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김에 키웁니다 30
우리 딸들의 하루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15분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15분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절제가 되지 않고 스스로 통제나 제어가 전혀 되지 않는 딸들에게 15분도 솔직히 길게 느껴진다.
자율에 맡겨 아이들을 풀어놓고 모든 걸 다 해주는 것 같이 보여도 나는 나름 악덕 엄마라
심지어 유투브나 틱톡 같은 애플리케이션은 구동 자체를 제한시켜 둬 아이들의 휴대전화로는 볼 수 없다.
우리 딸들의 핸드폰은 패밀리링크를 이용하여
자신의 폰에 애플리케이션을 하나 다운로드하려면 지정 보호자인 내게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외출을 하거나 필요시에는 내게 추가 시간을 받아서 사용한다.
퍼핀 카드에 돈이 있는 날이면 10분당 500원으로 휴대전화 이용시간을 내게 사기도 한다.
돈을 써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한 휴대전화 사용시간이다보니
아이들은 보통 카톡이나 문자 전화 등을 하기보다는 게임 같은 다른 앱을 사용하는데 집중한다.
15분의 사용시간이 소진되어도 연락처에 저장된 번호로는 전화를 걸 수 있기 때문에
딸들은 다른 사람과 연락할 때에는 문자보다 전화를 주로 이용한다.
카카오톡은 수십 수백개가 쌓여있어도 잘 읽지 않아서
딸들의 친구들은 용건이 있으면 이제 으레히 전화를 먼저 걸어온다.
우리집 딸들은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하교 후 집에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보다는 TV를 상대적으로 오래 본다.
10여년을 쓴 내 신혼 가전인 티브이를 아들놈이 어렸을 적에 장난감으로 내리찍어 선이 생겼다.
하필이면 압류 딱지 붙고 배우자 우선매수까지 한 후라 정말 돈이 아까워서 화가 끝까지 났었다.
귀한 아들놈은 때리지 못하고 티브이는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고 줄이 생긴 그대로 몇 달을 봤다.
그러다 이사가 정해지고, 선이 생긴 그 티브이를 시댁의 강원도 시골 집으로 보냈다.
시아버님은 낡고 작은 티비를 단박에 버리시고 줄이 두어개 생긴 45인치 티브이를 주말마다 잘 사용하고 계신다.
노래방 기계랑도 연결되어 있기에, 가사가 큼직하니 잘 보인다고 특히 좋아하신다.
그리고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리 집은 티브이를 새로 샀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티브이를 거의 시청하지 않기 때문에 티브이 구입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찍었던 과거 때문인지 남편은 티비 없이는 못산다며 고집을 부렸다.
사는 김에 제대로 된 걸 사라며 꽤 비싼 스마트 티브이 85인치를 구입했고
아트월에 티비가 걸린 그 날부터 남편과 아이들의 전유물이 하나 생겼다.
일단 아이들이 우리집 티브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남편의 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투브 프리미엄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다.
당연히 통신사의 IPTV도 이용 중이지만, 브라봉 덕에 넷플릭스도 디즈니도 모두 연결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내내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티브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아니면 잘 볼 게 없는데,
우리집에 사는 나와 성씨가 다른 넷은
어쩜 저렇게 재밌는 걸 골라서 저렇게 오래 볼 수 있나 싶을만큼 티브이를 좋아한다.
무분별하게 나오는 유투브 시청이 사실 좀 많이 걱정이긴 하지만,
대게는 내가 수업 중인 거실에서 소리를 작게 해 두고 보는 편이라
유해한 것은 딸들이 나름 알아서 가려가면서 보고있어 다행이다.
휴대 전화를 몇 시간 사용하는 것보다 화면이 큰 티브이를 보는 것이
아이들의 눈 건강에는 더 낫다는 생각을 해 하교 후 아이들의 티비 시청을 묵인하고 있다.
당연히 티브이든 휴대전화든 무어라도 전혀 안보여주고 싶은 것이 엄마마음이지만,
현실은 나의 이상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래서 나는 가끔 수가 틀리면 리모콘을 숨기는 수고를 해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 마다 리모컨 호출 기능을 이용하여 아이들은 귀신같이 찾아낸다.
화가 난 얼굴로 리모컨을 뺏거나 가져가버리면 딸들은 그제서야 다른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요즘의 딸들은 다이어리 꾸미기에 빠져 스티커를 사 모으고, 스티커를 쳐바르는 재미를 즐기도 있다.
이렇게 귀하디 귀한 15분을 사진 찍는데 쓰고 큰 아이가 사진을 보내왔다.
현장체험학습(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구름 사이로 비친 해가 너무 너무 이쁘다며 사진을 찍었단다.
눈으로 보는 만큼 사진에는 예쁘게 다 담기지 않았지만,
꼭 엄마에게 이 예쁜 풍경을 보여 주고 싶다고 하며 전송해왔다.
막내 어린이 집에 등하원만 아니라면
일주일 내내 대문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나이기에
큰 딸은 집 밖의 풍경을 이렇게 가끔 보내준다.
석양이나, 달이나, 구름이나, 무지개, 철새 같이 제가 보고 예쁜 것들을.
좋은 것을 보면 함께 보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은 그 마음.
고맙게도 사랑이지 싶다.
나는 사랑받는 엄마이다.
딸의 사진 전송으로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음만큼 애정표현을 하지 못하는 무덤덤한 엄마이고,
늘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엄마에게 할애해
풍경 사진을 찍고 문자까지 보낸 후 전화까지 해주었다.
이런데는 감성이 메마른 엄마라 눈물이 핑 돌진 않았지만,
딸의 그 마음이 너무나도 잘 느껴져 가슴은 벅차올랐다.
"다치지 말고 조심히 잘 다녀와."
하는 내 말에 수화기 너머 딸은
-응, 엄마. 잘 갔다 올게. 엄마 사랑해!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주 의미있는 휴대 전화 사용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포상으로 친구들과 게임을 함께 하라고 보너스 시간을 주었다.
그걸 알리자 큰 딸은 곧바로 "엄마 고마워" 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고맙다는 말도 어여쁘다.
이런 식으로만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면 매일 매일 매번 나는 행복할 것 같다.
딸의 의미있는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자랑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