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김에 키웁니다 31
얼마 전 시아버지의 생신으로 남편의 4남매가 모두 모였다.
딸 둘 아들 둘을 낳아 기르셨고, 그 자식들이 낳은 손주만해도 10명이라
시부모님의 생신날은 직계 가족이 다 모이기만해도 정말 잔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러나 어느새 훌쩍 자라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조카들이 대부분 빠져버리니
올해 아버님의 생신에 모인 인원이 꽤 간소하다.
그래서일까,
밉네 곱네 싫네 하며 연애와 결혼까지 15년 이상을 봐온 시부모님의 연세가 확 체감이 된다.
"나한테 미루지 말고 당신이 부모님께 전화 좀 자주 드리고 자주 찾아뵈어.
나 못가도 애들 데리고 한번식 다녀오기라도 하고."
연애에도 도도하리만큼 시크한 남자가 제 부모를 살뜰히 챙길리 만무하다.
생신 기념으로 식사를 마치고 가족사진까지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말해봤지만 그는 대답도 않는다.
보통 경상도에서 대답이 없으면 긍정의 뜻인데,
위쪽은 부정의 뜻이란 걸 나는 뼈아픈 기억을 통해 배웠다.
(이 썰은 나중에 풀어보겠음.)
"돌아가시고 후회하지 말고. 제 부모한테 할 효도 남한테 미루지 말고."
잔소리를 계속 해대도 그는 운전에 집중하는 척 대답을 않는다.
"야, 늬들 방학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좀 지내."
곧 하던 일을 은퇴하실 예정이라 당분간 많이 헛헛하고 적적하실거라고 큰시누가 귀띔을 해주셨다.
80에 가까운 나이까지 일을 하시며 당신네들의 생계를 여지껏 오롯이 챙겨오신 것도 큰 시누이 덕이다.
나는 잘 살고 친정 부모님을 잘 모셔주는 큰 시누이 덕에
시어머님의 한량 아들을 데리고 여지껏 넘어지고 자빠져가며 내 걱정만 하며 살 수 있었다.
맏이로서 큰시누의 고충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모른체 해왔다.
조카들처럼 훌쩍 커버리고나면 제 사는데 바빠 곁을 내어주지 않을테니
시부모님께 아이들을 자주 보내 부산스럽게 만들더라도 외롭게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 많으셔서 살아 계신 동안 니들이 효도해야지."
나도 못하는 효도를 조손인 내 자식들에게 전가하는 내 말에 전후 사정을 모르는 애들이 물었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 죽어?"
"죽는게 아니고 돌아가신다고 해야지."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냐고?"
이 와중에도 자매 둘은 말꼬리를 잡고 티격태격하는 변함없는 사이이다.
"지금 당장 돌아가시는게 아니고! 연세가 많으시니까 너네가 어릴 적에 좀 더 효도하라고.
언니 오빠들은 이젠 다 커서 할머니 할아버지 자주 만나러 오지도 못하잖아."
"아아....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딸들은 나보다 잔소리를 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 밤.
"엄마. 할머니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이가 많으면 할머니가 되는 거야?"
내 옆자리에 찰싹 달라붙어 잠을 청하는 여섯살 된 막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할머니? 막내 니가 장가가서 아기 낳으면 엄마가 막내의 아기한테 할머니가 되는 거지."
"내가 아기 낳으면 할머니가 돼?"
자뭇 진지한 얼굴로 이젠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응. 부산할머니는 엄마한테 엄마인데 너네한텐 할머니지.
친할머니도 아빠한텐 엄마인데 너네한텐 할머니가 되잖아."
족보 공부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제법 진지한 아들의 얼굴에 성심껏 대답을 해주었다.
"그럼 나 아기 안낳을래." 하며 아들이 내게 안긴다.
"엥?"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가.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가 없지만, 이녀석만큼 나의 온 우주가 바란 고추가 없었다.
내 주위 모두가 이번에는!!! 하고 바라고 바라던 귀하디 귀한 아들이다!!!!
비록 계획임신은 아니었지만 꼭 아들이기를 바라고 바랐었다.
얼마나 그 바람이 강하고 귀했냐면 천하게 키워야 잘 살고 오래산다해서
태명도 개똥이라고 지어 부를만큼 간절했던 아들이다.
"아빠 닮았네." 하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소리에 초음파 보느라 배를 깐 채로 오열을 할 만큼.
또, 우리 아들은 16주만에 뱃속 아이를 유산으로 보내고 죄책감에 살던 나를
겨우 제 정신으로 살게 한 선물 같은 아이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에게는 어떠한가.
