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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Nov 17. 2023

점보도시락과 공간춘

이만하면 인싸는 못되도 아싸는 면했다.



우리집 라면 소비량은 어마무시하다.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주식이기도 하지만 라면은 아이들의 간식이자 부식이기도 하다.


끓여먹기도 하고, 떡볶이에 사리로 넣어 먹기도 하고, 생라면으로 부셔서 먹기도 한다.

끓일 때에도 달걀과 파 같은 기본 고명 외에

떡국 사리, 오뎅, 콩나물이나 숙주, 만두 등을 넣어 야무지게 요리처럼 해먹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달에 한번쯤 땡긴다 할 정도로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남편과 아이들은 라면으로 삼시 세끼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라면을 좋아한다.


애들이 어릴 땐 라면을 그다지 사지 않아 소비량도 적었는데,

딸 둘이 초등학생인 지금은 마트에 장을 보러가면

쌀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아이템이 라면이다.


짜장라면, 비빔라면, 일반 라면도 매운맛 좀 덜 매운 맛 순한맛.

어떤 날은 소고기맛 어떤 날은 해물맛, 어떤 날은 김치맛 어떤 날은 우동맛.

사람이 다섯이다보니 라면 취향도 고루고루이다.


라면 한박스 20개를 사봐야 한끼에 4~5개를 끓이니 4~5번이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집은 라면을 사면 기본이 박스 단위이고, 보통 2~3박스를 산다.

팬트리 가득 쟁겨놓아도 금세 사라져서 어쩔 땐 허무한 생각까지 든다.




특히 큰딸이 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2년 반동안 치료를 받은 성조숙증의 원인 중 8할이 라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는 라면공장 사장 아들한테 시집가면 딱 맞겠다!

맨날 맨날 라면만 먹고 사니 얼마나 좋아!"


딸에게 이런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큰 딸은 라면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취향과 식성은 술만 먹었다하면 다음 날 아침 라면으로 해장하는 아빠를 꼭 빼다 박았다.







친구가 아랫동네에서부터 택배를 보내왔다.

그녀가 인스타에 올린 점보 도시락 사진을 보고 내가 단 댓글 한 마디에

"너네 집은 가능하겠다!" 라는 응원의 말을 담아 여러 간식과 점보도시락을 하나 보내왔다.



차마 사진을 올리지 못하지만, 딸들은 점보 도시락을 들고 신이나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뭐가 그리 좋은 지 모르겠지만 인증샷을 꼭 찍어야한다면서

점보도시락을 들고 사진을 여러장 찍어댔다.





8인분의 도시락 라면이 들어있다.

아무리 라면 좋아하는 우리 식구들이라도 두 번에 걸쳐 나누어 먹었다.

물론 깔끔하게 남김 없이 다 먹었다.







스티로폼 라면통 한 귀퉁이에 금이 간 덕에 4개를 먼저 끓였는데 양이 딱 좋았다.

보통의 도시락보다 점보도시락의 면이 두꺼웠기에 가능한 듯 했다.


당분간은 도시락 라면은 먹지 않겠지 했지만, 웬걸.

두 번에 나눠 먹었기에 질리지 않았는지 우리 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도시락을 잘 먹고 있다.

-물론 도시락보다 더 좋아하는 컵라면은 육개장이다.




그러고 있는데 또 다른 친구가 공간춘을 보내왔다.

공간춘이 뭐냐고 묻는 내게 아이들 상대하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줬다.

몰라서 묻는데 그 따위 대답은 뭐냐고 버럭하자 친구는 깔깔깔 웃으며

"쪼끔만 기다려봐라! 이 인싸 언니가 보내줄게!" 하더니

정말로 다음 날 택배가 도착했다.


이걸 본 내 첫 느낌은 "뭐고 이건, 진짜 가지가지 한다!" 였다.


아무래도 나는 유행에는 떨어지는 아싸 기질이 다분한 꼰대 아줌마인 것 같다.

그렇지만 기껏 귀한 아이템을 사서 보내주기까지한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택배를 받은 당일 저녁을 공간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혹시 매울까 싶어 아이들은 국물을 넉넉하게 해주었고,

남편은 볶듯이 조리 해 국물 없이 해주었다.

떡국 사리를 추가하고 빠르게 구워올린 따뜻한 소고기까지 얹어주니

남편은 엄지를 척! 들어보이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섞인 라면 맛이 뭐 대수로울까.

맛이 아니라 희귀템이나 유행템을 득템한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먹는 것이지.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기분좋게 들뜬 마음으로 공간춘을 먹었다.

이런 아이템 이제 좀 그만 나와라 싶다.


아싸 애미는 인싸 따라가기 버겁다.

다행히 발빠른 친구를 둔 덕에 이렇게 맛은 보고 아싸는 겨우 면해가지만.

유행템 소진을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제 이런 거 그만 좀 나왔음 좋겠네!"


하는 내 진심어린 말에 휴대전화로 인증 사진을 찍어대던 딸들이 헤헤헤 웃는다.


"엄마! 그래도 재밌잖아!"


그래, 니들이 좋으면 됐지.

포켓몬빵 사려고 새벽부터 나가서 공을 들이던 딸들이

점보도시락이나 공간춘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결론

라면 맛은 라면 맛일 뿐.

8인분을 다 먹기 위해서라면, 집들이라도 해야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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