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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Sep 04. 2023

장애, 불편을 마주하다

장애인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B를 정확히 정의하자면 내 친구가 아닌 남편의 친구다.

엄마 젖을 갓 뗀 무렵 한 집에 같이 산 적도 있다하니,

B는 남편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난 친구이자 반쯤은 이미 가족인 관계이다.

대나무 말을 함께 타고 논 죽마고우를 넘어선 제대로 된 불알친구 B가 온다는 소식에 남편은 조금 들뜬 듯 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B는 20대 초반, 군대를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인한 후천적 척추장애를 가지게 된 장애인이다.

그는 초중 시절에 축구 선수로 활약할 만큼 신체 건강한 사람이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척추 장애인으로서 하반신을 쓸수도 느낄수도 없는 B는 휠체어를 타야지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런 B가 한 시간여를 혼자 운전하여 우리집에 놀러왔다.


작년 가을 이맘 때 쯤 만나고 나와 남편이 하는 것 없이 매일 바쁘단 핑계로 1년여간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은 몸이 불편한 B를 핑계로 우리가 B의 집으로 찾아가 만났었다.

그런데 1년 동안을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내니, 참다 못한 B가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우리집에 B가 자주 오지는 않았다.

딱 두 번, 난간도 없는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2층 신혼집과

엘레베이터 없는 빌라 4층에 살 때 우리집 근처까지 왔다.

하지만 계단이란 장벽이 가로막는 우리집에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남편의 덩치가 60~70킬로그램의 친구를 번쩍 업어들 수 있을 정도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 남편은 크지 않은 키에 뼈대만 굵었지 근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어찌보면 힘들게 친구를 업고 오르내리길 거부하는 개인주의자의 의지부족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때의 기억으로 나는 아파트에 이사를 할 때마다

B의 휠체어가 충분히 들고 날 수 있는 중문을 골라 설치했다.

앞으로 B가 내 집 앞 까지 왔다 돌아가는 일이 세 번은 없어야 한다 생각하며.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서 매일이 나아지고 있다하는 현실이지만,

아직도 이렇게 장애인인 B가 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행동반경의 제약. 그것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첫번째 불편함이다.


B와 우리 막내



어릴 때부터 휠체어를 탄 삼촌을 보고 자란 탓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삼촌의 휠체어나 삼촌같은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말하고 생각하고 똑같음을 알고 있다.

하나도 다름 없음을 알아서인지 아이들은 배려를 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운 질문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삼촌은 언제부터 휠체어를 탔어? 삼촌은 왜 다리가 이렇게 얇아?"


내가 곁에서 지켜보기에 순수하지만 무례에 가까운 이 질문들은 장애가 가진 또 다른 불편함이다.

B는 후천적 장애인이다보니 왜 장애인이 되었는지. 무슨 사연으로 장애하는 핸디캡을 갖게 되었는지.

답을 주든 주지 않든, 자신의 장애를 궁금해하는 시선과 질문을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견뎌야 한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B가 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급하게 저녁을 준비하려했는데, 찬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마트는 갔으나 야채는 사지 않았기에 만들수 있는 음식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썰어서 얼려둔 야채들을 볶아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넣고 급히 카레를 만들었다.

여섯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그간의 안부를 묻고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집 밖에 나온지 몇 개월만이란 B를 위해 어른 셋만 나가서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술집까지 걷는 동안 중간 중간 흡연구역이 나올 때 마다 멈춰선 남편과 B는 담배를 피웠다.

슬금 슬금 옆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도 길을 걷는 사람들도 신기한 눈빛으로 한번씩은 쳐다 본다.


"뭘 저렇게 쳐다 봐!"

볼멘 소리를 하는 내게 B는 "제수씨, 저렇게 쳐다보는 거 정돈 양반이에요"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서도 담배가 피워지냐며 빈정거린단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놈이 술을 먹는다고 술 맛 떨어진다고 술집을 나가는 사람도 있었단다.


다리는 못 써도 손은 있고 소화시킬 장기도 있는데!

당연히 술도 먹고 담배도 피고 다 할 수 있는 똑같은 사람인데!

장애인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들으며 나는 참 어이가 없고 신기했다.

어딜가나 상식을 벗어난 도라이들은 있구나 싶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부글 부글 했다.

왜 제 돈 주고 흡연구역에서, 술집에서 먹는 술과 담배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잠시 몇 시간을 함께 있었는데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했다.

필요 이상의 관심을 끌고, 때로는 어그로까지 끌게 되는 것.

휠체어를 탄 B와 함께 다니며 새삼 느끼게 된 불편함이었다.


불편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다.

두 발로 서서 걷는 내가 술집에 먼저 들어가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느냐,

휠체어 손님이 있어도 되겠냐 양해를 구했다.

노래방에 가서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의 존재를 묻고 따로 요청했다.


1년만에 회포 한 번 푸는데 눈치를 더럽게도 많이 봐야해서 내 속이 다 상했다.


복지국가, 말은 참 좋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의식은 아직도 국가가 권장하는 만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장애인이 절대 다수가 아니기에 특별 취급을 한다.

배려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는 미덕보다 열등하고 더 모자란 존재로 말이다.


"이야. 너네 아파트 헬스장 좋다! 내가 사는 지역엔 장애인 운동시설이 3층에 있어.

엘레베이터 없는 건물에 말이야. 나 같이 휠체어 타는 사람은 운동도 하지 말란 말이지!"


B의 말에 이것이 진정한 복지국가인가 싶었다.

장애인을 위한 장소가 장애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니.

어쩌면 안그런 척 하면서 이 나라 이 국가 이 정부부터가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



짧은 시간동안 장애가 겪는 불편을 마주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작년 이맘 때 우리 아버지도 장애인이 되셨다.

나는 장애인의 딸이기도 하지만

B처럼 어떠한 이유로 장애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비장애인이다.

그래서 더욱 울컥하고 욱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 더 싫은 장애를 대하는 세상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나는 이 불편이 참 불편하고 싫다.


장애인 친구 B와 함께 나눈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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