4남매 중 아들이 둘이라도 그 아들들은 딸만 둘씩 낳는 바람에 대가 똑 하고 끊겼다.
아들이란 것이 집안의 컴플렉스이자 결핍된 참에 아주 느즈막히 태어난 귀한 장손이자 아들이다.
이 놈이 혹시라도 대를 잇지 않을까 싶어 남편은 진지하게 넷째를 고민했었다.
형이 아닌 동생인 본인이 아들을 낳아 대를 이었으니 아들 대에도 혹시 그럴지 모른다며.
그런 귀하디 귀한 내 아들이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딸이고 아들이고 상관없이 아기를 낳지 않겠다니 우리 부부에겐 청천벽력이다.
대단할 것도 없는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보통 평범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여섯살부터 한 것이 충격이다.
"왜에!!!!!!!!!!!!!!!!!!!! 왜 아기를 안낳아!"
안겨있는 아들을 향한 내 목소리가 올라갔고, 덩달아 남편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내가 아기 낳아서 엄마가 할머니 되면 엄마 죽잖아. 엄마 죽지마!!!으앙!"
그 쪼그만한 머리로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진지했던 아들은 결국 울어버렸다.
"엥?"
아들의 뜬금포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엄마 죽지마. 엄마 없으면 나는 못살아. 할머니 되면 죽는 거라며? 엄마 할머니 되지 마."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내 가슴이 아플지경이다.
"아들!!! 니가 아기를 낳든 안낳든 나이 들고 때 되면 누구나 다 죽는데 뭘 안죽어."
나는 불사신이 아니다.
불사신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인간이고 싶지 않다.
강원도 바다를 내려다보는 울산바위나 되고 싶다.
운이 좋아 내가 아무리 장수를 한다고 해도 언젠가 한번은 하게 될 이별이다.
아파 죽은 사람도 사고로 죽은 사람도 많은 세상에
여지껏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아프지 않고 무탈히 지내온 게 새삼 감사하다.
"아들. 엄마 봐.
엄마 나중에 나중에 나이 많이 많이 들어서 늙어서 죽을게."
사실 나는 75세 정도까지만 딱 살고 싶다.
더 늙어서 추해지기도 싫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도 싫다.
내가 정한 이 데드라인을 상기하고 복기하며 나는 매일을 열심히 살고 싶다.
그 데드라인은 더더욱 내게 어떻게해서든 75세까지는 살아야 할 또다른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울지마. 뚝.
엄마도 너처럼 아기 였던 적 있고, 할머니도 너나 누나들처럼 아이였던 적이 있어.
누구나 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으면 늙는 거야. 그건 나쁜 게 아니야.
죽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안죽을 수는 없어."
여섯살 아들은 아직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그래도 나의 진심을 전해본다.
이제는 조금 남자의 골격이 되었다 싶은 작은 몸을 꽈악 끌어안은 채.
"엄마 죽지 말라고 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엄마는 막내가 장가가서 아기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거 보고싶어.
행복한 할머니로 만들어줘. 응?"
"그래도 죽지 마."
"아! 살 거라니까 왜 자꾸 날 죽여!!! 안 죽는다고, 당장은.
나중에 니 마누라 생기고 니 새끼 낳아서도 나 없음 못산다 하는지 내가 두고 볼거야."
우스개 소리로 마무리를 하자 남편은 말 없이 벌렁 드러누웠다.
언젠가 그도 그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의 어머니도 지금의 내가 내 아들에게 갖는 마음으로 그를 키웠을테다.
그가 어머니께 전화라도 한 통 더 드리는 효도라도 제발 해주길.
그리고 나의 아들이 아빠와는 좀 다르게 자라주길 바라본다.
"아들. 장가는 꼭 가서 애기도 꼭 낳아라."
"아들 셋 낳아."
말없던 남편이 툭 하고 한 마디 던진다.
"지도 못한 걸 왜 남의 아들한테 시켜. 웃기네."
"아빠가 키워줄게. 강원도 가서 감자 먹이며 키워줄테니까 아들 셋 낳아."
"뭔 헛소리. 당신이 강원도에서 감자 키우며 살 수나 있겠어?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하고 있어. 그냥 자라. 헛소리 하지 말고."
남편과 내가 투닥거리는 동안 아들은 근심 걱정을 덜었는지 내게 안겨 잠이 들었다.
아들놈아.
장가는 가라. 아이도 낳아라.
엄마 아빠는 네가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