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Aug 19. 2023

스노우화이트박 키우기

식집사 지망생 : 킬러에서 힐러로


벚꽃이 흩날리는 걸 보며 아름답다 예쁘다 하기는커녕

"아~~~ 더럽다! 저거 누가 다 치우노!" 했던 내가

나이가 든 건지 식물을 하나씩 하나씩 집에 들이고 있다.


식집사의 시작은 남편 사업이 망한 후 생계를 위해 오픈한 교습소로 들어온 화분들이었다.


오픈 축하 선물이랍시고 다양한 종류의 화분을 여러 개 받으면서 걱정했던 바와 같이 나는 정말로 식물 킬러였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남들은 키우기 쉽다고 하는 스투키도 선인장도 과습으로 죽이고 돈나무도 고무나무도 다 죽였다.


내가 문제인 건지 북향으로 창이 난 교습소의 환경이 문제인 것인지.

화분들은 나의 정성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죽어나갔다.


빈 화분을 그냥 놀리기 아까워서 싼 식물들 위주로 다시 사다 심었다.

들인 정성과 애정은 그렇다치고, 또 죽어버릴 때를 대비해 들인 돈이 아깝지 않은 수준의 것들을 샀다.


그러면서 나는 초록색에 잎이 넓고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식물들을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습소에서도 살아남았던 몬스테라와 해피트리는 이사 후에도 꾸준히 잘 커주고 있고,

홍콩야자와 스파티필름 콩고도 잘 자라고 있다.

특히 스킨답서스는 식물 똥손인 내 손에 죽기는커녕 잘라서 물꽂이만 해도 화분을 몇 개나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생명력이 있는 식물이었다.


몇 년을 초록 초록한 아이들만 키우다 보니 포인트가 될만한 식물들도 키워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노랑 빨강 분홍 이런 꽃이 달린 식물들은 원치 않았다.

꽃기린은 죽였고 제라늄과 가재발도 가득 달고 온 꽃들을 우리 집에선 다 떨궈버렸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꽃이 피는 식물은 스파티필름뿐이다.

하얀 꽃을 하나씩 피우고 지고 또 피우는 스파티필름을 키우며 잎이 하얀 아이들이 부쩍 눈에 들어왔다.

포인트 컬러는 화이트다!!!


초록 사이에 포인트로 하얀 식물을 계획하고 당장에 화이트콩고와 스노우화이트박을 들였다.





처음 우리집에 와서 화분에 옮겨 심어놓은 상태


분명히 이렇게 여러 가지 작은 식물들을 예쁘게 모아 정원처럼 만들었다.

나름 멋스럽게 해 만족해한 히 화분을 보며 비싼 스노우화이트박을 콕 집어 사무실로 가져가고 싶다는 남편.

생각이 있었다면 미리 말하던지, 셋팅 끝났는데 다시 옮겨심기를 해야 하다니!!!!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투덜거리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그에게만큼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다.

다이소에서 작은 화분까지 사와 스노우화이트박을 옮겨 심은 후 사무실로 보냈다.


비싼 거 좋아하고 새 거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리라지만, 가끔은 이렇게 남편이 얄밉다.

그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면서도 얄밉다!!!!!







"사무실에 식물들 잘 크고 있어?"


볕이 잘 드는 5층에 자리한 사무실은 남편이 현장 일을 나가면 비워질 때가 많아 굉장히 건조하고 뜨겁다.


"안 그래도... 새로 가져간 화분 다 죽어가!"

"이파리 하얀 거?"

"어!!"


내 생각엔 사무실의 환경 상 물 부족으로 죽어가는 것 같은데, 남편은 전혀 예상도 못하는 것 같다.


"걔는 물 좀 자주 줘."


"주는데도 자꾸 죽던데. 너무 많이 주나?

근데 잎이 하나 둘 마르면서 없어져. 근데 또 새로 나는 것도 있다, 신기하게!"


