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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Oct 30. 2023

딸을 위한 엄마의 초경 이야기

낳은김에 키웁니다 33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그러하듯 생리, 월경, 피, 혈 등의 단어가 나옵니다.
이런 단어가 보기 거북하신 분은 미리 뒤로 가기를 살짝 눌러주세요.


지난 2년 6개월 동안 해온 큰딸의 성조숙증 치료를 끝내기로 한 날이었다.


"이제 너 생리 터질 건데 어쩌냐"는 나의 우려 섞인 걱정의 말에 

"아악! 나 생리하기 싫어!!!!! 생리 안할 거야!" 라고 딸이 격하게 대꾸를 했다.


그런 우리 모녀를 지켜보고 있던 딸의 담당의이자 이화여대 소아내분비학과 교수님인 김혜순 선생님께서 단박에 나를 나무라셨다.


"아휴!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돼! 생리는 당연한 거지 왜 부정적으로 말을 해!"

"엄마부터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면 안되는 거야! 애가 생리 시작도 전부터 어떻게 받아들이겠어."


아차차차 싶었다.

선생님 말씀이 백 번 천 번 맞다! 맞는 말씀이시다!

하지만 내 딸이 아직은 생리를 하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의 소리가 그냥 흘러나온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내 마음은 아직 늦추고 싶다, 정말.


"네, 선생님.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큰 애는 치료가 끝났지만, 저는 둘째 셋째 진료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혼이 났으니 후다닥 도망치듯 인사를 하고 서둘러 진료실을 나왔다.


길었던 주사 치료를 끝내니 시원섭섭하다.

그리고 이런 내 모자란 생각과 못난 마음이 

나의 딸이 제 속도대로 자라지 못하게 질척거리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축복 속에서 소녀이자 여자가 되었으면서 말이다.





나는 자식에게만큼은 다심한 부모님 덕에 

아이에서 소녀가 되는 과도기를 매우 행복하게 맞이했다.


비록 남들보다 키는 좀 많이 작아도 나는 2차 성징에서는 조금 올된 아이였다.

작은 체구에도 국민학교 6학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래지어를 하기 시작했다.


"딸래미 첫 속옷은 아빠가 사주는 거라더라."


몽우리가 잡힌 내 가슴 사정을 엄마로 부터 전해 듣고 

아빠는 그 길로 나가 예쁜 주니어브라를 내게 선물해주셨다.

(우리 아빠는 나뿐만 아니라 해마다 엄마 생신에 맞춰 속옷을 선물해주시는 로맨티시스트다.)


일찍부터 속옷을 착용해야 가슴이 예쁘게 자리 잡는다며 

엄마 아빠는 모양도 색깔도 다른 주니어 브라세트를 여러벌 사주셨다.

이제부터 팬티도 브래지어와 짝을 맞춰 입으라고도 하셨다.


그런 배려와 사랑, 관심을 일찍부터 받았던 덕일까, 

2차 성장이 끝난 나는 같은 여자들도 엄지를 촥! 치켜들만큼 예쁜 사발 가슴을 갖게 되었다.

우리 남편이 내 가슴보고 결혼 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쁜 75C 풀컵의 자연산 사발가슴!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생리를 한다는 애는 학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5학년 때는 단 한번도 듣도보도 못했고, 6학년이 되어서도

옷에 혈이 묻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한 알 수 없었다.

여자 아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부끄럽다고 숨긴 것도 있었고

내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친구라도 타인의 2차 성징 여부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나 때의 아이들은 2차 성징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그러나 역시 작아도 올되었던 나는 생리마저도 빨랐다.

여름방학에 걸스카우트 수련회를 가서 초경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도 학교에서 비디오를 보는 정도의 성교육은 했었지만, 

당시의 그 누구도 내게 생리대를 사용하는 방법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았었다.

엄마는 면생리대를 사용했기 때문에 월경을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그것은 온전히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했지, 내게 닥칠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6학년이라해도 반에서 키 순서로 1,2번이었을 정도로 나는 매우 작은 아이였다. 

우리 엄마 눈에도 내가 가슴에 몽우리는 갓 생기기 시작했어도 

하도 쪼그만하고 선머슼 같으니 아직은  생리와 거리가 멀게 보였을테다.

그래서 생리대 사용법 같은 것을  일러주는 건 생각도 못하셨을 것이다.


