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는 남편이 울었다.

살다보면 눈물나게 힘들 때가 있지.

by 딱좋은나

아침이었다.

그 예쁘고 곧고 높은 코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휴지를 처박아서 내 앞에 나타난

전 남편이자 현 동거남이며, 내 아이 셋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남자.


"코가 왜 그래!!"


큰일이라도 난 냥 내 목소리는 아침부터 지붕을 뚫을 듯 높아졌다.


"코피 났어. 피곤해서 그런가봐."


일인 다역을 해야하는 일인사 업체를 꾸려나가고 있는 남편.

비록 바지사장인 내가 있어도 실무를 뛰는 남편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보니

일이 몰아치는 요즘 부쩍 힘에 부쳐한다.


백살에 가까운 나이이다보니 힘 든 것이 이해는 간다.

체력을 기른답시고 운동을 따로 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숨만 쉬고 사니, 공사에 들어가면 체력이 거의 고갈되다 시피한다.


"으이구....................."


속이 상해 한탄이 나온다.

살도 제법 빠져 솟았던 그의 배가 완만해져 보기는 좋지만,

어쩐지 개고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 같아 내 맘이 편치 않다.


"하필이면 배운게 그거라... 고생이 많다."


아빠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애들에게 나는 그런다.


"아빠처럼 공부 안하면 저렇게 몸 써서 일해야 되고, 엄마처럼 공부 하면 머리 써서 일하는 거야" 라고.


처음엔 어이 없어 하던 그는 하도 자주 들어선지 이제는

'배운게 없어서 힘들게 일한다'며 내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 줄 줄도 알게되었다.


배운게 없다고 하기엔 그는 재주가 많아도 너무 많은,

어린시절부터 고고하게 붓을 잡고 자신의 세상을 그림으로 그려온, 나름 곱게 큰 미대오빠이다.






"어디야? 왜 아직 안 와?"


보통 현장으로 출근을 하는 날엔

일하시는 분들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니

아침 일찍 나가고 오후 늦게 들어온다.


내 일이 마칠 즘이면 샤워까지 끝내고 막내를 데리러 가있는 게 보통인데,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아직 귀가 전이라 전화를 걸었다.


-일 마무리 짓느라 좀 늦게 출발해서 가고 있어. 차가 좀 막히네.


"저녁 뭐 먹을래?"


- 글쎄.


"애들 밥 먼저 먹여놓을테니까 둘이서 밥 먹으러 나갈까?"


-그러던지~ 간만에 둘이 데이트나 하자~!


평소에 내 입에서 먼저 나오지 않는 '나가자'는 소리에 가라앉았던 남편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거기다 애들까지 떼고 나가자하니 신이 났다.

그의 반응에 내 기분 역시 방긋 솟았다.


이렇게 전남편의 데이트란 소리만으로도 귀가 솔깃 맘이 동동 뜨는 나는야 40대의 애 셋 딸린 이혼녀 아줌마이다.






"오늘 양고기 먹자. 몸보신 좀 하게."


남편의 코피에 충격을 받은 나는

보약을 한 재 먹는 셈 치자며 비싼 메뉴를 골랐다.


나 또한 요즘 이것 저것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쓰느라 체력이 부쩍 딸리던 차다.


"그래. 그러자."


흔쾌히 나의 제안에 수긍한 그는 손을 꼭 잡고 나를 이끈다.

비즈니스 맨들을 상대하는 여의도 골목에나 어울릴 법한 고급스런 양고기 전문점으로 갔다.

이 비싼 양고기 집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한 번 와 봤고, 오늘이 두 번째이다.


내 나름 외식에 비싼 돈을 써야하니 큰 마음을 먹고 양갈비 2인분과 맥주 두잔 세트를 주문했다.



역시 돈이 좋긴 하다.

직원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구워주니 대화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고, 고기 굽느라 뒤집고 건져 올리는 신경을 안써도 되니 편했다.

둘이서 나온 것도 좋고,

간만에 마시는 호가든 맥주 맛도 좋고,

비싼 고기 맛은 더더더 좋아서

새삼 우리가 이런 과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 뿌듯해졌다.


식사 내내 남편과 둘이 꼭 붙어앉아 이런 저런 이야길 쉼 없이 재잘 거렸다.


이야기를 하다하다 우연히 남편의 사업이 망했던 때 이야기가 나왔다.


온 집안에 압류 딱지가 붙었고,

쌍소리가 대부분인 전화를 받았고,

가족까지 위협을 받을 정도로 모욕을 견뎠던 시간을

우리는 동지애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으로 함께 견뎠었다.


그 때 당시 남편이 얻은 것이라고는 배신감 뿐,

사람도 잃고 돈도 잃고 업계의 평판도 소문도 모두 잃었었다.


남편은 그때 이야기를 하며 당시에 자신을 향해 손 내밀어주고 끝까지 응원해준 사람들을 하나씩 되뇌였다.

덧붙여 내게도 고맙다고 그리고 자신은 나만 믿는다 했다.


"사업하다 망하면.

남편이고 뭐고 충분히 다 버리고 갈 수도 있는 건데.

끝까지 오빠 옆에 있어줘서 그 때 진짜 너한테 고마웠어."