"아이참!!! 그냥 집에 두라니까 괜히 가져가서 비싼 식물 죽이고 있어! 당장 가져와!"


나의 엄포에 남편은 그날로 화분을 다시 내게 돌려보냈다.


남편의 말처럼 죽다 살아나고 있는 듯 되돌아온 스노우 화이트박은 잎이 몇 장뿐이었다.

그 예뻤던 첫 모습을 기억하자 절로 혀가 차졌다.


"쯧쯧. 거기 가서 고생 많이 했구나! 안 죽고 그래도 기특하게 살아 돌아왔네! 여기서 잘 한번 살아보자!"


듣는지 마는지 모르겠지만 식집사가 된 것처럼 말을 건네 본다.

다시 봐도 참 어여쁘다.

금세 찢기고 끊어질까 여린 모습도 지켜주고 싶다.



남편 사무실에 갔다가 다 죽어가는 상태로 옴




스노우화이트박은 우리나라 사람이 2007년에 칼라디움 품종을 개량한 식물이다.

박은 박과라서 붙은 게 아니라 이 품종을 개량한 사람(박순교 님)의 성씨를 따와서란다.


처음 이 아이를 우리 집에 들이면서 오는 길에 검색을 해봤었다.

잎 중 흰색 비중이 많은 아이는 러브라 부르고

초록색 비중이 많은 아이는 제인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 집에 온 아이는 러브이다.

'역시!! 사랑이 넘치는 집구석 같으니라고!!!' 하고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스노우화이트박은 튤립처럼 구근 식물이라

잎이 떨어져도 알뿌리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식물이다.

그러나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예쁜 튤립도 죽여본 나라

스노우화이트박이 구근 식물이라는 것을 알고 사실 겁이 좀 났다.

'또 죽이겠네. 어쩌냐! 이 건 비싼 건데! 벌써 돈 아깝네!' 하며


인터넷 검색결과에서도 이 스노우화이트박이 은근히 키우기가 힘들다 했다.

과연 내 손만 닿으면 죽어버리는 식물킬러인 내가 까다롭고 어렵다는 이 아일 잘 키울 수 있을까?

돌아온 화분이 반갑고 짠하면서도 식집사 지망생인 나를 믿지 못해 걱정과 염려가 되었다.


일단 스노우화이트박이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남동향 1층이라 해가 짧은 우리 집에서 그나마 가장 해가 잘 드는 거실 발코니 창 안으로 화분을 밀어 넣었다.


창 쪽이라 시스템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과 반대로 있어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리이다.

또 발코니 문을 닫으면 온실처럼 온도가 뜨겁게 유지가 되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스노우화이트박은 추위에 약하다고 했으니,

더운 여름의 뜨거운 햇빛과 바람 사이에서라면 잘 자랄 것 같았다.

그렇게 끈질기고 강하게 살아남아야지만 춥고 긴 겨울의 아파트 1층에서도 겨울나기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스노우화이트박을 창가로 보냈다.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서큘레이터로 공기 순환을 시켰고 바람을 쏘게 했다.

자주 물을 주는 만큼 뜨거운 해를 바로 받으니 매일 줘도 매일 흙이 말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짜잔! 이렇게나 살아났다.

기특하고 뿌듯하다.


"역시 집이 좋구먼!"

남편은 살려낸 스노우화이트박을 보며 나에게 엄지를 올려주었다.



거실창 사이에 두고 뜨거운 온실효과로 이만큼 다시 살려냈다!


식물을 건드렸다 하면 다 죽여버리던 식물똥손이 한 생명을 구했다.

이젠 킬러가 아닌 힐러가 된 것이다.

운이 좋아 살려낸 스노우화이트박을 보며 할 줄 아는 게 하나쯤 늘어난 것 같아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아직은 잘 자라주고 있는 우리 집 스노우화이트박, 계속해서 쑥쑥 자라줘!!!!


매거진의 이전글 불가리를 뿌렸고, 샤넬을 뿌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