방방마다 다니시며 모두들 집합 하라는 선생님들 소리에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큰 볼일은 자리를 가리는 편이다.

그런데 여지껏 참을 만하게 살살 아팠던 배가 갑자기 엄청 아파와 참을 수가 없었다.


죄송한데 너무 급해서 그런다, 화장실에 갔다 집합하겠다며 

아이들을 모으는 선생님께 급히 양해를 구하고 배를 붙잡고 텅 빈 숙소 안의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똥은 커녕 변기에 앉느라 내린 내 속옷에 검붉은 피가 나를 반겼다.


"와! 이게 머꼬?! 나오라는 똥은 안나오고 피가 나오노!" 

어린 나는 크게 당황했다.


전날 수영장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다 하필이면 밑에 서 있던 아주머니 허벅지와

내 사타구니가 강하게 충돌했는데, 아마 그거 때문이 피가 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피가 생리혈이라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냥 넘어져서 생긴 상처에 피가 나듯, 그때 충격을 받아서 배에서 피가 나는 줄 알았다.


"아이씨. 그 아줌마 때문에 이기 머꼬! 피도 나고 배도 아파 죽겠네!"


다행인지 방에는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합하러 가고 남은 이가 아무도 없었다.

급하게 옷을 올리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서랍장을 열었다.

수련회 기간동안 머물렀던 유스호스텔 객실 서랍장 마다 생리대가 구비되어 있어는데

첫날 아이들이 뜯어보고 이게 뭐냐고, 이게 왜 필요하냐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가져와 팬티 위에 덧대었다, 

마치 생리대를 상처 위에 붙이는 반창고 처럼 여기며.





집으로 돌아오고  화장실에서 뒷처리가 미숙했던 나로 인해 

엄마와 아빠가 나의 초경을 알게 되셨다.


"아이고, 이게 뭐시고! 니 일로 와봐봐"


금방 내가 나온 화장실 앞에서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여기 저기 왜 피가 묻어있냐 화를 내시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어린 마음에 내 몸에서 내가 나온 내 피라도 내가 닦기엔 역겨워 그냥 나와 뜨끔했다.


"니 생리 하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가 변기 근처에 묻은 피를 보며 물으셨다.

엄마 생리대가 어디있는지 몰라서 여지껏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했다. 

양이 많진 않았지만 생리대를 찬 채 용변을 보느라 옅지만 피가 군데 군데 묻어 있었다.


"이게 생리가? 내 어제 수영하다가 어떤 아줌마다리에 배 박아서 그래서 피 나는 줄 알았는데"


어린 나에게 엄마는 미소로 화답하며 말씀하셨다.


"니 몸은 괜찮나, 배는 안아프나? 피가 나면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다정하게 묻는 엄마의 목소리에 혹시 배에서 자꾸 피가 나면 죽는 거 아닌가 하며 겁을 먹었던 게 스르르 풀렸다.

초경이란 엄마 말에 안심이 되어 엉엉 울면서 나 지금 배가 너무 아파 죽겠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우리 공주가 진짜 여자가 됐네!" 


그 말을 하시곤 엄마는 아빠께 알리셨다.

그리고 언제 어디다 주문을 했는지 나의 첫 월경을 축하해주는 거라며 

백설기를  몇 박스나 맞춰 온 동네에 잔치하듯 나눠 주셨다.

백설기처럼 순백하고 순결하게 잘 자라란 축복과 함께 나는 생리대 사용법을 엄마로 부터 배웠다.


자칫 두렵고 무섭고 불안할 뻔 했던 첫 월경은 

이렇게 내 삶에서 기쁨으로 기억될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다.


어린 몸이지만 여자로서 더욱 조심하란 엄마 아빠의 당부가 잔소리로 느껴지지 않았고,

아파서 몸이 배배 꼬이는 생리통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만큼 

나에게 월경은 새로운 나로 태어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시작은 그렇게 예뻤지만 한동안 드문 드문 하던 월경은 무지막지한 "생리통"의 세계로 나를 끌고갔다.

2,3일은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할 만큼 나는 생리통이 심했다.

국민학교 시절엔 친구들도 생리를 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려가며 배를 붙들고 엎어져있었다.


