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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31. 2023

과연 편견일까? : 하얀짜파게티

돈 떨어진 월말에 마트에 간 이유는 많습니다.

나는 개인사업자이지만 하순에 매출이 몰려서 일어나다보니 자연히 내 급여일도 월말이다.

통장에 급여란 이름으로 매출액이 꽂히면 나는 일단 집과 상가 자동차 등의 대출금의 익월분을 미리 상환한다.


매달 나가는 국민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보험료, 관리비 등의 공과금은 미납 방지차원에서 모두 카드에서 빠져나가게 해두었다.

내 신용 카드는 모두 1일부터 말일까지 사용한  금액이 14,15일에 결제된다.

동시다발적으로 4개의 카드 이용액이 출금 되다보니 카드값 나가는 날에는 현타가 올 정도로 (내 기준)  큰 돈이 뭉텅  뭉텅 빠져나간다.


빚 갚는데 최적화 된 나는 여윳돈이란 개념없이 돈이 들어오면 대출 갚고 카드값 내길 반복해,

보통은 통장 잔고가 세자리이거나 네자리 수이다.

빚을 갚는게 또 다른 이름의 저축이라 생각하고 사는 중인 나의 소망은 적금 들기이다.

(적금이자보다 내 대출이자가 더 높다는 이유로 나는 아직 적금을 들지 않고 있다.)


통장에 꽂힌 돈은 스치듯 지나가버려 이번 달에도 텅장이 되었다.

가뜩이나 쪼들리고 사는데 십원짜리 하나까지 탈탈 털어 잔고를 다 비워내고 다시 가난해진 월말이다.




"맥주는 테라로 사?" 하고 늦은 시간까지 업무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번에 마트에 와서 구입해 간 아사히수퍼드라이생맥주가 너무 헤퍼서 진작 다 마셨다.

그 후 남편은 억지로 소주를 먹고 있다.

집에 남은 술이라곤 손님 접대용 소주뿐이기에.


귀가 후 맥주 한 캔 마시며 나랑 얘기 하는 걸 즐기는 것이 남편의 유일한 낙인데,

맥주가 없으니 술이 약한 남편은 소주에 금세 취해버리고 숙취도 있어 아침에 일어나길 버거워 했다.

돈 벌어다 주며 밖에 나가 술자리를 갖는것도 아닌데,

맥주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안 사주고 버티고 있나.

어제도 소주를 마시고 뻗어버린 남편이 짠해서

이제는 정말 똑 떨어진지 오래인 남편의 맥주를 채워 놓아야 겠다 싶었다.


나는 마시지도 않는 맥주 때문에 돈 없는 월말에,

쓰자마자 청구될 월말인 걸 알면서 마트행을 강행하다니!

정말 여전히 대단한 남편 사랑이다.

돈 없이 장을 보러 가는 무거운 마음은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진 탓이라 여겨본다.




어지간하면 냉장고 파먹기를 하며 버텨보려했는데.

애 셋을 키우는 집에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어서 눈 딱 감고 창고형 할인 마트로 갔다.

솔직히 주부9단 지망생으로서 냉장고 파먹기를 끝내더라도

우리집 애들 정도는 어떻게 해서든 밥을 먹일 수 있다.

그런데 한창 자라는 애들이 밥만 먹고 살 순 없지 않은가.

아이들은 식사 외에도 과일도 먹고 싶어하고, 과자도 먹고 싶어하고 간식도 먹고 싶어한다.


간간이 집앞슈퍼나 인터넷 쇼핑으로 생필품구입을 하긴 했지만,

식재료는 거의 4주만에 장을 보러 갔다.

징하긴 했다, 버틸만큼 버텼다 싶어 마음을 좀 가볍게 고쳐먹기로 했다.

어차피 먹고 살려고 버는 돈 아닌가! 하며.

- 매번 이렇게 나가는 돈이 신경쓰이는 나는야 세대주이자 가장이다.


"애가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어!"


"우린 개학해서 그나마 나은데, 그래도 애가 셋이잖아.

애들이 냉장고 문 닫았다 열었다 먹을 거 없냐고 계속 물어.

