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와 유리 천정까지 깨부셔야겠습니다.
웹소설 작가들의 오픈 카톡에 입성하고 두번째 작가 모임을 하였던 날이었다.
모임 장소가 남편의 공사 현장과 가까운 곳이라
나는 집에서 멀지만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약속장소까지 갔다.
남편의 퇴근 길에 함께 하기 위하여.
기껏해야 두, 세 시간만 보내고 올 수 있을 뿐인 그 모임을 위해 나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길에 쏟아 부었고,
집에서 나 없이 있을 아이 셋을 위해 간식과 식사 해결을 위한 몇 만원의 돈을 썼다.
애 셋을 봐줄 남편이 없으니 사실 이상황에선 모임을 가지 않는게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었다.
그냥 사람이 그립기도 했고, 마음이 외롭기도 했고,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하고 싶기도 했고,
사람들을 보며 자극도 받고 싶었고,
그 생태계의 산 증인들의 이야기도 듣고싶었다.
혼자만 읽고 보는 웹소설이라도 4편을 완결 지은 나를
출간만 하지 않았지 이미 작가라고 추켜세우시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나의 습작들이 출간을 할 만큼의 글 다운 글이 아니라 생각이 든다.
괴물 신인.
완벽 주의자.
혹시 내가 목표하는 게 그거냐며 사람들이 물었다.
도리 도리.
전혀 아닙니다.
내 손끝에서 터져나오는 쓰레기들이 재활용이라도 될 수 있다면,
돈 따위와는 상관없이 나는 내 글들을 출간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내 글들이 출판사에 적어도 민폐는 되지 않을 수준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내 글을 감히 투고를 하지도 못하고 있다.
시작을 했고, 끝만 났다뿐
그 글을 쓴 나 스스로도 자신이 없을 정도로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글이다.
이번 모임은 유난히 인원이 많아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글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서 조금 놀랐다.
나처럼 그냥 글쓰기가 좋아서 혼자 글 쓰는 게 재밌어서 글을 쓰는 분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창작물인 글로 효과적이고 많은 돈을 벌지,
어느 출판사를 통하면 선인세를 많이 받고, 프로모션을 잘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
의사였지만 의사를 그만 둘 정도로 웹소설이 잘 팔린 어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거의 대부분이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하였다.
그를 위해 아직은 지망생이지만, 자신에게 이미 정해진 편하고 좋은 길을 두고도
어려운 작가의 길을 1년이라는 정해진 기간동안 도전해보겠노라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분은 하루에 5시간을 자며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 후부터 새벽까지 글을 쓴다했다.
글쓰기가 재밌어서도 있지만, 자신이 쓴 글로 돈을 벌고 성공하여
종국에는 퇴사하는 게 꿈이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잠을 줄이는 노력까지하는 지망생도 있었다.
이미 출간을 한 기성 작가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취재부터 관련 서적을 읽고, 여러가지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까지.
그런 작가들이 지망생들이 부단히도 쏟아붓고 있는 열과 성에
대단하다고 응원하고 격려할 만큼 눈물나는 노력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 역시 아직 지망생이지만
아이 셋을 키우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글도 쓰냐며
부지런하다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작가들이 어거지로 태운 비행기를 탄 내 자신은
보통의 작가나 지망생과는 다른 결의 나의 대단함을 겸양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의아해졌다.
자신의 미래를 바꿀 정도로, 꿈을 이루기 위해 잠을 줄일 정도로 절박한 글쓰기를
나는 전혀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다.
나는 글을 쓰는게 재미있다.
그래서 쓰고 싶을 때만 쓴다.
힘들게 쥐어짜면서 쓰고 싶지 않다.
가끔은 너무 피곤하면 글을 쓰고 싶어도 그냥 자버린다.
이야기가 풀리지 않는 날에는 몇 일, 몇 주, 몇 달 동안 한글 창을 띄우지도 않을 때도 있다.
나는 편안하게 글을 쓰고 싶다.
편안하게 쓴 글이 편안하게 읽힌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모두 편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싶다.
결핍이나 부족을 감내하면서까지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것도
편하게,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어서다.
글로 돈을 벌게 된다면 내 글을 돈으로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또 돈이 되는 방향으로 시대, 흐름, 유행에 맞게
내 글을 생각을 고치고 수정하고 바꾸어야 할 것이다.
아직 나는 돈이 고프고 돈을 매우 좋아해도 글쓰기 까지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이렇게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봐줄만큼.
