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니치향수에도 취향은 존재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는 동안 나를 위한 소비는 늘 머뭇거리게 된다.
백화점에 가서 신상 향수나 유명하다는 니치 향수를 시향할만큼의 여유도 없이 나는 치열하게 살아왔고 쪼들리며 살고 있다.
아이들조차 지인들로부터 옷을 얻어입히며 키우고 있고, 육아용품도 중고로 사거나 만들거나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자기만족을 위해 나를 위한 돈을 쓸 수가 있었을까?
나는 나만 쓰는 고무장갑도 한 켤레 못 사쓰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남들보다 더. 더. 더. 안 쓰고 못 쓰며 살아왔다.
누군가 그랬다.
나처럼 돈 안들이고 애 키우면 둘도 셋도 넷도 키운다고.
아이들이 학령기가 되면 남들은 하나쯤 준비한다는 명품 가방이 내겐 없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대출을 껐고,
가끔 넉넉히 벌어다 준 남편 덕에 사모은 금은 이내 생활비로 바꾸어야 한 삶이었다.
불어버린 몸을 탓하며 옷을 사는 건 늘 미루어왔고,
신발 공장을 하는 아버지 덕에 신발을 살 일도 없었다.
화장은 원래 안하니 아이들과 함께 기초 화장품을 쓰다가 유분기 때문에 겨우 어른용을 사 쓴다.
그럼에도 나는 부끄럽거나 서글프거나 아쉽지 않다.
하지만 유행이나 패션에 민감하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나의 옷매무새를 보며 남편은 늘 불만이다.
결혼식장처럼 갖춰 입고 나가야 할 자리에 가기까지 나는 드레스룸에서 몇 없는 옷을 입고 벗고를 반복한다.
옷이 없다며 걱정하는 나를 보며 그는 제발 옷 좀 사라고 한다.
이럴 때나 한 번 입고 말 비싼 옷을 왜 사냐고 말하면 늘 남편은 나를 미련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내가 아낀만큼 남편은 그래도 남보다 잘나진 못해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옷차림은 하고 산다.
거적을 걸치고 경운기를 몰아도 통장 잔고만 빵빵하다면, 문서를 몇 개 쥐고 있다면 하나도 거리낄 것도 없고 부끄럽지도 않다는 나를 남편은 이해를 못한다.
왜냐하면 지지리 궁상을 다 떠는 나의 워너비 카(car)가 롤스로이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인색한 나라도 차 만들던 여자의 로망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감가 상각되는 돈은 아까워 사지는 않을 거다. 대신 죽기 전에 꼭 일주일은 렌트해서 타볼 거다, 만약 못 타고 죽으면 장의차를 롤스로이스로 해달라고 할 정도로 나는 이 비싼 차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 때는 돈만 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팔지 않았다 하던 롤스로이스를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팠다.
돈 그리고 명예까지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번 강남 롤스로이스 사건 후 이 생각은 싹 접혔지만 말이다.)
나는 돈이 없어 돈을 못쓰는 것도 있지만 돈을 안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비싼 거 좋은 거 나라고 왜 모를까.
그냥 소비에 있어서 나란 사람이 늘 내 우선 순위에 없었을 뿐이다.
나에게는 각종 대출 원리금과 공과금과 세금이 최우선이고, 매달 나가는 가정과 사업체의 고정비가 우선이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아이들을 먹여 살린다.
나의 옷차림이 암만 유행에 떨어지고 허름해도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 내 주위엔 없다.
그들은 내가 포기하는 옷, 가방, 신발 대신, 내가 피땀눈물로 일구어낸 것들의 가치를 잘 안다.
그래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준다, 나의 인내와 희생을 말이다.
얼마전 복덩어리 그녀를 만날 때에도 12년 된 호피무늬 치마를 입고 나갔다.
다이어트로 살이 좀 빠져 그 옷을 구입했을 때 보다 맵시는 좀 덜 나지만 입어볼 시도는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평소와 다른 내 옷차림을 예쁘다며 칭찬해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여자는 그렇다, 작은 변화에도 반응해주는 단 한 마디 시선 하나로도 기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복덩어리 그녀는 내게 쇼핑백을 하나 내밀었다.
