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나를 위로하다
작년 12월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10개월 정도 된 것 같다.
꾸준히 다이어트 약을 먹은지가.
다이어트 약을 먹으며 점심을 굶었던 지난 6개월과는 달리
10킬로그램을 덜어낸 지금의 나는 삼시세끼 다 먹으며 약을 먹는 유지어터이다.
다이어트 약 덕분인지, 고민과 걱정이 많은 내 속 때문인지
다행히 살이 더 찌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어떤 날은 조금 더 내려갔다 싶은 날도 있다.
47킬로그램으로 결혼했던 내가 애 셋을 낳고 67킬로가 되었다.
그리고 1n년만에 다이어트를 타의에 의해 시작했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내 몸뚱이는 내 맘대로 된다는 말을 하며 언니가 던져준 다이어트 한약을 먹으며.
그리고 딱 6개월만에 차분히 10킬로그램을 벗어던졌고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살이 빠져서 가장 좋은 것은 옷태도, 덩치의 가벼움도 아니다.
비만과 과체중의 경계에서 정상체중의 범위로 들어서자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회복됐다는 점이 가장 경사이자 좋은 일이다.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고 움츠러들던 67kg 때와는 달리
'애 셋 낳고 57kg면 되지, 더 빼면 성격 나빠져서 안돼!'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할 정도로 스스로를 관대하고 너그럽게 볼 수 있다.
57kg이라고 하니 별로 살이 찐게 아니네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 키는 160cm도 되지 않는 단신이다.
작은 키에 타고난 골격이 얇아 57kg은 결코 적은 무게가 아니기에
내가 살이 조금 빠졌다고해서 외모에 자신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살이 빠진 덕에 자존감이 생겨 어깨를 곧게 펴고 걷는다.
그냥 내가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시선이 어여쁘고 기껍다.
힘든 다이어트를 수월히 해낸 것이 대단하다.
포기하지 않고 결국 뺄만큼 뺀 것이 기특하다.
"오빠 근데 내가 지금보다 뚱뚱했을 때 왜 자기는 나한테 한 번도 살 빼란 소리 안했어?"
"니가 내가 살 빼라 한다고 뺄 사람이야?"
순도 100% 그의 진심어린 말에 나도 완벽히 동의한다.
"맞다 맞다~ 내가 누구 말 듣고 살을 찌우고 빼고 할 사람은 아니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참 나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살이 찐다고 또 빠진다고 니가 네가 아닌 건 아니잖아.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 살은 아무 상관 없어. 넌 그냥 너야."
"아니, 그래도 날씬하고 뚱뚱하고 차이가 있지 않아?
와이프가 날씬하고 이쁘면 좋잖아."
"이쁜건 뭐 처음부터 포기했고.
내가 니 얼굴보고 만난 것도 아니고.
내가 니 몸 보고 결혼해서 사는것도 아니잖아.
오빠 생각하는 니 마음 하나 보고 결혼했지.
너에대한 이 오빠의 깊은 마음과 사랑을 니가 아냐?"
"아니, 모르겠는데. 얼마나 깊고 얼마나 사랑하는데? 말해봐. 엉?
근데... 아... 듣다보니 이거 칭찬이랑 욕이랑 다 들어있는 거 같은데."
절레 절레 고개를 흔드는 그는 지금 운전중이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그의 바로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서도 그를 향해 한껏 기울어져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과 나의 왼손은 깍지를 끼고 있다.
"아, 좀! 놔 봐! 운전 좀 하자."
움찔하는 그를 느끼고 손을 빼려하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힘까지 줘가면 손을 놓지 않고 버티는 내 손을 그가 기어이 털어내었다.
우회전 하느라 핸들을 잡아야한다는 이유지만
내 손을 떠난 그의 온기가 적적해 내 기분도 팍 식어버렸다.
"한 손으로 하면 돼지. 그것도 못하나? 1호차 운전병 출신이!"
"한 손으로 까딱거리다 죽고 싶냐? 난 아직 살고 싶거든."
"치이.. 내 죽고 없으면 오빠 불편해서 못사는데."
"너 죽으면 새 장가 가야지."
"야, 나 죽어도 너 빈털털이야. 너한텐 아무것도 안 가. 새장가는 개뿔 아무도 안 와!"
"아, 그러네.
그러면 살이 쪄도 되고 빠져도 되고 아무 상관없으니까.
너는 건강하게 오래 오래만 살아줘. 너 없으면 나 진짜 불편해서 못사니까."
이렇게 실 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우회전은 진작 끝났고
그의 손은 툴툴 거리는 내 볼을 툭 하고 한번 건든 후 다시금 내 손을 잡아다 끌어당겼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은 진심인 듯 그가 아주 사랑스럽고 흡족한 표정으로 빙긋 웃는다.
알씨구, 이번엔 내 손등에 쪽 소리가 나도록 그가 뽀뽀를 한다.
"살은 아무 상관없어. 너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좀 뺐으면 했던 거지.
그래서 지금은 몇 킬로 나가? 살 빠져서 좋아? 네가 좋으면 됐지 갑자기 살 얘긴 왜."
"됐어. 내 외모는 안봤다며.
진심 다 나왔는데 이제와 뭘 또 수습하는 척이야. 그만해."
이번엔 삐진 척하는 내가 그의 손을 털어내고 팔짱을 껴버렸다.
"에휴, 맘대로 생각해라. 이래도 저래도 다 이쁘다 해줘도 또 시비네.
신나게 갖고 놀다 제자리에만 가져다 놔."
오늘도 관대하지만 시크한 남편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을
로맨틱이라곤 1도 없이 싸가지 바가지로 쌉쌀하게 말했다.
그래도 그런 투박하고 정머리 없는 그의 말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함께 사랑하며 세월을 보내왔기에 가능한 여유이리라.
토닥토닥.
그의 아내이자, 그의 아이의 엄마로서 사는 나야.
나로서 나답게 나스러워지기 위해 찌운 살을 빼고 있지만
그의 말처럼 본질은 바뀌지 않아.
겉모습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말자.
세상에서 둘도 없이 가장 소중한 나는 어떤 모습이더라도 괜찮아.
나는 나여서 대단하고 나는 나이기에 멋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