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Nov 02. 2023

당신 아이의 화는 안녕하십니까?

낳은 김에 키웁니다 34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꼭지가 돌릴만큼 화가 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완전히 다른 성향의 남편과 별난 아이 셋과 살다보니 나는 자주 화가 나는 편이다.



아무리 내가 인내심이 없고 원래 화가 많은 사람이라지만 

아이들은 정말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방법으로 나를 화나게 한다.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줬음에도 우유잔을 쏟고, 컵을 깨트린다.

뜨거우니 저리 가라고 해도 곁에서 얼쩡거리다 데인다.

물감을 사용할 땐 꼭 아래에 무언갈 깔아라 해도 물감놀이가 끝난책상은 물감으로 얼룩이 가득이다.

오늘은 집에 일찍 와라 신신 당부를 해도 전화 한통 없이 아침에 나간 녀석이 해가 져야  들어온다.


그러나 이런 보통 평범하다못해 사소한 내 아이들의 부주의함과 무심함은 

내 화를 부추기는 트리거가 1도 되지 못한다.






내가 가장 자주 화를 내고 인내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편에게는 돈, 아이들에게는 동기간의 싸움이다.


돈이야 원래 없고, 열심히 벌어봐야 통장이 텅장이 되는 마법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화는 나도 일단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해결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 싸움은 내 선에서 도통 해결이 되지 않고 무한 도돌이표가 반복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걸 보게 되면 나는 창피함과 수치스러움을 넘어 극강의 분노에 금세 달하게 된다.






일단 딸 둘의 싸움이 험해도 정말 너무 험하다.



싸우지 말아라 대화로 해결해라 암만 말을 해도 내 앞이라 욕만 안한다뿐,

언니에게 "야! 니!" 거리며 소리를 높이는 하극상이 자연스레 펼쳐지고 

말싸움으로도 모자라 손과 발이 제 멋대로 튀어나가는 격투가 난무한다.


우리 딸들은 치고 받고 차고 눕히고 살벌하게도 싸운다.

가끔은 코피도 터지고 긁혀서 피가 나고 꼬집혀서 멍도 든다.


어떤 날은 동생이 힘이 딸리는 지 언니 얼굴에 침을 뱉아 모욕을 주고

어떤 날은 어이가 없어진 언니가 동생 얼굴에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뱉었다.

욕조에서 싸움이라도 붙으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물에 쳐박게도 한다.

쓰면서도 내 딸들이 이렇게까지 싸운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도대체 누가 이런 저질스러운 싸움을 내 딸들에게 보여주었고, 가르쳤나?

나나 남편이? 아니, 절대 아니다.


나와 남편의 싸움에서는 화자와 청자만 있을 뿐, 난투는 커녕 설왕설래도 없다.

대게 내가 화를 내고 남편은 그저 묵묵히 견디며 듣고 있다.

내 화와 분노가 다 쏟아지고나면 모든 상황이 끝난다는 걸 알아서다.

내 화풀이가 빠르게 끝나는 방법을 남편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화난 걸 표현하는 걸 참지 않아 그렇지 나는 뒤끝은 없어 멈추고나면 그걸로 끝이다)




제 부모로 부터 보고 배운 것이 아님에도 점점 도를 지나치는 아이들의 싸움에 

이제는 조건 반사적으로 내 뚜껑도 함께 열려버린다.

말로 하다 벌을 주다 그것마저 안되면 회초리를 든다.


아무리 알아듣게 말을 해도 진심 없는 사과와 반성을 하고나면 딸뜰은 그때 뿐이다.

또 다시 자매의 싸움을 반복한다.


무엇이 내 딸들을 그리도 폭력적으로 변하게 할 만큼 화나게 하는가?


돌아서면 잊고 둘이서 같이 또 헤헤거릴 거면서.

지나고 나면 무슨 일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못할 것면서.

친구들이 그랬다면 화를 내기는 커녕 아무일 없다는 듯 넘어갈거면서.

왜 서로에게는 그리도 화를 내고 분노하고 열이 받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친구의 뺨을 때렸고, 뺨을 맞은 친구로부터 몇 배는 더 되맞고 왔더라며

언니가 속상한 이야기를 푸념처럼 내게 해왔다.

부끄러워서 다른 덴 말도 못한다면서.

언니도 부끄러운 내 딸들의 싸움을 몇 번이고 목격할 만큼 우리는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의 뺨을 때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이 먼저 나간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친구의 몸을 건드린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누군가의 뺨을 때렸다는 것 자체가 자칫 분노조절장애로 보일만큼 심각한 이슈다.

잘못된 행동을 꾸짖고 상대의 부모에게 사과를 하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가졌단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언니의 아들이 물었단다.


"엄마. 나는 화가 나면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어."


아이들의 싸움으로 야기된 나의 화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때리면서 푼다.

남편에게 받은 열도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원망을 하고 한탄을 하며 화를 낸다.

평소에도 조금이라도 내 맘에 안들거나 내 기준을 벗어나는 일에 나는 따지고 질문하고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굴긴 한다.


이처험 나는 화를 내는 것으로 내 화를 푸는 사람이다.


그런데, 화를 어찌 풀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의 질문이 확 하고 꽂힌다. 

마치 누군가 내 머리를 세게 한 대 친 것 같다.


내 아이들은 부모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화가 나는 자신의 마음과 상태를 내게 오롯이 전할 수 없다.

속상해서 문이라도 쾅 닫고 나가면 다시 불려와 더한 인내와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엄마인 나는 보통 아이들에게 '해. 해라, 해도 돼' 하는 것보다 '하지 마, 안돼' 라고 할 때가 더 많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것.

하고 싶은 데 하면 안되는 것.


누군가 자신의 행위를 제한하고 부정하는 것에 대한 분노는 남녀노소 없이 똑같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의 사사건건 조건이 붙고, 부정이 붙는다면 나 역시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일단 막고보는 나를 향해 부글부글 끓어대는 화를 내 아이들은 어떻게 풀까?


아마도 그 방법이 자매의 싸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처지다보니 동질감을 갖고 서로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서로를 상처입혀가며 자신의 화를 풀고 있는 건 아닐까.

밖에 나가 다른 사람에게 표출해내지 못하니 집 안에서 해결을 하는 건 아닐까?


내 아이들이 화를 푸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해봤지만 답을 모르겠다.

내 아이들의 머릿 속을 마음 속을 나는 알 수 없으니까.


내 딸들의 화는 안녕하지 못해 이렇게나 싸우는 거겠지.

일부러라도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무라지 말고 보듬어줘야겠다.

그 방법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 아이들의 화가 안녕하기 위해.


엄마인 내가 노력을 해야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딸을 위한 엄마의 초경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