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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Oct 12. 2023

마흔 즈음의 친구들

미혼이라 부럽다니까 기혼이라 부럽다네

다행히 마흔 즈음인 내 주위에서

아프거나 사고로 죽은 친구는 아직 없다.

죽을 병에 걸려 투병 중인 친구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멘탈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복 많은 사람이다.



이번 추석 연휴, 친정을 찾은 김에 내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친하게 지내는 대학교 동창은 남자 다섯 여자 넷해서 9명인데

나와  여자친구 한명, 단 두명만 시집을 갔다.

그리고 생사가 불분명하다 싶을 정도로 잠수를 타고 있는 남자친구 1명을 포함한 나머지 7명은 모두 미혼이다.


시집을 간 친구는 친정과 시댁이 한 동네라도 부산에서는 제법 먼 까닭에

연휴가 길어도 물론 나를 만나러 나오기 어려웠다.

시집을 가지 않은 친구들은 하필 가족여행이 겹쳐 나를 만나러 나오지 못했다.


지방에서 아버지 일을 돕는 친구가 일 때문에 바빠서 움직이지 못하고

남겨진 남자 셋이서 나를 위해 흔쾌히 약속 장소에 나왔다.


스무살 어린 날부터 봐온 친구들이기에 우리는 방구와 트름만 안 텄다 뿐 스스럼이 없다.


올해부터 담배를 끊었다는 A.

금융업에 종사를 하고 부산과 가까운 김해에서 34평 자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골드미스, 아니 호화로운 싱글남이다.


대학에 들어와 만난 A로부터 배운 담배를 아직도 피는 B.

어머니와 함께 살고는 있지만,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재고 있는,

생긴 게 나름 말쑥한 화려한 싱글남이다.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거의 일년만에 만나는 나 때문에 스케줄까지 조정해서 근무하고 온 C.

담배도 피지 않고 여자도 만나지 않아 어리숙하리만큼 착한 듯 하지만

등산을 다니고 혼자서 스페인을 여행하고 다닐만큼 심지만은 단단하고

SUV를 몰고 여유를 즐기며 혼자 아파트에  살며 삶의 기반을 탄탄히 해놓은 마성의 싱글남이다.






냉채 족발이 먹고 싶다는 나를 위해 대낮부터 술도 한 잔 없이 우리 넷은 족발을 뜯었다.

사진 한 장 찍은 새도 없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냉채 족발 중자가 사라졌다.

멀뚱히 빈 접시를 두고 수다를 떨기에 그 가게는 바빠도 너무 바빴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모두가 일어났을 때 자연히 먼저 일어나 카운터로 간 C가 결제를 했다.


"이야!!!!!!! 고맙다!!! 맛있었따!!!!!

잠도 안자고 밤샘 근무하고 온 니가 쏘면 우야노! 미안하게스리!"

하는  소리에


"에이. 뭐 이 정도 가지고!!!!"라고 싱긋 웃은 C가 대답을 했다.

그 얼굴이 수줍으면서도 여유롭다!



족발을 다 먹고 난 뒤 입가심을 하기 위해 커피를 한잔 할까 했지만,

족발을 먹으며 한창 나눈 이야기에서 나온 하이볼이 당겼다.


술이 약한 친구들이기에 가볍게 하이볼이나 한잔 하자며 근처의 펍으로 갔다.

금액과 상관없이 안주를 고르고 나름 양 적고 비싼 과일 안주를 시켰다.

운전을 해야하는 A는 무알콜 칵테일 시켰다.


바텐더를 겸하시는 사장님이 늦게 출근하시는 바람에

하이볼과 칵테일을 먹기도 전에 서비스 맥주가 한잔씩 제공되었다.


예전같으면 비싼 술을 남기는 건 죄악이라며 억지로 다 마셨을테지만,

저마다 주문한 하이볼과 칵테일을 한 잔씩 다 마시느라

서비스 맥주는 조금 남겼음에도 미련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저마다 주문했던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번에는 당연한 듯이 B가 일어나 결제를 했다.


"살다 살다 임마가 내는 술도 다 먹어보고! 잘 묵었다!"