늦었지만 생일 선물이라며 어서 받으라 햇다.
생일도 지났고, 나는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쇼핑백을 받아들면서도 손이 부끄러웠다.
면세점 화장품 회사 소속으로 일하는 그녀는 '그냥 집에 있는 걸 가져온 것이니 절대 부담 갖지 말라'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묵직했던 무게만큼 과해도 많이 과한 선물을 받았다.
비싸고 좋은 것들로 채워진 쇼핑백은 금액적 가치도 그렇거니와 나의 취향을 완벽히 저격해 있어 나는 그녀에게 다시금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기쁨을 전해듣고 그녀가 더 기뻐해주었다.
복덩어리 그녀가 준 모든 것들이 최고의 선물이었지만 그 중 단연 내 취향 1위는 향수였다.
살면서 그동안 한번도 써보지도, 맡아보지도 못한 딥디크의 향수가 내게 온 것이다.
무려 5가지나!!!!
언젠가 출장 차 제주에 갔을 때, 면세점에 샤넬 향수 매대가 없더라며 남편이 조말론을 사왔다.
하지만 솔직히 남편이 사온 그 조말론은 내 취향이 아닌지라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냄새도 잘 못 맡는 남편만이 요즘 주로 조말론을 뿌린다.
또 생일 선물로 받은 조말론 바디크림도 개봉 전이다.
바디 크림이 필요한 겨울 대비를 위해 아껴두고는 있지만, 사실 조말론이기 때문에 향에 대해서도 큰 기대가 없다.
그런데 난생 처음 접한 이 딥디크의 향은 다섯 가지 모두 특색있게 좋았다.
완벽한 내 스타일, 완전한 내 타입의 향도 하나 발견했다.
20대엔 불가리를 뿌렸고, 30대에 샤넬을 뿌렸다면,
40대에는 딥디크를 뿌려도 되지 않을까 싶을만큼 만족스럽고 풍부한 향이다.
영국보단 프랑스가 내 스타일인가봐. 하는 내게 남편은 비웃었다.
"어차피 향수라면 사족을 못쓰고, 있는 거 다 뿌릴 거면서 또 저런다"고.
"아무리 니치향수라도 취향은 존재 한다고!!!!! 조말론은 아니었다고!!!! "
하는 내 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조말론도 다른 향 맡아보면 또 맘에 들지 어찌 알아." 하는 그의 말에 반박을 못했다.
그렇다. 아직 조말론은 다양하게 시향해보지 않았다.
그저 지인들이 몇 쓰기에 그들의 체향과 섞인 조말론의 향 몇 가지를 알 뿐.
(그 중에서 내 맘에 드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아직은)
흠.....
얼마전 우리집에 와 잠시 머물고 있는 하숙생의 향수병이 갑자기 눈에 띄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았다.
그의 향수가 딥디크인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우오오오오!!
진짜 딥디크다!!!!
그의 향수가 딥디크 인지 모를 때에도 향이 좋다 싶었고 또 남겨진 잔향의 지속력에 놀라긴 했는데.
그것이 바로 딥디크였다니!!!!!!
주인 허락도 없이 얼른 내 화장품인 것처럼 설정해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와 겹치는 향은 절대 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게는 딥디크 중에서도 롬브레단로 라는 제품이 이미 취향으로 콕 박혔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찾아보니 모두들 장미향이다, 여성향수 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하는데,
내 기준에서 딥디크롬브레단로는 꽃 향보다는 줄기나 잎에 가까운 풀, 우디한 향이 더 짙다.
남들말을 따라 딥디크 롬브레단로 정도이면 나도 이제 여자 향수를 잘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확고했던 남자향수란 내 취향을 변화시킨 대단한 녀석이다.
딥디크 한 병을 사는 날까지는 샤넬 향기를 뿜고 다니겠지만, 곧 만나자는 각오를 다져본다.
나의 유일한 사치품 향수, 새로운 내 취향을 한 병 구입하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열심히 달린다!
열심히 또 돈 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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