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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Sep 05. 2023

차라리 절단장애가 부러운 척추장애

생각지 못한 척추장애의 현실, 삶 그리고 생존.

B는 사실 운동을 했었던 몸 답게 술도 세고 술도 자주 많이 먹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가 교통사고 이후 치루어낸 전신마취 수술이 수 십 번인데다

현재 먹고 있는 약과 진통제들도 어지간한 간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정도의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사고 이후 정확히 장애인이 되고 난 이후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은 B의 아내와 내가 술잔을 맞부딪쳤고,

B와 운전을 해야하는 남편은 어지간하면 콜라를 마셨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집에 온 B가 하룻밤 자고 가기로 한데다,

몇 달만의 외출인 B 역시 신난 마음에 어쩐일로 먼저 술을 마시자고 했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는 동안 B는 평소보다 더 자주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평소에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셔 방광이 빨리 차다보니

셀프로 소변을 조금 더 자주 빼내야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척추장애인이 된 B의 몸에는 3개의 인공 척추뼈가 박혀있다.

차 안의 모든 에어백이 다 터질 정도로 큰 교통사고였다.

다행히 새벽녘이었기에 다른 차들은 없었고 가드레일과 가로수만 들이받았단다.


오늘 B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처음 B의 입으로 들었다.

남편이나 다른 친구들 입에서 카더라 하는 소리로 들었던 스토리를

당사자인 B의 입에서 정확히 누구와 무슨 이유로 어떻게 술을 먹고

사고가 어떻게 나게 되었는지를 만난지 십수년만에  처음 들었다.


그렇게 큰 사고였음에도 몸 어디에도 피 한방울 나지 않았단 게 신기할 정도로 멀쩡한 외관이었단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겉모습과는 달리 B의 척추뼈 3대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그의 상태 때문에 처음 병원에 실려갔을 때만해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 했다.

며칠동안 혼수 상태로 B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사망신고서를 준비하고 계셨다했다.


며칠만에 까딱 움직인 손가락에 희망을 걸어 수술을 했단다.


완전한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된 B.

거듭되는 수술에 가지고있던 건물 한 채를 다 날렸단다.


"나 이제 못 걷죠?"


차마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청년에게 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몇 번이고 망설이며 피하는 의사에게 먼저 물을 정도로 B는 밝은 사람이다.


계속되는 재활과 수술과 후처리로 돈을 잃고 보험금을 잃어도 괜찮았단다.

하지만 석달 넘게 찾아와 자신이 모든 수발을 들겠다는 전 여자친구에게만큼은 그 누구보다 모질고 독하게 했단다.


"가! 가서 니 인생 살아. 내 인생에 끼여들어서 너까지 망가지지 말고 가!"


휠체어까지 집어 던져가며 갓 성인이 된 여자친구를 위협했었단다.

(사고 당시 B는 손으로 휠체어쯤은 거뜬히 집어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신체 건강하고 힘이 좋던 꽃 같은 나이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때 도망가지 않았던 전 여자친구는

지금 인공수정으로 B의 아들과 딸을 낳고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B의 아내이다.

(사고 후 B의 어머니는 정자냉동보관을 바로 실시하셨기에 가능한 임신과 출산이었다.)


B의 발이 되어주는 그의 휠체어


"제수씨, 나 같은 척추 장애인은 차라리 절단 장애인이 부러워요.

그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의지로 싸잖아요."


B와 술을 마시며 한 말이다.


서지 못한다는 것도 걷지 못한다는 것도 뛰지 못한다는 것도 다 받아들였는데,

밝고 긍정적인 B가 단 하나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은

바로 신경이 끊어짐으로 알 수 없게 된 '변의'이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똥 냄새가 나서 보면 제 몸에서 저도 모르게 똥이 나와 있고

누군가가 왜 이리 축축하냐 하고 보면 이미 오줌을 싸 다 젖어 있고.


기저귀를 뗀 지 20년도 훨씬 넘었는데 다시 기저귀를 찬 신세가 되었다는 그 사실.

사람들 앞에서 싸는 실수를 하기 전에 미리미리 빼내야 하는 그 현실.

그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고 했다.


처음이었다.

B와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장애로 겪는 일상을 이야기 나눈 것이.

아버지가 장애인이 되셨다는 내 말에 마음씨 착한 B가

그 정도는 괜찮다며 위로하느라 본인의 얘길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우리 아빠도 비록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어도 오줌 싸고 똥 싸고는 본인 의지대로 한다.

조금 불편하고 빨리 지친다 뿐 B 가 겪을만큼 자신의 인생이 바뀌진 않으셨다.


그것이 장애의 경증과 중증의 차이라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B가 느꼈을 좌절과 슬픔을

감히 상상도 못하겠어서 그 어떤 말도 더 할 수가 없었다.



"으윽."


함께 있는 동안 B는 가끔 다리를 붙든 채 기도 하듯 머리를 쳐박고 신음한다.

그의 가족이 그러하듯 나도 늘 그 고통을 보고도 못본척 했는데 이번엔 용기내어 물었다.


"많이 아파요?"


"사실, 얘는 감각이 없어서 몰라요."

진통을 끝낸 후 괜찮아진 B가 자신의 다리를 툭 치며 말했다.


"여기에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지."

검지를 들어올려 머리를 가리킨 그가 웃었다.


비록 끊긴 신경은 죽었더라도 절단 장애인 만큼의 고통을 B도 느낀다.

몸이 아니라 머리가 사고 당시의 고통을 기억하는 거라 했다.

그래서 늘 B의 팔에는 마약성 진통제 패치가 붙여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20년 가까이 수명이 줄어든대요."



나 같은 사람 이라는 말도 참 슬픈데 생각보다 많이 줄어든 기대 수명에 더 놀랐다.


늘 먹어야 하는 약의 내성으로 고용량을 먹어야 함에도 없어지지 않는 신체의 고통과도 싸워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척추 장애인들의 수명이 일반인에 비해 20여년 정도 줄어든다니.


70~80년을 사는 보통의 남성 기대수명에 비추어 볼 때,

반백살에 가까운 B는 빠르면 5~10년 안에 세상을 떠나 별이 될 테다.



아!!!!!!!!!!!!!!!!!!!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저런 생각에 멀리 있는 우리집에 이렇게 급하고 갑작스레 찾아 올 만큼

B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자신 곁에 있는 인연들을 챙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B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보다 지나온 과거가 더 가깝고 친하니까.


머리로는 충분히 장애인인 B의 불편을 예상했지만

실제 들어본 B의 이야기는 불편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까지도 연결된다 싶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울컥한 마음에 차마 소리로 뱉어내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작 맥주 1700cc짜리 두 개를 다 먹지 못하고 옛 이야기 중인 남편과 B를 보며 애틋해졌다.

또, 그들의 이야기가 온통 과거 이야기인것이 안타깝다.

조금 더 나은 미래, 오늘과 다를 내일을 꿈꾸는 것조차 버겁고 어려운 B를 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노래방 가자!"


시킨 술도 다 마시지 못하고 우리는 나왔다.

오늘만큼은 B와 함께 정말 잊지못하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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