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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18. 2023

불가리를 뿌렸고, 샤넬을 뿌립니다

20대와 30대 향수 추천

나는 향수를 좋아한다.

20대 초반이던 대학생 때부터 향수를 사 썼다.


그 이 전에도 뿌리면 향기가 나는, 향수란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취향의 엄마의 샤워코롱 냄새는 그다지 내 몸에 뿌릴 정도로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담배 냄새를 감추어야 하는 비밀을 가지고 살 때에도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남자가 뿌린 불가리 뿌르 옴므의 향이 내 코에 콕 박혔다.

그 향기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이게 무슨 향이냐며 그 남자의 주위를 대놓고 코를 킁킁 거리며 물었다.


"향수 뿌렸는데! 불가리"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와 당장에 인터넷 주문을 했다.

그렇게 불가리 뿌르 옴므가 내 손에 들어온 후부터 나는 향수를 들이부으며 살게 되었다.

불가리 뿌르 옴므에서부터 알 수 있듯 내 취향은 확고히 머스크와 우디 계열의 남자 향수다.
하지만 엄마의 샤워코롱은 늘 프룻 또는 플로럴 계열이었다.
그러니 내 손이 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내가 외국을 다닌 후부터 엄마는 샤워코롱이 아닌 향수를 쓰시게 되었다.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의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무척 좋아하셨다.
 
이 여자 향수도 내가 사드린 게 아니고 호주에 계신 지인이 엄마께 선물해 주셔서 쓰게 됐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그 향을 엄마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해서 그 후 나는 몇 병을 더 사다 드렸다.


인터넷에서 핫딜로 향수가 뜨면 사고, 면세점을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향수를 샀다.

그래서 20대 때 나를 향수의 세계로 불러들인 불가리에서 나오는 향수 라인은 거의 다 써봤다.


예닐곱 번을 들락날락 거리는 호주에서 만난 내 통가 동생들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쓰고 남은 향수를 던져주니 

나만 보면 이번엔 무슨 향수 사 왔냐고 묻곤 했다.


내 향수를 기다리는 동생들 덕에 불가리뿐만 아니라 비교적 저렴한 다른 제품들도 많이 써봤다.

겐조, 다비도프, 존바바토스, 페라리, 페레가모, 버버리 등등등.

하지만 언제나 나의 최애는 불가리 향수였다.


한동안은 불가리 옴므 아쿠아에 빠져 나도 사 쓰고 선물도 참 많이 했었다.

불가리 옴니아 라인 덕에 나는 여자 향수도 가끔 쓸 수 있게 되었다.


(비싼 향수를 쓰기에 학생이었던 나는 술도 먹어야 했고 담배도 사 피워야 해서 돈이 별로 없었다.)


여름과 겨울에 다른 향수를 썼고, 기분 전환을 위해 5,6일 중 하루는 다른 향수를 썼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두세 개의 향수를 꼭 갖고 살았다.

담배가 떨어져도 금단 현상은 없는데, 향수 특히 불가리 향수가 떨어지면 초조해졌다.

그 정도로 나는 불가리 향수를 애정했다.





시간이 지나 30대가 된 나는 샤넬 향수에 정착했다.


샤넬 사주는 선배가 매 해 내 생일마다 사준 게 샤넬 바디미스트와 헤어미스트일 정도로 나의 최애 향수는 샤넬이다.


불가리를 남자 때문에 알았다면 샤넬은 친구 덕에 알았다.

나의 베프 중 중학교 절친이 자신의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비싼 샤넬 옴므 에디시옹 블랑슈 향수를 사다 주었다.


언젠가부터 향수는 남성용 여성용 구분 없이 오만 것들을 다 쓰는 잡식성의 향수 애호가가 된 내게 샤넬은 혁명이었다.

마치 2G 폰을 쓰던 중에 만난 애플폰 같은 혁명!!


세상에 이렇게 향기롭고 아름답고 내 취향에 꼭 맞는 향수가 있었다니!!!!

향수를 좋아해도 조향에 대해서는 무지한 내게 샤넬 블랑슈는 비싼 가격 그 이상의 가치였다.

특히 내 주위에는 샤넬향수를 쓰는 사람이 없어서 겹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나를 생각하며 향수를 골랐다. 

내 취향을 아주 잘 아는 친구가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시향 하자마자 바로 샀다' 며 선물해줬다.

그 감동까지 더해져 샤넬블랑슈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나의 시그니처 향수가 되었다.


면세점을 돌아다니면서든 백화점 매대에서든 한 번쯤 시향을 했을 법도 한데.

샤넬블랑슈는 도무지 기억에 없던, 내 세상에 처음 강림한 새로운 향이었다.

