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김에 키웁니다 29
29살의 봄날에 결혼을 하고 허니문 베이비로 서른살이 되자마자 엄마가 된 나는 현재 40대 초반이다.
신혼여행이 우리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라며 던져준 선물인 나의 큰 딸은
쉬지 않고 자라 어느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두살 터울의 둘째딸은 타고난 성정 덕에 한 해 조기 입학을 시켜 언니와 한 학년만 차이가 난다.
제법 자랐답시고 이제 딸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어딜 다니는 것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친구들과 의논해서 옷을 맞춰입는 멋도 부리고,
더이상 친인척들로부터 받는 돈을 엄마에게 주지 않으려 도망도 간다.
용돈이란 명목하게 제 멋대로 돈 쓰는 재미도 알게 된 완연한 사춘기 소녀들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계획 임신을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16주만에 셋째 아이를 유산한 후
나는 딸 둘만 잘 키우지, 내 인생에 더는 임신이 없을 거라 다짐을 했었다.
더이상의 아이를 만들 생각조차 전혀 없이 살 던 때, 갑자기 뜬금포로 생긴 아들도
키가 작아 그렇지 어느새 여섯살이 되었다.
2023년을 살고 있는 마흔 초반의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다둥이 엄마이다.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만해도 십수명의 조리원 동기들 중에 내가 가장 어린 나이였다.
산부인과에서 똑같이 핑크색 임산부 옷을 입고 모유수유를 하느라 젖을 꺼내놓고 앉은 그때까지만해도
서른 살에 초산이 빠른 거라곤 예상조차 못했었는데, 내가 직접 겪은 현실은 정말로 그러하였다.
초산 중에 가장 늦은 나이의 언니는 38살이었고,
마흔이 넘은 언니는 다행히도 터울이 좀 지는 셋째를 낳은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스물여섯살에 나를 낳았고,
우리 아빠는 스물 일곱살에 첫 딸을 만났다.
내가 자라는 동안 내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엄마 나이는 그래도 무난한 편인데,
우리 아빠는 나름 젊은 축에 들었었고 나는 그게 또 제법 좋았다.
시어머니는 서른 살에 넷째인 남편을 낳으셨고,
시아버지는 스물아홉살에 막내인 남편을 얻으셨다.
사부모님께서 스무살부터 시작된 임신과 출산은
첫째와 아홉살이나 터울지는넷째로 10년의 여정을 마무리 지으셨다.
한 세대 치고는 나와도 너무 차이가 난다.
만혼이 늘어 비출산도 증가추세라니 나와 또 한 세대 사이에 얼마나 격차가 벌어질지.
내 딸들을 보며 걱정도 되고 염려도 되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신혼이 없었다.
정말로 딱 한 번, 결혼식 하고 다음 날 신혼여행에서 시원하게 회포를 풀었을 뿐인데 단박에 임신이 되었다.
임신을 알게되자마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결정했기 때문에 한동안 주말부부로 지냈었다.
그리고 임신 8개월 끝 무렵 나는 남편이 있는 신혼집으로 완전히 살러 왔고,
첫째다보니 조심을 하느라 신혼다운 신혼도 즐기지 못했다.
2년 반이나 연애를 했음에도 우리는 신혼이 없었던 탓인지
아이들과 함께인 시간보다 더 둘만의 시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둘이서 저녁을 먹고나면 산책을 하기도 하고,
둘이서 식탁에 술판을 벌여놓고 술을 퍼마시며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연인이자 친구이자 동지이자 전우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아이 셋은 우리 부부를 그 무엇보다 단단히 결속시켜주는 [수단]이자 [방법]이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 이제 제 부모의 시시비비를 함께 가려준다.
내 편이 되었다가 남편의 편이 되었다가 잘도 노선을 바꾸긴 하지만.
40대 초반에 나와 비슷한 손발 크기를 가진 아이가 있음이 제법 든든하다.
곧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말에 동의를 할 수 있을만큼
훌쩍 자란 아이들의 존재가 기특하고 감사하다.
"엄마 잠깐 다녀올게.", "엄마 아빠 잠시 나갔다 올게."
어느새 저들도 컸다고 우리 부부의 외출을 더 반기는 아이들이다.
저들끼리의 생활과 세계가 있어서 이제 더는 엄마인 나나 아빠인 남편의 간섭과 지적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상관없이 나를 위한 일을 시작 할 수 있다.
여섯시간이 넘는 자격증 시험을 치기 위해 아홉시간동안 집을 비워야해도,
아이들은 알아서 척척척 밥을 챙겨먹고, 막내를 돌봐 주었다.