B가 그리 쪼잔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런 공치사가 나왔다.


"아, 나는 이제 술은 더 못먹겠다."

A의 차에 탄 C가 말 했다.


C는 나와 성씨가 같다.

심지어 항렬도 내가 할머니 뻘로 높다.

내가 아는 나와 성이 같은 남자들의 주량은 대게 헤비급이다.

그래서 그가 술이 약한 건 이론 상 절대 불가능한 일인 거 같은데

엄마를 닮았다는 C는 정말로 술이 약해서 보통 술자리만 지키지 술은 많이 마시지 않는다.

역시나 그는 자신이 했던 말처럼 하이볼 한 잔을 마신 후부턴 콜라와 사이다만 마셨다.


마지막 우리의 종착지는 송도 암남공원의 조개구이다.

술을 먹지 못하고 무알콜 칵테일을 마신 A가 모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아반테부터 시작되었던 그의 차는 어느새 고급 중형 세단으로 바껴있다.

편하게 뒷자리에 타고 이동을 했고, A가 잡은 숙소에 주차를 했다.


A 이 녀석은 술을 먹어도 부산에서 대리운전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김해에 살면서도

오늘 이 음주를 위해 송도의 한 모텔의 객실 하나를 빌렸다.

-이러한 노력이 애석하게도 A의 주량은 금융업에 종사한 덕에 아주 많은 늘어 소주 네 잔이다.


아주 돈지랄이 풍년이구나 싶었지만,

차라리 숙소에서 자는게 편한 나이가 된 건가 싶기도 해 아줌마의 잔소리는 접어두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오지 않는 택시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걸었다.


암남공원까지 20여분을 걸으며 대학생 시절 영도다리에서 함께 밤을 지새고 맞이하던 일출을 추억했다.

남포동에서 술을 먹고 용두산 공원에 올랐다가 차며 지하철이 끊겨

좁은 모텔방에 혼숙이라기에도 부끄러울만큼

일고여덞명이 함께 들어가 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던 추억도 있는 친구들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하하 호호 히히 우리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B와 나는 당연하단 듯 담배를 피웠고,

A는 담배를 끊었지만 담배 냄새는 좋다며 곁을 지켰다.

원래부터 담배를 피지 않는 C만 멀어지지도 못한 채 간접흡연을 감내했다.


때가 때인만큼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착석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친구들은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해두었다.

오는 동안 A가 그랬다.


"조개구이는 내가 살텡께! 느그는 맛있게 무그!!!"


그리고 빠르게 비워진 소주 두 병.

그 중에서 A는 세잔을 그냥 마시고 한 두 잔은 여러번 나누어서 콜라나 사이다에 섞어 마셨다.


술이 는 것도 칭찬을 받고 술이 약한 것도 이해를 받을 만큼 우리는 20년도 더 된 친구사이이다.




스무살에 만나 서로 돈을 모아서 어디 싼 술 집에 갈까, 어떤 안주가 싸고 양이 많을까 했었다.

오늘 우리 소주 몇 병 먹은 게 신기록이다! 하며 기념 사진을 찍던 내 친구들.


청우회란 이름으로 계모임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나 멀리 살고 드문 드문 만나도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마흔이 넘어서 만난 친구들은 알아서들 자리를 잡아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음식의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을 할 만큼 재력도 갖추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술 값을 내던 과거가 있기에

친구들이 호기롭게 내미는 그들의 카드가 그 어떤 블랙카드보다 더 멋지고 좋아보였다.


덕분에 1,2,3차 모두 얻어먹은 나는 멀리서 온 애셋 키우는 아줌마랍시고 결제 대상에서 제외가 되었다.


멀리서 와서 친구들 불러준 것만도 고맙다는 내 친구들의 다심함에 감동을 받았다.

물론 나는 모임 후 기프티콘으로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마흔이 넘어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휘청거리는 나를 나는 아쉬워하고 슬퍼하고 질책했었다.


"마! 니가 이래 오면 내가 편하게 만나러 올라고 장가도 안가고 있는기다! 아나!"


