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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Sep 08. 2023

울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울보 엄마

낳은 김에 키웁니다 28

우리 딸들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나에게 혼이 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지.

매일 언제 어디서든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앉을 일이 있다.


울기 전날 밤, 우리가 함께 걸었던 좋은 기억 하나


원래부터 울음이 많은 예삐는 내 앞에 앉기도 전부터 겁을 먹은 척 소리를 높여 운다.

성대결절이 생길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크게 우는 아이다 보니 아무리 내 딸이라도 우는 소리는 딱! 듣기 싫다!!!!


예삐와는 달리 첫째는 항상 그러하듯 묵묵히 제 몫의 잔소리와 체벌을 견딘다.


그런데 오늘은 잔뜩 찡그러진 얼굴로 큰딸이 울음을 참고 있다.

평소와 달리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표정이 내 눈에 보인다.


"뭐야, 넌! 울 거면 울고 말 거면 말지 그 얼굴은 뭐야! 보는 사람 불안하게!"


"....울고 싶은데...... 엄마가 울지 말라고.... 해서... 참는 거야!"


떨리는 딸의 목소리가 울음에 먹힌 듯 잘 들리지 않았다.


"뭐?"


내가 묻자 결국 굵은 눈물 한 방울이 주욱 타고 흘러버린 큰딸이 외쳤다.


"울고 싶은데 참는 거라고!"




"야, 오늘은 네가 억울한 거니까 울어도 돼! 그냥 울어."


딸들 앞에서 말은 편하게 했지만 큰딸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이 욱신! 하고 아팠다.


평소에 나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예삐에게 레퍼토리처럼 말해왔다.


"시끄러워 그만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누가 잘못했는데, 네가 왜 울어!"


그 말을 늘 같이 들어온 큰딸은 잘못을 한 자신을 알기에 울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동안 울지 않을 만큼 커서 또는 내게 반항하느라가 아니라 나 때문에 울지 못한 것이다.


울지 못하는 아이.

울지 못하게 만든 엄마.


널 울지 못하게 만든 내가 죄인이고 나쁜 엄마이다.





나는 어른이지만 잘 운다.

남편도 내게 그런다, 눈물이 많다고.


만난 지 백일 되었을 때 내 전화번호 못 외운다고 울었고

자격증 시험 떨어졌다고 울고

남편은 조크랍시고 장난친 건데 혼자 다큐로 받아 울고

시댁에서 서운한 거 말하면서 울고

친정엄마 아빠께 모진 소리 해놓고 뒤에 와서 울고

잠든 애들 다리 붙잡고 미안하다며 우는 나를 울보라 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울지 않을 줄 알았다는 누군가도 있지만 나는 애 때나 어른일 때나 진짜 잘 운다.

울지 않을 만큼 나는 다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것 같다.



변명을 좀 하자면 내가 울음을 시작하는 이유는 슬프거나 아프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다.

찰나처럼 잠시 지나고 말 감정에 흔들려 우는 법은 잘 없다.


대신 화가 나서 열이 받아서 분이 안 풀려서 치밀어 오른 내 감정이 눈물로 터져 울기 시작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다 보면 내 눈물에 감정이 센티해져

가끔은 슬프고 가여운 내 인생을 한탄해 가며 운다.

마치 내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펑펑 운다.

그리고 곧 그친다.

울기도 잘 울고 그치기도 잘 그쳐 혼자 두면 알아서 울고 끝낸다.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가벼워지고 차갑게 식은 머리를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직도 잘 운다.

마흔 살이 훨씬 넘었어도 나는 울음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직 초등학생인 내 딸이 맘 껏 울지도 못한다.

속상하다 아프다 화난다며 울고 매달려야 할 부모에게조차 기대지 못하고 참는다.

엄마가 무서워서 엄마가 화낼까 봐 엄마가 싫어하니까.


큰딸 말에 속이 상해 내가 더 울어버렸다.


내가 네 엄마고 네가 내 딸인데!

왜 내 앞에서 울지를 못해!!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네 모든 감정, 치부, 약점까지 다 꺼내놓고

비참하다 힘들다 지쳤다 아프다 하며 엉엉 울어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 난데.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와 쉬고 울 수 있는 세상 둘도 없는 존재가 바로 부모 품인데.

왜 나는 네게 그런 쉼터도 기둥도 되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만들었나.


둘째 예삐가 우는 건 지겨워 죽겠다.

큰딸은 컸다고 안 우는 줄 알았다. 그래서 대견해했다.

차마 그것이 울음을 참는 건 줄은 몰랐다.


울려놓고 울지 말라고 하는 나를 보며 내 속 깊은 딸이 느꼈을 감정을 헤아릴 수 없어 내가 더 눈물이 났다.


울지 못하는 딸, 울보가 된 엄마.


함께 울며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서로에게 기대 운 것만은 확실하다.


실컷 울고 난 큰딸에게 앞으로 엄마 앞에서 울어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내 앞에서 울 수 있는 건 울음소리마저 차분한 큰 딸 뿐이라고.





내 아이가 내게 좀 더 편히 기대 울 수 있도록 너른 엄마가 되고 싶다.


타인의 눈물을 달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나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탓해본다.

이렇게 내가 모자란 사람이다.

이렇게 내가 부족한 엄마이다.


내 자식인 너로 인해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이 채워질 것이다.

우리 함께 서로의 모자람을 눈물로 채워나가자.


딸아, 엄마가 너를 행복하고 기뻐서 울게 해 줄게!

그때까지 우리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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