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Oct 26. 2023

태명은 공주지만 태교는 못했습니다.

낳은 김에 키웁니다 32

나는 이름을 개명했는데, 우리 큰딸은 태명을 개명했다. 


내 비록 신혼여행을 갔다가 무계획적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지만, 

언제고 아들 셋을 낳겠노라 하던 로망은 갖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임신을 알게 되자마자 내 바람과 욕망과 기대를 그대로 담아 

내 복중 태아에게 '장군이' 라는 당찬 태명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임신 1n주차에 딸인 걸 알았다.

단 한번도 내가 딸을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복중 태아가 딸이란 소리에 잃은 것도 없이 느낀 상실감은 너무나도 컸다.

산부인과 주차타워에서 차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벽을 붙잡고 펑펑 우는 나를 보고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귀한 우리 딸에게 왜 그러냐? 앞으로 장군이 아니고 공주라 불러.'

그렇게 우리 큰딸의 태명은 공주로 개명되었다.






"공주~ 공주야! 공주야~ 우리 공주. 공주!"


가뜩이나 주위에 기혼자나 임산부가 곁에 없어 물어볼 데도 배울 곳도 없었는데

임신 8개월까지 주말부부로 지내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계속 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뱃속에 있는 딸에게 제대로 된 태교 한번 해주지 못했다.


임산부 요가 임산부 마사지 같은 건 꿈도 못꿀 사치였다.


공장이란 그 치열한 소사회의 특성 상, 

업무상 에로사항이 많은 필드에서 터져나오는 육두문자는 그냥 일상어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내가 비록 임산부였어도 공장에 내려가는 순간에는 언어순화란 배려따윈 기대할 수 없었다.


"애 들을라!" 하는 이모님들의 만류에도 

현장에만 갔다하면 차장님과 과장님 대리님들과 나는 말로 치고 받고 싸웠다.


그 때만해도 절대 복종 갑님에게도 꽤나 똘끼 있게 들이 받아대는 용자로 유명했던 나였기에

뱃속에 애를 품고 있어 1.5인분이라는 핑계로 나 역시 1.5배로 응수했다.


"아우, 용대리. 저 독한 가스나! 저거 좀 현장 못내려오게 하지!

저거만 왔다가면 현장 다 뒤집어놓고!!!!!"


영업뿐만 아니라 품질과 개발까지 참여를 하고 있던 탓에

나는 뭐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아서 생산부서나 품질부서는 특히 탐탁치 않아했다.


선박과 컨테이너 일정에 맞추어야하는 내게 

안된다 못한다 버틴다는 현장의 소리는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아, 진짜 몸도 무거운데. 현장 안내려오게 잘 좀 하지.

그래서 씨바. 왜 안된다는 건데요. 왜 이번엔 뭐 땜에!"


볼롱한 배를 내밀고 쓰다듬고 두드려가며 나도 육두문자를 같이 날려댔다.


"해달라고요! 일단 맞춰달라니까요! 아 진짜!

배 놓쳐서 생긴 손해는 누가 다 부담할건데! 씨발 이게 내 회사야? 

지연금 물어내고 손해배상 하다 회사 다 말아먹겠네.

그러면 우리  다 같이 손가락 빨고 앉음 되겠네. 그럴래요? 그럴까요?"


"저거 저거 또 협박한다. 나쁜 가스나. 고만 지랄해라.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해보기도 전부터 안된다는데! 왜 벌써 안된다고 하는 건데!

출고 일정 준지가 언젠데 이 때까지 뭐하다가 이제와서 안된다는데! 

빨리 기계 고치라고요! 

과장님 오늘 밤샘합시다! 부장님도 야근하세요! 팩킹하고 박싱하고 내가 다 할 테니까!"


동네 미친개가 빙의되어 내가 짖어대는 날이면 

씨팔조팔하면서도 생산부 품질부 모두가 동원되어 기어이 일정을 맞춰냈다.


팔렛으로 나가는 수출품 출고날에 나는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진짜 자존심상 지게차 운전 빼고는 다 했다.

수량이 적은 LCL화물을 보내고 급하게 연락이 와 리팩한다고 CFS에 갔던 날도 

부두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탭핑을 더 잘친다고 칭송 받을 정도로 나는 업무에 매 순간 진심이었다.

일에 대한 나의 책임감과 열정은 임신과는 무관했다.


"아우 씨!!!!! 공주 귀 좀 닫아봐! 엄마가 욕 좀 해야겠으니까!"


내가 배로 손바닥을 갖다대면 기어이 과장님들은 됐다면서 해주면 될거 아니냐며 

라인의 생산 공정을 바꿔주는 수고까지 마다 않고 수량을 맞추어 주셨다.