싸우고 울고 전쟁을 방불케하는 난리를 치더라도
그 시간동안 부모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을 알아서인지
평소보다 더 얌전하고 우애좋게 시간을 보내주었다.
밤이나 새벽에 내가 학점은행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행여나 내 집중에 방해되지 않도록 내가 있는 방의 문을 꼬옥 닫아준다.
그리고는 나와 최대한 멀어져서 저들끼리 소리를 죽여 논다.
소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졌다 싶으면 자진납세를 하듯 엄마 미안! 하고 달려와 얘기를 하고 또 조용히 논다.
아침마다 엄마 피곤하겠다며 커피도 서로 나서서 만들어주고,
밤이면 하루의 피로가 잔뜩 쩌든 내 몸을 잘근 잘근 밟아주며 마사지를 해주기도 한다.
부모의 손이 필요로 하는 것도 분명히 있을텐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만큼 야무진 손끝으로 척척척
저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서 해낸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딸들은 배가 고프면 수제비 반죽을 해서 끓여먹거나,
입이 심심하면 시판 소스를 부어 떡볶이를 해먹기도 한다.
라면도 종류별로 잘 끓여먹고, 편의점 특식이랍시고 나가서 사먹기도 잘 한다.
내가 사회복지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하루에 몰아서 치느라 집중을 해야했던 날.
띨들에게 막내까지 데리고 나가달라 부탁을 했다.
공짜는 없다며 나에게서 받은 용돈을 몇 닢 손에 쥔 딸들은
그 어떤 부모보다 더 신나고 즐겁게 막내를 데리고 놀아주었다.
간식 먹기 전 배부터 채워야 한다며 핫도그나 소세지를 먹인 후에야
가게에 데리고 가 간식을 사 먹이기도 하는 엄마 같은 누나들이었다.
실내외 놀이터를 돌며 힘을 쫘악 뺀 후
"엄마 끝났어?" 하고 돌아왔지만 도리도리 하는 나를 보며 방문을 또 닫아주었다.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아 셋이서 한참을 노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더니
여섯살인 동생을 씻기고 닦이고 로션을 발라 옷까지 제대로 입힌 후
평소엔 자지 않는 낮잠까지 재우며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내 딸이지만 초등학생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대견하다.
"엄마! 부산 와서 엄마친구들 만나니까 좋아?"
추석 연휴라고 부산에 내려와 요일별로 다른 친구들을 두 탕 세 탕 만나고 다니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물었다.
"그럼, 좋지! 니들도 친구들 만나면 좋잖아!"
나는 아는 사람도 친구도 참 많은 편인데
남편과 결혼을 한 이후로는 칩거에 가까우리만큼 대외활동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사는게 팍팍해서도 있고, 매번 얻어먹기 미안해서도 있고,
알량한 자존심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도 피하고 그랬다.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친구들과는
공통 관심사가 없어 자연히 멀어진 것도 있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긴 덕에 작정하고 이 무리 저 무리와 만날 약속을 하고
맛있는 걸 먹고 돌아다니며 신이난 나를 보고 첫째가 그랬다.
"엄마가 친구 만나서 좋아하는 모습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
그 누구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 딸들의 성정은 남편이나 나를 똑같이 닮아서다.
내 곁에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 많은지는 내 휴대전화에 쌓이는 기프티콘과
우리 집으로 배송되는 택배와 때마다 전해져오는 축하 인사들 덕에 우리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부산까지 와서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주야장천 나가는 것이 미안한데 그건 상관없다며
내 큰 딸이 나를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다.
역시 맏이는 맏이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을만큼 속이 깊고 마음이 넓고 크게 자란 아이가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하다.
40대 초반인 나이에 아이 셋 모두 알아서 먹고 알아서 싸고 알아서 잘 수 있을만큼 키워둬서 참 좋다.
나이가 더 들어 아이들이 다 자란 다음에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하고싶은 것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나의 루틴과 나의 일상 생활을 유지하고,
나의 꿈을 위해 시간을 할애 할 수 있는 것이 50대가 아닌 40대임에 감사하다.
서른 살에 아이를 낳은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한 때는 정말로 미치도록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힘들게 영근 열매인 만큼 그 맛은 넘치도록 달콤하다.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냐며 타박했던 스스로였지만
이제는 후회 따윈 하나도 되지 않는다.
낳아놓으니 이렇게 잘 자라주는 내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
서른 살에 아이를 낳았더니 10여년만에 이렇게 큰 기쁨과 만족으로
나의 인내와 희생과 노력을 보상받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내어준 내 젊은 청춘보다 더 큰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꿈꾸는 40대라서 나는 참 운이 좋고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만큼 키워놓은 아이들의 엄마가 지금 이 순간이라 너무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