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놀란 나의 소리에 남편이 대번에 물어왔다.
내 말에 남편은 이미 알고 있단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핀잔을 남기고 내게 등을 보이는 그가 서운한 건 이제는 남편이 아닌 전남편이기 때문일까?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호적에 줄을 그어버린 그가 아쉬운 건지
헤져서 찢어진 베개피가 아쉬운 건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물이 핑 돌 만큼 아쉽고 서운하고 뭔가 모르게 울컥한다.
봄에 결혼을 했고, 시어머니가 아시는 분께 신혼 이불 두 채를 맞추었었다.
봄 가을 겨울엔 그 이불을 썼었고,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며 그 이불 두 채는 버렸다.
그리고 유일하게 신혼 이불 중 남은 것은 친정 엄마께서 보내주신 이 여름 이불이다.
신혼인데 색깔이 이게 뭐냐며 노티난다고 투덜거리며 엄마께 한 마디 덧붙이긴 했었지만,
소재가 너무나도 시원한 터라 이불을 덮어 본 후 내 불만은 쏙 들어갔다.
그리고 남편과, 나.
우리가 함께 맞이했던 십수번의 여름마다 이 이불과 우리의 몸은 엉켜붙어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땀이 나도록 더운 여름에 몸을 칭칭 감고 잠에 들어도
시원하고 또 든든하리만큼 이 여름 이불은 제 몫을 단단히 해내었다.
이불빨래를 워낙에 자주 해서일까.
이번에 보니 삭아서 베개피가 군데 군데 찢어져있다.
하나가 보여서 꿰멜까 했는데, 한 두 곳이 찢어진 게 아니다.
미화된 내 눈은 찢어짐도 발견하지 못할 만큼 애착인형마냥 이 여름이불을 찾고 또 찾았나보다.
그래........
결혼하고 1n년이 흘렀는데... 빨래를 한 것만도 백번은 넘을텐데.
안찢어지면 그게 이상하지.
이날 이때껏 살면서 찢어진 건 베개피만이 아니다.
그와 나의 호적도 이미 찢어져 우리는 이제 남이다.
찢겨진 베개피에서 우리의 관계를 찾고 있는 나는야 전남편과 동거중인 이혼녀이다.
새로 여름 이불을 맞추어야겠다.
그 핑계로 우리의 관계도 재혼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말했다.
"여름 이불 새로 사야겠어."
"베개피만 찢어지고 이불은 아직 멀쩡해. 더 써도 돼."
내 마음도 모르고 남편은 베개피만 바꾸라한다.
그의 대답이 아직은 우리가 재혼할 때가 아니라는 것만 같다.
흥.
치.
삭아서 찢어진 베개피와 더해 그의 대답에 더 서글퍼진다.
결국 나는 혼자 벗겨낸 베개피에 눈물을 닦았다.
"왜 울어?"
태평하게 묻는 그의 말에 한심함이 느껴진다.
"눈물이 나니까 울지! 삭아서 찢어진 거도 서러운데. 버리려니까 왜 또 아쉽냐고."
나를 속이면서까지 해온 사업이 망해서 이혼을 한 것도 서러운데,
남편놈도 버리려다 아쉬워서 이 모양 이꼴로 살고 있다.
"그만큼 썼으면 버려도 돼지. 베개피만 새로 사."
내 속도 모르고 남편은 잘도 재잘댄다.
"똑같은 거 없단 말이야."
"대충 어울리는 거로 사."
버리고. 대충. 새로 사고.
그의 말에 정나미가 똑 떨어져 결국 가벼운 나의 손은 그의 등짝을 찰싹 내려쳤다.
"너부터 버릴 거야!!"
도끼눈이 된 내 말의 뜻을 알면서 실실 웃는 그가 얄밉다.
밉다 밉다해도 버리지 못하는 내 사랑을 제일 잘 아는 그이니까.
"더 버릴 거나 있나?"
아쭈, 도발까지 해온다.
"확! 내쫓아버릴 거야!"
내 말에 겁을 먹기는 커녕 청개구리마냥 나를 더 놀린다.
"오, 예! 자유다!"
"아휴. 내가 그 꼬라지 보기 싫어서 아직 못버리는 거야! 너 혼자 자유는 안돼지!"
"에이, 좋다 말았네."
베개피가 삭아서 찢어질 만큼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찢어진 호적과 관계없이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베개피가 찢어져 아쉽지만, 그는 내 곁에 있다.
그것이 또 위로가 된다.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데..... 나도 몰래 눈에 눈물을 매달고 웃고 있다.
우리의 여름이 이렇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