A의 우스개 소리에 나는 "뷰웅신! 자랑이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도 고맙다야. 이렇게 나와 줘서!"


하는 내 말에 친구 셋은 "아이다 아이다!!! 이래라도 얼굴 보면 좋은 거지!" 라 했다.


장가 안가나. 하는 내 말에  장가는 혼자 가나 하고 응수하는 친구들.

이제는 혼자인게 너무 편하고 좋다는 이 친구들의 여유가 나는 참 부러운데

그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나이대로 사는 내가 부럽단다.


늘 우리는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더 원하는 법이다.


"존나 힘들다. 보통 평범하게 사는 거."


하는 내 말에 내 친구들이 그랬다.


"그래도 임마. 니가 제일 성공한 거다.

결혼도 하고 애도 제일 많다아이가."


나는 또 이렇게 고단한 내 삶을 위로 받았다.

고맙고 고마운 내 친구들, 청우회 Forever!




청우회와는 별개로 나를 여군사관의 길로 안내했던 대학동기가 있다.


내게는 영원한 이 소위인 그 친구 생각에 이번 연휴 끝에 전화를 해봤다.


"어! XX아! 우짠 일이고!"


개명을 한 지가 언젠데 이 새끼는 나를 옛 이름으로 아주 크고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


"야이 씨, 이름 바꾼지가 언젠데 뭐라 카노.

내 어제 청우회 만났는데 니 생각나서 전화 함 해봤다.

니는 내랑 제일 가까운데 사는 놈이 연락도 안하고.

퇴근 길에 잠시 커피 한잔 무도 되겠구만.

내가 니보고 술을 사라나 밥을 사라나. 얼굴 보기 드릅게 힘드네."


-하하하. 맞제. 미안하다.


"맨날 니는 업무 중에는 통화 안된다고 하면서.

니가 알아서 전화 하고 해야 될 거 아이가!

서로 고향 떠나서 멀리 사는 동지끼리. 어!!!!????"


-아랐다. 아랐어. 내가 미안하다.


수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가 더 없이 반갑고 밝아서 내가 더 기쁘다.


"그래. 미안한 거 알면 됐다. 요새 대한민국 국방부 별 일 없고?

니는 꾸준하이 나라 잘 지키고 있제? 아직 두 발 뻗고 자도 되제?"


-XX아, 안그래도 내 이번에 진급했다.


"야, 씨바. 니 그럼 말똥가리 두 개가?

휴직까지 했었는데 니 나이에 이 정도면 존나 빠른 거 아니가?

ROTC가 육사고 뭐고 쟁쟁한 것들 밟고 올라간다고 얼마나 고생했겠노.

존나 대단한 새끼네 이거. 니 씨, 전화 안한 거 다 용서 해주께. 진짜 축하한다."


울컥할 만큼 기쁜 소식이다.

군인인 친구가 쉽지 않은 휴직을 해야했던 이유를 아는 나는

그가 과거에 내보인 용기와 도전이 진급으로 보상을 받은 것 같이 느껴졌다.


-하하하, 고맙다. 그래서 이번에 3년만에 명절에 처가 내려왔다.


"잘했다. 새끼야. 올라와서 연락 함 해라.

니 진급 기념으로 누나가 거하게 몇 대 쌔려줄께!"


-그래그래, 내가 올라가서 꼭 연락할께. 전화 주스 고맙데이.

 

"마. 마누라한테 잘 해라. 니 진급 일등 공신이다! 알제?"


- 안다. 잘 한다. 걱정마라.



대대장급으로 진급한 내 친구 소식에 정말 내 일 마냥 뛸 듯이 기뻤다.

아이들 앞인데도 욕이 난무하는 내 말에 남편은 잔뜩 얼굴을 지푸렸지만.

욕이 나올만큼 기쁘고 반갑고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야, 느네도 마흔 넘어서 욕해라이. 그 전에 하다 걸리면 쳐맞는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내로남불이 되어

내 오랜 친구들과의 돈독하고 찐한 우정을 과시했다.


마흔 즈음의 우리는 흔들리며 살아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맙다,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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