(물론 여름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봄가을겨울용으로 사용한다)


그 후로 나는 샤넬 향수를 몇 가지 더 사서 썼다.

그러나 여전히 샤넬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샤넬옴므블랑쉬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처음'에 대해서는 굉장한 집착이 있는 편인 것 같다.


사실 향수, 특히 샤넬 향수는 불가리보다 비싸서 나에게는 나름 사치품이다.

화장을 안 해서 화장품도 사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쓰고 없어지는 것에 소비하는 큰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껏 손 떨면서 산 비싼 향수를 막 쓸 깜냥도 나는 되지 못한다.


내가 남자 향수를 쓰기 때문에 덩달아 남편도 내 향수를 같이 쓴다.

근데 이 인간은 내가 아끼고 아껴서 뿌리는 걸 몇 번이고 퍽퍽 잘도 뿌려댄다.

그나마 내게 향수를 사주는 사람이니까 참을 수 있지, 

그러지 않았으면 몇 번이고 잔소리 폭격에 등짝 스매싱까지 날렸을 테다!


그 정도로 내게는 소중한 샤넬 향수이다.

불가리보다 비싼 샤넬을 쓸 때면 20대 때보다 좀 더 나은 30대가 된 것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40대가 된 지금 샤넬만큼 좋은 향수를 발견하기는 했다.

10년 넘게 이어온 최애가 바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누구누구 씨는 샤넬넘버파이브를 입고 잤다 하던데.

나는 잠잘 때 이 비싼 향수를 뿌릴 정도의 재력은 아직 없는지라,  

가끔 기분 낼 때만 아껴둔 샤넬을 뿌린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향수 중에서는 이미 개봉한 지 몇 년 된 것들이 많다.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 동안은 아무래도 수유 때문이라도 향수를 쓰지 못할 때가 많았으니까.


비록 오래된 향수들이지만 화장대를 열어 줄 지어 선 향수병들만 봐도 나는 그저 흐뭇해진다.

샤넬 향수는 향기로도 또 그 존재만으로도 내게 기분전환이 된다.


오래되어도 여전한 향기를 내어주는 샤넬처럼

나도 내 사람들에게만큼은 오랜 기간 동안 향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나를 떠올리면 이전에는 불가리 향수를 함께 떠올렸고, 이젠 샤넬 향수를 떠올린다.

비싼 샤넬향수를 선물로 주지는 못하고 살았지만, 나는 선물로 곧잘 받는다.



아이들조차도 백화점 샤넬 향수 매대 앞을 지나가면 엄마 냄새라 하고

내 지인들은 내가 좋아하는 향수라고 선물해주기도 한다.

(지금 쓰는 샤넬 블랑슈도 결혼 후 몇 년 만에 만난 대학원 친구 둘이서 돈을 모아 내게 사주었다. 

처녀 때보다 더 밝고 강하게 살으라는 응원을 담아.)


우리 엄마도 이젠 화이트다이아몬드 대신 샤넬 향수를 쓰신다.

내가 산 여성용 샤넬 향수를 맘에 들어하시길래 가져가라 했더니 

딸 것엔 절대 욕심 내지 않던 분이 단박에 챙겨가셨다.


얼마나 샤넬이 좋은지  엄마가 향수와 관련된 농담도 하셨다.

"O서방은 면세점만 가면 마누라 향수 사다 주던데, 장모 향수는 하나 사다 주나?" 하고.


그 소리에 당황한 남편 대신 내가 되받아 쳐준다.

"이건 오빠 마누라만 누리는 특권이니까 꿈 깨셔. 엄마껀 내가 사다 드릴게."


나중에 보니 엄마의 향수가 거의 다 떨어져 가는 거였다.

그래서 내 향수를 엄마께 다시 내어드렸다. 

아무리 샤넬이라도 여자 향수는 여전히 잘 손이 가지 않아서  사두고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샤넬 향기가 이젠 내 남편에게도 나고, 우리 엄마한테도 난다.

비싼 향수라 그런지 향도 좋고 지속력도 좋다 하시는 엄마 말씀처럼

나도 명품 값을 하는 샤넬 향수 같은 인간이 되고 싶다.


인간 샤넬, 딱좋은나.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인간 명품, 딱좋은나.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내 삶에 집중해 보겠다!



지금 내 화장대에 들어있는 향수도 적은 양이 아니다 그래도 최애는 샤넬이다




(오늘은 아이들의 개학날이다! 야호!!

밀린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에 씻지 않은 몸이지만 향수를 한번 뿌려야겠다.

그럼 내 향기에 취해 힘든 집안일도 신바람이 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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