한 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도끼다시 바닥의 차가운 교실에서 

감기와 생리통이 겹쳤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교실이 시끄럽도록 별난 내가 병든 닭새끼 마냥 쳐져있자 

나를 걱정하며 몰려온 친구들에게도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배가 너무 아파 눈물이 나 콧물까지 줄줄 흘러 도저히 부끄러워서 더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그 날.


친구가 혹시 우는 거냐며 내민 휴지에 코를 시원하게 팽 풀고 맥없이 억지로 웃어보인 날.

나는 정말로 생리라는 것이 싫어서 자궁을 들어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정말 그 날의 생리통은 유난히도 끔찍한 고통이었다.



중학교에가서는 여중이었기에 날짜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1.5L 페트병에 온수를 받아다 서로 돌아가며 아랫배 안에 끼고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때는 키가 작던 말던 내 나이에 생리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보다 키가 큰 친구가 아직 초경을 하지 않았다 하면

"아, 키만 컸지, 아직 아네! 아!! 좀 더 커서 온나!" 하고 놀릴 정도로

나의 월경은 더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쌤! 저 한시간만 양호실에 좀 갔다 올게요. 배가 너무 아파서요."


생리휴가도 있고, 월경결석도 가능한 요즘 시대지만, 그땐 배가 아파도 피를 흘리며 학교는 가야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얼굴이 허옇게 질릴 정도가 되면 담임 선생님들은 겨우 마지못한 허락을 해주셨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뜸도 뜨고 좌욕도 하고 훈증기도 하서 좌훈도 했다.

약을 먹는 것은 엄마가 워낙 싫어하니 '참아보라'고만 하셔 잘 먹지 못했다.

중학교때 친한 친구는 진통제에 내성이 생겨 약이 듣지 않아 

생리통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것도 봤다.

그래서 나는 양약을 싫어하는 엄마처럼 생리통때문에 먹는 진통제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대학 시절엔 순수하게 생리통 한 번 고쳐볼거라고 수지침도 배웠다.

손바닥에 뜸도 뜨고 침도 꽂고 사혈도 하고 별 별 짓을 다해봤다.

모든 방법들이 하는 동안의 단발적인 효과는 있었지만 완전한 해방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아이 셋을 낳고서야 내 생리통은 없어졌다.

생리통만 안해도 세상은 살 만하다. 

정말이다.


내가 27시간 반동안 100 고지를 찍으며 온몸이 달달달 떨리는 진통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수없이 겪어온 생리통으로 다져진 고통에 대한 내성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나는 약을 먹지도 못하고 쌩으로 앓던 생리통이 심해도 너무 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면 안되는 말인 걸 알면서도 마음의 소리가 나왔던 거였다.

내 눈엔 아직 어리기만 한 내 딸이 겪게 될 불편과 아픔이 겁이 났다.

내가 이미 겪어봐서 너무나도 잘 아는 그 고통을 혹시라도 물려받았을까 겁이 났다.

너무 잘 알아서 더 무서웠다.


딸 아이가 그랬다.

얼마전 친구가 생리통으로 조퇴를 했다고.

처음보는 친구의 아파하는 모습에 생리라는 것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솔직히 얼마나 아플지 겁이 난다고.


물론 생리를 하고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고, 아이를 가질 수 있고 등등등.

내가 딸의 나이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내 딸이지만.

생리가 두렵긴 나와 마찬가지란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말실수를 했던 걸 만회할 만큼 내 딸에게 [생리]라는 것에 대해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먼저 딸을 위해 예쁜 생리대 파우치를 준비해야겠다.

언제든 생리가 터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생리대 사용법도 가르쳐야겠다.


무엇보다 내가 부모님의 환영과 축복속에서 2차 성징을 아름답게 맞이했듯 

내 딸도 그렇게 만들어줘야겠다.


무섭고 두려운 건 맞지만, 유한한 시간과 네 몸에서 생긴 작은 우주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내 딸에게 알려줘야겠다.


딸이 둘이라 이벤트도 두 가지를 준비해야하지만,

내가 행복하게 2차 성징을 축복으로 여기며 받아들였던 것처럼.

내 딸들도 나만큼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도록 해주고 싶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아직은 내 딸들이 월경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늦게 시작하길 바라고 바라본다.

나에게는 초경 전 아빠와 유럽여행이라는 딸을 위한 버킷리스트가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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