과일 먹고 싶다는데 비 때문에 과일 값이 너무 올라서 손 떨려서 못 사주겠어!"


"진짜 물가가 왜 이렇게 비싸졌냐!"


오랜만에 만나 같이 마트에 가는상그니 언니도 나와 같은 상황이다.


우리 둘 모두 각자 일을 하다보니 가까이 살아도 예전처럼 편하게 자주 볼 수가 없다.

함께 장이나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어야 겨우 얼굴 한 번 볼 수 있다.

이렇게 일부러 짬을 내 만나면서 우리는 인간 관계란 사심을 채운다.





평소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익숙한 동선으로 움직이고 알고 있는 위치에서 필요한 물건만 구입한다.

그래서 쇼핑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쇼핑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기에 남편은 나와 쇼핑 다니는 걸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싫어하지는 않는다.

군더더기 없이 시간을 소비 하지 않아 쇼핑이 그다지 고생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평일 늦은 저녁에 갔더니 마트가 한산하다.

비록 시식은 없어도 카트를 끌고 다니기엔 좋았다.


그런데 같은 마트를  간 것이라도 4 주만에 간 탓인지 매대의 위치가 조금씩 변해 있었다.

물건을 찾느라 지나온 곳을 또 가야 했다.


두어번을 왔다리 갔다리 하느라 평소보다 오늘은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왔다리 갔다리 하는 중에 내 눈에 딱 띄인 가격표.

창고형 할인 마트 그것도 식자재 코너에서 볼 수 없는 가격.

5천원도 안되는 곳에 딱 한 박스 남은 상자 하나.

누가 집어 갈새라 고민 한번 없이 바로 내 카트로 실어 담았다.







컵라면이다.

짜파게티이다.

그런데 금액이라니, 어메이징!!!


"야, 백짬뽕도 아니고 짜파게티가 하얀색이면 무슨 맛이야. 크림 짜파게티야? 아휴"


내 박스를 본 상그니 언니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짜파게티는 까맣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그렇다.

내가 집은 박스는 지난 5월에 출시하여 이제 유통기한(소비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저렴해진

하얀짜파게티큰사발면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나보다 장바구니를 더 반기던 딸들이 단박에 신문물을 영접한다.


"밤이니까 하나만 해서 둘이서 나눠먹어!" 했는데 큰 딸이 맛있는지 나눠주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후회한다" 하는 나의 협박에 큰딸은 입을 삐죽이며 예삐에게 나누어 주었다.

편식이 심한 큰 딸의 입맛에는 이 하얀짜파게티가 아주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예삐는 언니가 나눠준 몇 입을 아껴먹으며 제법 맛있다고 했다.


짜파게티는 까맣다는 편견을 버리고 사온 하얀짜파게티는 성공적인 소비였다!


다음날, 일찍 일어난 예삐가 아침식사로 하얀짜파게티를 다시 조리했다.

하나를 다 못먹는단 예삐 덕에 나도 맛을 보았다.


"이거, 무슨 맛이야?"


미고랭과 비슷한 것도 같은데 미고랭과는 같지 않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느끼함과 달작지근함 그리고 짭쪼름함이 느껴진다.


차라리 미니컵이면 딱 아쉽게 먹고 더 나았을 걸.

내 기준에선 국물도 없는데 양념까지 밍숭맹숭하니 영 별로다.

경험삼아 한 번 정도는 먹겠지만, 두 번은 손이 안갈 것 같은 맛.


괜찮아, 우리집 아이들이 다 먹어 줄 거야. 라고 생각한 그 때


"엄마 두 번째 먹으니까 영 맛이 없네."

제 몫으로 덜어낸 만큼을 다 먹은 예삐가 젓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앞으로 하얀짜파게티는 하나로 셋이 나눠 먹어라."



편견을 버리고 사온 거라 생각했건만.................

짜파게티는 까맣다.

그건 편견이 아니었다.

불변의 진리였다!!!!!


짜파게티는 까매야 합니다!!!!!

무조건, 절대로!


(큰딸은 다시 먹어도 맛있다고 했습니다.

하얀짜파게티 맛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취향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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