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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Sep 28. 2023

굳이 할 이유가 없는 이혼이라니!

소통하지 않는 어느 부부 이야기

언니는 뭐든 혼자 한다.


거의 주말부부로 살다시피 하니 집안일도 육아도 혼자다.

언니네 부부는 맞벌이 가정이니 언니가 전업주부로 집에 있는 것만도 아니다.


어쩌다 형부가 쉬러 오면 배려랍시고

언니는 애도 혼자 데리고 나가 논다.


가끔 형부와 세 식구가 놀러를 가도 언니가 잔심부름꾼처럼 일을 다 한다.

캠핑 가 칫솔 가져다주기 같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언니가 챙겨 형부 앞에 대령해야 한다.


형부는 얄밉게도 언니를 습관처럼 부른다.

그럴 때 형부의 목소리와 어감은 세상 둘도 없이 다정하다.


둘은 연애결혼을 했고 사랑해서 결정한 결혼이었다.

한 때는 언니에게 세상 둘도 없이 다정한 그 모습이 형부의 본모습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 후 형부는 본모습을 드러냈다.

배려와 양보와는 전혀 거리가 먼, 뭐든지 자신이 우선인 사람이었음을 늦게 알았다.


물론 형부가 힘들게 일하는 것도 맞고 적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언니도 여자치곤 적게 벌었던 건 아니다.

이기적인 형부를 견뎌야 할 만큼 언니는 유약하거나 무능하지 않다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다.


사실 사람이 사는 게 돈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더 번다고 유세인 건지 모르겠지만 형부는 자신의 직업으로 하는 일 외엔 그 어떤 것도 신경 쓰거나 하지 않는다.


안으로 굽는 팔처럼 나는 나의 지인인 언니가 그저  안쓰럽다.


늘 종종거리고 형부와 아이를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상시대기 상태인 언니가 안타깝다.


일 때문에 아이와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일 핑계로 아이를 친정부모님께 맡기며 안달복달하는 것도

엄마인 언니만 오롯이 느껴야 하는 감정인지 모르겠다.


언니 부부를 보면 정말 불통이다 싶으면서도

제삼자인 내가 뭐라고 그들의 관계를 평가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나와 다른 형태의 관계가 틀린 건 아닌데 말이다.

(이혼하고 동거 중인 나도 남이 보면 정상은 아닌데 누가 뭘 지적질을 하나 싶다.)





이혼을 하긴 했어도

나는 전남편이자 동거남인 그와 이전에도 지금도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화가 나고 슬프고 열이 받고 약이 오른 이야기도

웃기고 신나고 즐거워 배꼽 잡는 이야기도

모두 그와 주거니 받거니 한다.


고단한 삶의 심각한 무게도

어리석은 나의 경솔한 선택의 대가도

언제나 그와 함께  나누기에  

앞으로 또 한 발짝 나아갈 힘을 얻는다.

혼자라면 버거운 짐도 둘이 함께라면 한결 수월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보는 언니와 형부는 이게 안된다.


이인삼각을 하듯 함께 하는 결혼생활인데 유의미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대화를 하려고 하면 몸이 피곤한 형부는 짜증을 동반한 화를 내니. 착하고 미련한 언니가 대꾸 대신 입을 다물어버리기 일쑤다.

형부는 이기적이라 느껴질 만큼 개인적이고, 언니는 이골이 났다 싶게 상대에게 맞춰주기에 익숙하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꾹 꾹 눌러 담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동안  언니의 마음에는 화가 쌓였다.

차곡차곡 쌓였지 덜어내지 못한 울분과 화로 인해 언니요즘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잠들 수 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불안정해 약 없이는 잠들 수가 없다.

약을 먹고 자더라도 약에서 완전히 깰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래서 언니는 반쯤 약과 잠에 취해 비몽사몽 하면서도 아이를 등교시키고 운전을 해서 일을 간다.


그러한 사정을 다 알고 곁에서 지켜보자니 동생인 내 속이 상한다.

부모가 같은 동기는 아니지만 친언니 이상으로 의지를 하고 지내는 언니이기에 내 마음이 너무도 아프다.


부부 사이의  일이니 형부 왜 그러냐고 제삼자인 내가 나서지도 못한다.


언니가 힘들어하는데 나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그저 언니의 눈치만 살피게 된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라면서 언니는 자신의 이야길 먼저 꺼내놓지 않기에,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에둘러 묻고 또  떠봐야 한다.


"왜 이혼 안 해?!"


나는 혼인예찬론자에 출산예찬론자다.

근데 언니에게만은 둘째도 낳지 마라 했었고, 

이제는 형부와 이혼하지 않는 거냐  묻는다.


"뭐 하러?", "굳이?"


별소릴 다 듣겠다는 듯 언니가 위와 같이 대답하며 날 본다.

조금 전까지 나의 추궁에 다심하지 못한 형부에게 서운한 점을 다 얘기했음에도 언니는 형부와 이혼을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돈 버는 것 외에 모든 걸 언니가 다 하지 않냐며 기가 차 하는 나에게 언니는 간단하게 이혼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 주었다.


굳이 이혼해서 지금과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이혼을 안 한단다.


이혼하더라도 지금과 비교해 나아지거나 바뀌는 게 없기 때문에 이혼을 할 필요가 없단다.


이혼을 생각할 만큼 형부가 잘못하지도 않았고,

이혼을 고려할 만큼 언니네 가정은 잘못되지 않았단다.


내가 이혼녀이기 때문에 남의 이혼도 쉬워 보인 걸까.

언니와 형부처럼은 단 하루도 답답해서 못 살 거 같은데,

언니는 이제 타성에 젖었다 할 만큼 소통의 부재에 익숙해진 듯하다.


"그럼 형부랑 말 좀 해 봐! 이야기 좀 나누라고."


"뭐 하러. 말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닌데."


이혼을 하지 않는 이유처럼 언니는 형부와 대화할 이유마저 잃었다.


어쩌다 다정하고 다심하고 우리 언니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속상할 뿐이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굳이 이혼하지 않는 언니의 연락이 오면 얼굴을 보고 수다를 떤다.



솔직히 지금 언니가 진짜로 괜찮은 상태인 건지 걱정된다.

내 기억 속 그 언젠가처럼 행복하게 웃는 언니가 보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


바라건대 언니와 형부가 사랑으로 합한 서로의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같이 짊어졌으면 좋겠다.

힘은 들더라도 적어도 혼자 억울해지는 부부생활은 안 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대화를 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싶다.


소통하지 않는 부부의 위태로움이 명절을 앞두고 더욱 크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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