몇 톤이나 되는 금형을 바꾸는 일이라 쉽지만은 않았을테지만, 

그 때는 여유롭게 잡은 선박과 컨테이너 입고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욕을 들으면 욕으로 맞받아쳤기에 나 역시 업무 스트레스를 쌓지 않고 일 할 수 있었다.


태교는 못해도 일을 하느라 "욕"이란 조기 교육은 단단히 시켜둔 탓인지,

아니면 공주로 지었던 태명 덕인지 나의 큰 딸은 1n세임에도 욕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도 단 하나 그 환경에서도 내가 임산부로 잘 했었다고 자부하는 것은, 

종종거리다 뒤뚱거려가며 사무실과 공장을 드나들면서

쉼없이 끊임없이 태명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건넨 것이다.


"아....! 공주야 출동이다! 현장 가야된다! 자, 가 보자!"


"공주야, 엄마만큼 너도 짜증났지? 에이구 일하는 엄마 뱃속에 있느라 니가 고생이 많다. 좀만 더 힘내!"


"공주야, 아까 저 못된 과장 아저씨랑 엄마랑 싸우는 거 구경하니까 재밌었지? 엄마 잘 싸우지? 엄마가 이겼잖아. 과장아저씨가 해주신다잖아. 히히"


"어라, 오늘은 우리 공주님 자나? 엄마 이렇게 시끄럽게 했는데도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이구 우리 공주 신났네! 꿀렁꿀렁 신났네, 신났어!"


"공주!!! 좁은데서 뻥뻥 차네! 축구선수가 되려나~~ 에이구. 

좁은데서 노느라 너도 스트레스 받는데, 팍팍 차라 차!"


"아이코 공주야 적당히 좀 놀아. 아직 나올 때도 안됐는데 벌써 엄마 배 찢어지겠다.!"


"오늘 하루도 우리 공주 수고했어! 자, 이제 집에까지 무사히 가자!!"


사무실과 현장 사이의 그 길에서 나는 매번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양심을 긁어모아 태교를 못해줘 미안한 마음에 

퇴근할 땐 뽀로로 음악도 틀고 동요를 틀어놓으며 못다한 태교를 하는 척 했었다.




 


시간이 흘러 출산 예정일이 되었지만 아직은 엄마 뱃속이 좋은지

방을 빼기 싫은 공주는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나오지 않고 버텼다.


결국 유도분만으로 27시간 반 동안 촉진제를 맞고 

끝내 맞았던 무통 주사를 떼고서야 아주 힘들게 아이가 태어났다.


초산이라 힘을 잘 못준 탓인지 아니면 내 골반이 크지 않아서인지,

예측했던 것보다 공주는 작은 몸이었건만 결국 베큠의 도움까지 받아 출산을 했다. 

변비에서 해방된 듯한 시원함을 느낌과 동시에 내 큰딸은 세상의 빛을 보았다.


르봐이예 분만을 했기에 탯줄을 자르기 전 내 배 위로 아이가 곧장 올라왔다.

남편이 초록 가운을 두르고 장갑을 끼고 분만실 안으로 들어오고 우리 세 식구는 첫 조우를 했다.


아래에서는 후처치가 계속되고 있었고 남편은 얼떨떨하며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목욕물도 끼얹고 했다.

신생아 실로 가기 전 속싸개에 싸인 아이가 다시 내 배위로 올라왔다.

아이 얼굴을 다시금 확인한 나는 심각해져서 남편의 얼굴과 아이의 얼굴을 계속해서 번갈아보았다.


"얘 누구 닮은 거고?"


태명은 예쁘고 귀하다고 공주라고 바꾸어 짓기까지 했건만. 

내 뱃속에서 나온 것은 삼각뿔 모양의 머리통을 가진 빨간 못난이 고구마였다.


상황에 따라 바꿔 쓸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해야하는 영업일을 하던 나였다. 

하지만 을이라도 불합리하다싶으면 갑에게 들이받아버리는 뚝심으로 일을 했다.

그렇게 불필요할 정도로 양심이 발라도 너무 발랐던 나머지,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내 딸에게 입 바른 소리 한번을 하지 못했다.


빨간 고구마로 태어난 내 못난이 딸을 보며 

뱃속에 있을 때 처럼 "공주야!" 하고 태명을 풀네임으로 부르지 못했다.


가뜩이나 작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작은 입만 오물대는 딸은 못나도 참 못났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있는 쌍커풀도 없고, 코는 하필이면 들창코인 날 꼭 닮았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이쁜 구석이라곤 하나 없어 보이는 못생긴 아이를

내 딸이라는 이유로 차마 공주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렇게나 바른 양심을 가진 엄마에게 

이름이 아직 없어 속싸개에도 '000님 아기'로 되어있는 

나의 빨간고구마를 부를 말이 없다는 건 정말 코 앞에 닥친 시급하고도 큰 문제였다.


