기씨가 다 썩었나?"


질문 같은 깨달음을 던지고 아들이 뒤돌아서 누나들에게 가버렸다.


"아들! 아빠 아기씨도 아직 안 썩었어!!!!!"


아들의 등 뒤에서 외쳐보지만 아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키득키득 패드 두 대를 펼쳐두고 동영상을 찍고 노는 누나들에게로 가 같이 놀자고 한다.

하지만 아직 자매의 난이 벌어지기 전이라 세상에 둘도 없는 우애를 과시하고 있는 딸들은

영상을 찍고 돌려보느라 둘이서 재미가 좋아 막내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


시무룩한 얼굴로 아들은 내 앞에 되돌아와 티브이를 틀었다.







우리 집 딸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들임에도 아직도, 여전히 내게 넷째를 요구한다.


"아들 하나 더 낳아죠! 넷째 낳아죠!"


딸들이 이렇게 아들 하나 더, 아기 하나 더 하며 넷째를 원하는 것은 셋은 언제나 하나가 남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누나 둘이 재밌게 노는 걸 보면 막내가 울고,

막내가 누나 중 하나와 놀면 나머지 하나는 본의 아니게 왕따가 된다.


셋 중에 하나가 남는 것은 친구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눈물 없이 불가능한 삼각관계의 늪에서 언제나 늘 한 사람은 울어야만 된다.


"그럼 엄마 아기씨 아직 있으면, 아기 하나 더 낳을까?"


평소에 동생은 절대 싫다고, 자신이 무조건 막내여야 한다던 막내가 티브이를 보다 말고 처음으로 내게 넷째를 묻는다.


오늘은 누나들이 어지간히도 재밌게 노나보다, 이렇게 배 아파하는 걸 보니.


"하하, 그러기엔 엄마가 너무 늙었지. 누나들이 빨리 시집가서 조카를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리고 넌 사촌동생 따따가 있잖아."


처음으로 동생을 낳아달라는 아들을 달래 보지만 좀처럼 아들의 기분이 풀어지지 않는다.


"아무튼 넷째는 안돼! 셋에서 끝이야!"


"엄마 미워!"


내 말에 아들은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고 우는 척을 한다.

그마저도 귀엽지만 근엄한 목소리로 결국 나는 딸들을 호출했다.


"막내도 같이 놀아!!!!!"






우리 부부가 법적으로 혼인 상태가 아닌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남편의 나이가 벌써 반백살에 가깝다.

(내 나이즈음 남편은 막내를 얻었으니 내 나이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만약 아이가 없는 집에서 반백살에 늦둥이가 생기면, 무조건 낳아야 하는 귀하디 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이미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우리 집에서 늦둥이 넷째는 이제 과유불급이다.


"로또 되면 하나 더 낳지!"


속 편한 소리를 하는 남편은 아이 키우는 게 그저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남보다 못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육아에 그다지 동참을 하지 않았었기에 말은 참 쉽다.


아이 셋을 자연분만, 모유수유, 독박육아에 한때는 천기저귀까지 써가며 키운 나는

지금 당장 병만 안 들었지 다시 육아를 시작할 만큼의 체력이나 정신력이 되지 않는다.


뒤엉켜 자고 있는 셋을 보면 아주 가끔 하나 더 낳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긴 하지만,

그런 말이라도 꺼낼라치면 내 주위 모두가 나를 출산 중독이냐, 미친년이라며 말린다.


"그러다 네가 먼저 죽는다."



그래, 11남매를 낳고 단명하신 시할머니처럼 아이 많이 낳은 사람치고 오래 사는 사람을 못 봤다.

아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산욕기를 잘 보내는 것은 무리이고 산후조리가 되지 않은 몸은 병 없이도 아픈 곳이 많다.


나는 남들보다 아이들 잘 키우진 못해도 나름 열심히는 키워왔다.

내 고생 하나로 아이를 온전히 자라나게 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사람으로서 얼마나 기쁘고 보람된 일인가.

남의 말처럼 나 하나 힘든 것으로 끝이라면 넷째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지금 내 나이가 되기도 전에 나는 세상을 떠날 테다.

아무리 지금이 백세시대라 하지만,

남편과 나는 안락사를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늙고 병들고 추해져 내 아이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적당히 아쉽고 적당히 슬프고 말 정도.

아이들이 제 가정을 꾸리고 우리와 상관없이 일상을 살 수 있을 때 정도엔 이별을 해도 괜찮다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아이를 가져 내년에 낳게 된다면 첫째와도 이미 띠동갑이 넘게 차이가 난다.

그 아이를 두고 떠나기엔 내가 삶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막내가 지금도 이리 어여쁜데, 마흔 넘어 낳은 또 다른 베이비는 얼마나 이쁠까!)





"막내도 동생 있으면 막내랑 놀면 되잖아, 로봇도 많은데. 엄마 아들 하나 더 낳으라니까."


막내까지 데리고 놀아라니 딸들의 불만도 어마무시하다.

또 도돌이표 넷째 타령이 시작되었다.

나 몰래 날이라도 잡은 건지 애 셋이서 번갈아가면서 왜 오늘 갑자기 넷째를 자꾸만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아들 하나 더 나오면 너네 완전 천덕꾸러기에 유모 된다. 아서라!"


"기저귀는 내가 갈고, 재우는 건 언니가 하고. 쭈쭈만 엄마가 먹이면 되잖아."


"집안일 누가 다 할래.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하고는 누가 다 하는데."


"우리가 도와줄게"


"학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하고 애만 들여다보고 있을래? 내가 너네 그럴까 봐 안 낳는 거다!"



"아니, 우리가 도와준다고. 많이 도와준다고."


"돕는 거로 안돼. 누가 다 해야 돼. 그럼 낳을 수 있어."


"그럼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애기 볼까?"


결론이 이상하게 튀어버린 예삐의 심각한 말에 결국 나는 소리를 질렀다.



"넷째는 안돼!"



아이들에게 못을 단단히 박았다.


아이 셋은 늘 듣는 대답에도 매번 실망한다.


사랑이 넘치는 집구석 같으니라고!

도대체 왜 이렇게 애들이 애를 더 원하고 원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하나 더 낳았을까보다.

흘러간 세월이, 시도치 못한 과거가 나도 오늘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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