내 글이 주류가 아니더라고 필력 하나만으로 타인의 정신을 흡입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꼭 웹소설의 형태가 아니더라하더라도 나는 나의 생각과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 점이 오늘 모인 작가들과 내가 완전히 다른 점이었다.
그걸 깨닫자 이 자리가 몹시도 불편해졌다.
마치 내가 오면 안될 곳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임에서 느낀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물었다.
"그럼, 이제 그 모임엔 더 안나갈 거야?"
나와 생각과 목표가 다른 이들을 만나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고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 일인데.
남편은 그 모임에 더는 내가 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어이 없게도 나 역시 "아마도?" 라는 말로 그의 말에 동조했다.
정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부터 오픈 챗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날 밤, 여기까지의 내 이야기를 들은 언니가 그랬다.
며칠 전 엄마를 모시고 영탁 콘서트에 갔는데,
트롯 가수인 영탁이 트롯만 부를 줄 알았는데 락도 부르고 댄스곡도 부르고 팝송도 부르고 다 부르더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트롯가수로 유명해지고 나니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 껏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는 거였단다.
"너도 일단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글부터 쓰고, 그 다음에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써."
현명한 언니가 이번에도 나의 오만방자함을 제대로 짚어주었다.
"거만했네, 내가. 감히."
내깟게 뭐라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돈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작가님들이나 지망생분들도 충분히 글을 쓰며 즐기고 있을텐데.
기왕이면 돈까지 따라오면 좋겠다는 뜻이었을텐데.
어디서 감히 나따위가 그들과는 다른 듯, 실력도 안되면서 고고한 척을 했었나.
크지도 않은 내 코가 아주 뭉개진 듯 했다.
언니와의 대화 후 며칠동안 고민을 하다 먼저 출간한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캐릭터의 구성과 이야기의 맥락과 사건의 전개까지 모두 탄탄 한 것이 독자로서 읽기 아주 좋았다.
작가님 기준에서 성공한 작품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응원의 독후감을 보내자 작가님이 매우 기뻐하셨다.
그 모임에서 게으른 자신을 자책하며 며칠간 이런 저런 생각만 많던 참인데,
모든 것이 다 완벽하고 좋으니 무조건 쓰라는 나의 평가에 용기를 얻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쩌면 작가보다는 독자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웹소설분야는 절필을 해야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그래서 모임에서 알게된 출판사 대표님께 카톡을 보냈다.
나의 글을 읽어보고 피드백을 주시겠다며 연락하란 말을 염치 불구하고 정말로 덥썩 물어버렸다.
내 글의 URL을 보내드리고 나서부터 수치심에 가까운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래, 이젠 인정해야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무서웠던 건지도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 글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라는 거창함으로 포장하고 그 안에 꽁꽁 숨어지냈던 것이다.
세상에 꺼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욕할 이도 없다는 것이니까.
겁을 먹고 쫄아서 숨어있으면서, 나보다 용기 있는 자들보다 나은 척 그들과는 다른 척 했다.
인정하고 나니 나의 비겁함에 조소가 나올만큼 스스로가 우스꽝스럽다.
아직은 머릿속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서툰 나이다.
그렇다고 남들만큼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니 늘 리도 없다.
웹소설을 쓰겠노라 하면서도 단 한번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유투브를 한번 찾아보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제대로 빈 깡통이면서 시건방지고 오만방자하고 거만했다.
언니 덕에 스스로에게도 감추었던 내 속을 제대로 들켰다.
며칠이 지났지만 내 글을 읽고 답해주시겠다던 대표님으로부터 회신은 없다.
정말 일이 많아 바쁘실 수도 있어 내 글을 아직 평가할 만큼 보지 못하셨을 수도 있고,
무어라 회신을 할 말이 없을만큼 내 글이 구제불능에 답도 없는 글일 수도 있다.
쓴 소리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노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카톡 알림 소리 하나에도 대표님의 연락인가 싶어 심장이 쿵쾅거리길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대범하지 못하다.
그러면서 그렇게 나댔었다.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익히고 써야겠다.
단 1천자를 쓰더라도 탄탄하게, 스스로 만족할 만큼.
나조차 만족시키지 못한 글이 남을 만족시킬 수 없을테니까.
결론은 다음 모임에도 또 나가야겠다.
최종적으로는 나를 가둔 알을 스스로 깨고 나와
내가 만든 유리 천정에 닿고 닿아 언젠가는 확실히 깨부수길.
그 날까지 나는 참 갈 길이 멀다.
빨리 갈지 느리게 갈지 둘러 갈지 질러 갈지 모르겠지만.
먼 곳이라도 갈 길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재미 외엔 의미 없던 노력이 드디어 목표를 찾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