"하아.............. 공주......... 공주........ 아... 진짜 이건 아닌데."


태어난 아이를 신생아실에 맡겨두고 나는 진짜 진지하게 그 고민을 했다.

그러나 별 방법이 없었다.

다시금 장군이라 부를 수도 없었고, 딸의 출생카드엔 이미 공주라고 적혀졌다.


"지난달엔 왕자가 있었는데 이번 달엔 공주가 있네요."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의 우스개 소리도 내 귀엔 고깝게 들렸다.


'나도 안다고요. 공주하고 거리가 먼 얼굴이란 거.'


그렇게 안 예쁜 애의 얼굴과 가난한 삶의 배경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공주란 태명은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 내 큰딸의 아명이 되어 불리우게 되었다.


"그래. 꼭 다 불러야되나. 한 글자만 부르면 되지 뭐. 쭈야! 마이 쭈! 어감도 좋네."


그래도 마지막까지 양심을 지키고 싶었던지 나는 묘안을 생각해내었다. 

차마 공주라고 단 두 글자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풀네임으로는 부르지는 못하고 

적당히 줄여서 공주가 아닌 '쭈 또는 마이쭈'라 불렀다.






지금도 나는 기분좋게 첫째를 깨우는 날이거나 

둘이 붙어 대화를 할 때면 쭈! 마이쭈! 하면서 큰딸을 부른다.


생각보다 빨리 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긴 큰딸은 

언제나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지라 내가 태명을 불러주면 배시시 웃으며 좋아한다.


삼각김밥 모양의 빨간 고구마 같이 못생겼던 녀석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훨씬 더 지나

이젠 그 어떤 꽃보다 하얗고 뽀얗고 탐스러운 소녀가 되었다.


그동안 공주처럼 잘, 키웠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나름 노력해서 내 딸 공주를 키워냈다.


낼 모레면 중학교에 가는 내 딸 마이쭈는, 

이제 키는 나만큼 컸고, 발은 나보다 더 크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태명 얘기가 나왔거든."


"헉! 너 니 태명 솔직히 얘기했어?"


"어! 했지!"


"헛! 진짜? 친구들이 안놀렸어?"


"아, 애들이 놀리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쳤지!

우리 엄마가 아들 바라서 장군이라고 지었던 태명을

딸이라고 우니까 아빠가 공주로 바꿔줬다고. 

그래서 애들 관심이 공주보다 장군이한테 쏠려서 별로 비웃거나 놀리진 않았어."


"태명을 그대로 둘 걸 그랬나, 우리 쭈 태명 때문에 친구들한테 놀림받을 뻔했네!!!! 휴우~"


딸의 말에 내가 다 안도가 되었다.


"치. 그래도 공주가 어때서. 나랑 그렇게 안어울려?"


"양심 챙기자. 자, 모르겠으면 가서 거울 보시고요."


"엄마 나빠."


"엄만 솔직한 거라고 하자. 자기 객관화는 잘 되어있어야지."


눈을 흘기고 가버린 큰 딸은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정말 공주와 거리가 멀다.


태명과는 달리 큰딸은 '안나와 엘사'가 나오는 공주 만화보다는 

파워레인져 다이노포스와 헬로카봇을 더 좋아했다.

또 예쁜 옷으로 바꿔 입고 변신하는 시크릿 주주나 소피루비보다 

아이쿠처럼 말썽쟁이에 열광하고 두다다쿵이 떠나는 모험을 좋아했다.


지금도 치마보다는 트레이닝복을 더 즐겨입는다.

심지어 좋아하는 색상도 노랑이나 빨강 핑크가 아닌 파랑과 초록이다.

고학년이 되니 이젠 무채색이 좋다며 검은 것만 찾고 있다.


개명한 태명과는 완벽히 반대되는 성향이지만 첫 태명만큼 씩씩한 맛이 있다.

아마도 태명을 아무리 공주라 불렀어도 태교를 잘 해주지 못한 내 탓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공주, 마이 쭈~. 

우리 공주 큰딸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태명에 비하면 많이 못생겼어도 

언젠가 내 딸을 진짜 공주처럼 귀히 여겨줄 남자를 만나기 바란다.

동생들과 나누어가진 엄빠의 사랑으로 비워진 마음의 곳간을 넉넉히 채워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나의 바람을 담아 오늘 큰 딸을 그 어떤 때보다 사랑스럽게 온전한 태명으로 불러줘야겠다.

그러면 아마 나의 못난이 고구마는 그 어떤 예쁜 꽃보다 더 어여쁘게 날보며 웃어줄테다.


"공주야! 엄마가 비록 태교는 잘 못해줬지만 그래도 엄청 많이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놈이 애를 안낳겠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