이미 아는 마음이고 진작 들어서 아는 감사지만 또 들어도 기분이 좋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나만 믿는다니 괜히 으쓱해진다.


나는 연애의 시작부터 이 사람과의 만남을 돈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해다니는 꼴을 보면 대충 각이 나오듯이, 그가 돈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물론 없다 없다 이 정도로 없을 줄은 꿈에라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물론 지금은 매달 생활비 벌어오라 돈돈 거리긴 하지만 그의 돈으로 호위호식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 생계유지비만을 바라고 그의 부담을 줄이고자 나 역시 손을 보태고있다.

여전히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데, 그깟 돈 따위는 내가 그를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비록 우리가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동거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사람은 내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무결해야할 호적을 더럽혀가면서까지 이혼을 한 것은

내가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이 사람을 버렸었는데, 이 사람은 그걸 정말 모르는 것 같다.


앞서말한 바와 같이 내가 이 사람을 버렸던 것은 돈 때문이 절대 아니었다.

결코 그를 향한 내 사랑이 작아서도 아니었다.

부채 회피만의 이유 또한 아니다.


그가 나를 속였단 사실에 나는 분노했고 좌절했고 그와 함께 할 의미와 이유를 잃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을 했었고, 나는 정말로 그와의 헤어짐을 생각했었다. 비록 완전히 헤어지지 못했지만.


아이들 핑계로 여전히 함께이긴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더이상 우리라는 울타리로 정의될 수 없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듯

더 사랑하는 내가 그의 잘못까지도 그저 수용하고 있을 뿐이다.


저 죽는 것도 모르고 불에 뛰어든 나방처럼

내 사랑은 인내와 희생 그리고 양보의 모습으로 여전히 그에게 머물러있다.


나는 나대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그가 말했다.


"그 때, 후배 밑에 들어가 일하느라

하루에 두 시간씩 운전해가며 출퇴근을 할 때,

차에서 슬픈 노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와서 많이 울었었다"고.


"뭐?"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와 동상이몽 중이었는데,

남편이 울었단 이야기에 깜짝 놀라 내 모든 감각이 남편을 향했다.


말뿐이 아닌지 그때를 떠올린 그의 눈이 벌개지고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낯선 모습의 그를 보니 내 눈에서도 조건반사적으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땐 주체가 안되고, 참아지지도 않고 그냥 눈물이 흐르더라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그 때 돈이랑 신용이랑 사람을 잃었지만.

내 입장에서 그 때 잃은 건 자존감이었던 거 같아."


본인의 선택으로 다 이렇게 되었으니..............하고

머리론 받아들이면서도 가슴으론 인정하지 못해서 울었을테다.

내가 아는 그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질머리는 그렇다.


잘 나가던 내가 왜 여기서 이 일을 하고있나 하며

그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밑바닥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임신한 걸 알렸을 때도

27시간 반동안 유도분만으로 힘들게 지 자식을 낳았을 때에도

단 한번도 눈물 한 방울 흘린적 없는 냉혈한 내 남자가 울었다.

지 자존심 때문에.

지 자존감 때문에.

울었다는 그의 말이 충격적이다.


그래.

당신은 평생 그렇게 살아.

그래야 내게 잡히지 않는 당신을 질리지 않고,

지금처럼 니 마음 쫓으며 안달복달해가며 살지.


생각은 이렇게나 삐딱한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그가 최우선이다.


"그때 당신이 그렇게 울었었는지도 몰랐어.

내가 몰라줘서 미안하네."


"아니야. 지금까지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맙지."


양은 냄비처럼 온갖 감정을 다 드러내고 사는 나완 달리

무쇠솥 마냥 남편은 우직하고 변함이 없어, 그가 그렇게 울었을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했다.


혼자 울었을 내 남자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티도 내지 못하게 그를 몰아부치진 않았나 악덕했던 날 뒤돌아봤다.


울고.

휴지로 닦고.

근데 눈물이 또 넘쳐 더 울고.


적당히 울고 그쳐야하는데,

눈물 없는 남자가 울기 시작하니.

그 큰 눈에서 눈물이 잔뜩 고여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비싼 양고기를 앞에 두고 한참 둘이서 사연있는 사람들처럼 함께 울었다.


다행이다.

이렇게 비싼 식당에서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어서.

부끄럽거나 쪽팔릴 겨를도 없이 우린 그렇게 조용히 울었다.


손을 뻗어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진 않았지만

옆으로 맞닿은 무릎처럼 마음은 분명히 닿아 있었다.


꽤 많은 눈물로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함께 겪었던 많은 일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경험을 주춧돌 삼아 물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 겠지만, 행여나 다시 넘어진다해도 우리는 함께 일어날 것이다.


양고기를 먹으며......... 울었다.

그리고 눈물 젖은 양고기의 맛은 끝내줬다.

역시 비싼 게 맛도 좋다.


오늘 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살면서 본 그의 두번 째 눈물을 말이다.

(참고로 그의 첫 눈물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아빠가 된 그가 감정이입을 제대로 한 탓에 본 딱 한방울이었다.

그는 가슴으로 우는 사람인건지 모르겠지만 눈물은 참 없는 사람이다.)


그대여.

울지 마라.

울지 말자.

굳이 울어야한다면 나의 곁에서.

날 믿는만큼 기대도 괜찮아.

그정도 사랑은 여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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